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강준서는 마흔둘의 나이로 죽었다.
야근을 마치고 걸어가던 횡단보도, 신호를 무시한 트럭 한 대. 그것이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편의점 도시락 봉투가 하늘로 튀어오르는 장면이었고,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엄마한테 전화를 못 했네'였다.
퇴사한 지 삼 년이 다 되도록 취업 자리를 못 찾은 아들이었다. 편의점 도시락 하나로 저녁을 때우면서도 매일 이력서를 쓰던 아들이었다. 그런 인생의 마지막이 트럭 한 대라는 게, 너무 시시했다. 억울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그는 낯선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천장은 새하얗고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었다. 강준서가 살던 반지하 원룸의 벽지와는 거리가 먼 물건이었다. 곰팡이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천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눈이 아팠다. '여긴 어디지.' 몸을 일으키려는데 팔이 낯설었다. 손등의 피부가 지나치게 매끄러웠고, 손가락은 지나치게 길었다. 원래 강준서의 손은 마디마디가 굵고 못이 박혀 있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손은 마치 붓으로 그린 것 같았다.
'이거 내 손 아닌데.'
강준서는 손을 몇 번이나 뒤집어 보다가,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이불에서는 낯선 향이 났다. 라벤더인지 뭔지 모를, 하여튼 반지하 원룸에서는 나본 적 없는 냄새였다.
거울을 발견한 건 그로부터 십 분쯤 지난 뒤였다. 방 한쪽에 걸린 커다란 전신 거울 속에는 서른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은빛 머리, 날카로운 눈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이게 나야?' 강준서는 자기 뺨을 두 손으로 두드려 보았다. 거울 속 남자도 똑같이 뺨을 두드렸다. 이번엔 좀 더 세게 두드려 보았다. 거울 속 남자의 뺨이 붉어졌다.
'아프네. 진짜네.'
강준서는 거울 앞에서 좌우로 몸을 돌려 보았다. 옷도 낯설었다. 비단으로 보이는 셔츠에 은실로 자수가 놓여 있었다. 반지하 원룸에서 입던 삼선 슬리퍼와 늘어난 러닝셔츠와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그야말로 남의 몸에 들어온 게 확실했다.
***
문이 벌컥 열린 건 그가 세 번째로 자기 뺨을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공작님, 기침하셨습니까." 초로의 남자가 허리를 숙이며 들어왔다. 회색 머리에 단정한 제복, 눈빛만은 형형했다. 그는 강준서를, 아니 지금의 이 몸을 '공작님'이라 불렀다.
"공작." 강준서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낯설었다. "내가 공작이라고요?"
남자의 눈이 커졌다. "...예? 갑자기 존댓말을 쓰십니까?" 그가 미심쩍은 얼굴로 한 발 물러섰다. "어디 편찮으신 겁니까, 공작님."
'그럼 원래는 반말이었구나.' 강준서는 재빨리 상황을 정리했다. 낯선 세계, 귀족의 몸, 그리고 자신을 공작님이라 부르는 이 남자는 아마 집사쯤 되는 사람일 것이다. 정신을 못 차린 상태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무리하게 검을 휘두르셔서 그런가 봅니다." 남자가 걸어와 이불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시다고 늘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검을 휘둘렀다고? 이 삐쩍 마른 몸으로?' 강준서는 자기 팔을 내려다보았다.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서재에서 책만 읽었을 것 같은 팔이었다.
"박수호입니다. 잊으신 겁니까?" 남자가 한 걸음 더 다가와 얼굴을 살폈다. 걱정이 진하게 밴 표정이었다.
박수호. 강준서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이제부터 내 편이 될 사람.' 근거는 없었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최소한 이 낯선 세계에서 자신을 걱정해 주는 유일한 사람인 것은 분명했으니까.
***
같은 시각, 저택의 가장 깊은 복도 끝에서는 다른 사정이 벌어지고 있었다.
네 살배기 여자아이가 벽 모서리에 몸을 바짝 붙이고 서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흐트러져 있었고, 작은 손등에는 아직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 이소은. 청하공작가의 유일한 핏줄이었다.
"소은 아가씨, 왜 여기 서 계세요." 지나가던 하녀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소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손등을 소매 속으로 밀어넣으며 작게 웃었다. '괜찮아요'라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녀는 잠시 소은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자리를 떠났다. 붙잡고 물어봐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저택 안에서 그런 태도는 흔했다. 이 집 아이의 손등에 자국이 나는 건,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소은은 하녀가 사라진 뒤에야 손등을 다시 꺼내 살폈다. 붉은 손자국이 손목까지 이어져 있었다. '오늘도 아프다는 말을 안 했어.' 어린아이답지 않은 침착함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소은은 그 자국을 손끝으로 살짝 눌러 보았다. 아팠다. 하지만 아프다고 말하면 더 아픈 일이 생긴다는 걸, 소은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발소리에 소은의 몸이 순식간에 굳었다. 발소리의 박자만으로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소은은 재빨리 몸을 벽 뒤로 숨기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
하준, 아니 강준서는 옷을 갈아입고 처음으로 저택 복도를 걸어보았다. 박수호가 안내를 자처하며 뒤를 따랐다.
"공작님, 오늘은 부인마님께 인사를 드리셔야 합니다." 박수호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평소처럼 서재에만 계실 생각이시면..."
"부인." 강준서는 그 단어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가 결혼을 했다고?'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속도가 감당이 안 됐다. 이 몸 하나에 딸려 있는 인간관계가 대체 몇이나 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부인마님과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박수호가 무심하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강준서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충 얼버무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복도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양옆으로 걸린 그림들도, 바닥에 깔린 카펫도, 반지하 원룸에서는 상상도 못 할 규모였다. '이 집 대체 몇 평이야.' 강준서는 걸으면서도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복도 끝에서 은빛 머리의 작은 여자아이가 벽에 붙어 서 있는 게 보였다. 아이는 그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뒷걸음질을 쳤다. 마치 짐승을 마주친 작은 동물 같았다.
"...누구예요?" 강준서가 무심코 물었다.
박수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공작님, 소은 아가씨입니다. 따님이십니다."
딸. 강준서는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딸이, 자신을 보고 저렇게 겁을 먹고 있다는 사실도. 박수호의 얼굴에 스치는 당혹감으로 보아, 이런 반응이 평소와 다른 무언가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이미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도망치듯 빠른 걸음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소은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두려움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살았던 거지.' 강준서는 텅 빈 복도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앞으로 이어질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