‹ 목록으로 여보, 왜 이렇게 다정해요?

3화

다음 날 아침, 강준서는 소은의 방을 찾아갔다.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그는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문 앞에 서서도 한참을 우물쭈물했다.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하지.' 그는 아빠 노릇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강준서는 딸을 방치했고, 지금 이 몸을 빌려 쓰고 있는 강준서는 딸이 있어본 적조차 없었다. 그러니 이 순간이 낯선 것도 당연했다. 노크를 하자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아빠야." 강준서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그 단어가 자기 입에서 얼마나 낯설게 흘러나왔는지 깨달았다. 발음마저 어색했다. 마치 처음 배운 외국어 단어를 발음하는 기분이었다. 대답이 없었다. 문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뭔가를 급히 정리하는 듯한, 혹은 뭔가를 급히 숨기는 듯한 소리였다. 잠시 후 문이 아주 조금 열렸고, 은빛 머리의 작은 눈동자가 문틈으로 삐죽 나타났다. "...무슨 일이세요." 소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강준서가 웃으며 말했다.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려 애썼지만, 소은의 표정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소은은 문을 더 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강준서의 심장을 콱 움켜쥐었다. 두려움과 경계, 그리고 이상하게도 익숙함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이 아이는 아빠가 무섭구나.' 그는 그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네 살짜리 아이가 아버지를 보고 저런 눈으로 쳐다본다는 것 자체가, 이 저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 강준서가 물었다. 소은은 대답 없이 문을 조금 더 열었다. 허락이라기보다는 감히 거절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강준서는 그 미묘한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지금 자신에게 '허락'이라는 걸 해줄 힘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 방 안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장난감 하나 없이, 침대와 책상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벽에는 그림 한 장, 낙서 한 줄도 없었다. 네 살배기 아이의 방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갈했고, 그 정갈함이 오히려 이상했다. 아이는 원래 방을 어지럽히는 존재였다. 이렇게 깨끗한 방은 아이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라, 누군가가 강제로 만든 결과물일 가능성이 컸다. 강준서는 침대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소은은 침대 반대쪽 끝으로 슬쩍 몸을 옮겼다. 거리를 벌리려는 게 노골적으로 보였다. "소은아, 손 좀 보여줄래?" 그가 문득 손등의 상처가 떠올라 물었다. 소은의 몸이 순식간에 굳었다. "...왜요?" "그냥 궁금해서." 소은은 소매를 더 깊이 끌어당겼다. 손목까지 완전히 가려질 만큼 잡아당겼다. "...아무것도 없어요."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아주 서투른 거짓말이었다. 강준서는 그 순간 소매 밖으로 삐죽 나온 붉은 손끝을 보았다. 손톱 주변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딱지가 아물다 만 자국이었다. 하루 이틀 된 상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소은아." 강준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소은은 고개를 숙였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어깨가 조금씩 떨렸다. 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잔뜩 겁을 먹고 굳어버린 몸이 자기도 모르게 떠는 것이었다. 강준서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 몰아붙이면 아이가 완전히 입을 닫아버릴 것 같았다. 그는 대신 소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려다가, 소은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것을 보고 손을 도로 거둬들였다. '지금은 안 되겠다.' 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 그날 오후, 강준서는 박수호를 다시 붙잡았다. "소은이 몸에 상처가 있어요.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그가 다짜고짜 물었다. 박수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공작님, 정말 그것까지 물어보십니까?" "당연하죠. 내 딸이잖아요." 강준서가 목소리를 높였다. 박수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예절 교사가... 조금 엄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조금 엄하게요?" 강준서는 그 표현이 이상하게 걸렸다. "손등이 벗겨질 정도로요?" 박수호가 시선을 피했다. "...아가씨가 몸이 약해서 자주 넘어지시는 편입니다." 뻔한 변명이었다. 강준서는 그 변명을 믿지 않았다. 넘어져서 생기는 상처와, 뭔가에 긁혀서 생기는 상처는 모양이 다르다. 그는 이래저래 회사에서 산업재해 사고 보도자료를 몇 번 써본 적이 있었고, 그 경험 덕에 적어도 상처의 종류를 구분하는 눈은 있었다. "박수호 씨." 강준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저 아직 이 세계 잘 모르는 거 알죠. 근데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에요." 박수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걸 감추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 저택 전체일 가능성이 높았다. 강준서는 그 사실을 확신했다. "제가 다시 물을 거예요." 강준서가 자리를 뜨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음엔 좀 더 정확한 대답을 듣고 싶네요." 박수호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강준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걱정과 불안, 그리고 뭔가 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지만, 강준서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 소문을 캐내기 시작한 건 그날 밤부터였다. 강준서는 복도를 지나던 길에 하녀들이 소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하녀들의 방은 별채에 있었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어 안쪽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아가씨가 또 벌을 받으셨대." 한 하녀가 낮게 속삭였다. "이번엔 뭘로?" 다른 하녀가 물었다. "찻잔을 깼다고. 홍 여사님이 손등을 찻잔 조각으로..." 말이 거기서 끊겼다. 하녀 하나가 문 쪽을 돌아보다가 강준서를 발견한 것이었다. "공작님!" 두 하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리를 숙이며 자리를 떴다. 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강준서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방금 들은 말을 되새겼다. '찻잔 조각으로.' 손등에 벗겨진 피부, 소매 속에 감춰진 상처, 지나치게 정갈한 방, 그리고 아버지를 보고도 웃지 못하는 아이. 이제야 그림이 맞아떨어졌다. 예절 교사, 하인들 사이에서 '홍 여사'라 불리는 그 여자가, 네 살배기 아이를 학대하고 있었다. 그것도 찻잔을 깼다는 이유로, 도자기 파편으로 아이의 손등을 그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택 전체가 그것을 알고도 침묵하고 있었다. 하녀들도, 박수호도, 아마 이 저택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강준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만큼 힘을 줬다. 소문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였다. 이건 단순한 엄한 교육이 아니었다. 이건 폭력이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저택 전체가 눈감아준 폭력이었다. '당장 이걸 끝내야 해.'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하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 세계의 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홍 여사라는 여자가 이 저택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지가, 다음 날 그를 훨씬 더 곤란한 상황으로 밀어넣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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