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악명 영주의 두 얼굴

3화

혼사가 정해졌다는 통보는 이틀 뒤에 왔다. 아버지는 그마저도 직접 말해주지 않았고, 서기가 문서를 들고 와 낭독하듯 전달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내 인생이 종이 한 장으로 결정되는 걸 지켜봤다. 와. 이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결혼이, 내 남은 인생 전부가 걸린 일인데 나는 그저 통보받는 입장이었다. 마치 관공서에서 세금 고지서를 받는 기분이었다. 서명하라는 곳에 서명하고, 도장 찍으라는 곳에 도장 찍고. "청류령 영주 선우강과의 혼사가 국왕 전하의 재가를 받아 성립되었습니다." 서기는 그 말을 하면서도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 시선 피함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국왕의 재가.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이런 변방 영주와의 혼사에 국왕이 직접 재가를 내린다는 건 보통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백작가 정도면 알아서 처리해도 되는 사안인데, 굳이 국왕까지 나섰다는 건 뭔가 다른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뭔가 이 결혼 뒤에 내가 모르는 그림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았다. 서기가 문서를 내려놓고 예를 갖춰 물러났다. 발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나는 그 종이를 쳐다보기만 했다.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검은 얼룩처럼 보였다. 서기가 나가고 나서 나는 유모와 마주 앉아 그동안 모은 정보를 정리했다. 유모는 내가 부탁한 대로 시녀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 상인들이 전하는 이야기, 심지어 병사들 술자리에서 흘러나온 말까지 모아왔다. 그 정성이 눈물겨울 지경이었는데, 문제는 모아온 내용이 하나같이 무서웠다는 거였다. 청류령에 대한 소문은 하나같이 극단적이었다. "밤마다 산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고요, 그 영지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다시는 못 나온다고도 하고···" "또요." "국경 너머 변인들과 거래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검은 머리, 검은 눈에 표정이 없다는 얘기도요." "그거 말고 더 있어요?" "···전대 영주가 이유 없이 급사했다는 얘기도 있고, 지금 영주가 직접 그 자리에 앉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마님, 소인이 듣기로는." "됐어요. 이제 그만해도 돼요." 악명의 종합세트였다. 이 정도로 다 갖췄으면 그냥 소문 자체가 만들어진 각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 하나를 겁주려고 작정하고 모은 이야기들처럼 앞뒤가 딱딱 맞았다. 산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동시에 변인들과 무역을 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사람을 죽이는데 전대 영주는 자연사가 아니라니. 이건 뭐 호러 영화 시나리오를 짜도 이렇게는 안 짤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이 상황을 다른 방향에서 뜯어보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오지 않았고, 촛불을 켜놓은 채 천장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왕도에 남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파혼당한 여자로, 모함당한 여자로, 아버지의 계산에 언제든 다시 팔릴 물건으로 남는 것이었다. 이준서와 정려원은 이제 대놓고 손을 잡을 테고, 나는 그 둘의 눈앞에서 매일 조롱거리로 살아야 했다. 파티마다 수군거림을 들으며, 예의상 웃어주면서, 속으로는 매번 죽어가면서. 반면 청류령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변방이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죽음이었다. 하지만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냥,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이건 뭐지. 나는 이 생각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죽을지도 모르는 결혼을 앞두고 오히려 해방감이 든다는 게. 마치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했는데 퇴사가 기대되는 그런 이상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금 왕도에서의 삶도 이미 죽은 삶이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감정적으로. 어느 쪽이든 밑바닥이면, 적어도 소문뿐인 밑바닥 쪽이 낫지 않을까. 최소한 그쪽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밑바닥이었으니까. "유모, 청류령이 어디쯤에 있는지 아세요." "북서쪽 국경 근처라고 들었습니다. 마차로 보름은 걸린다고···" "보름이나요." "네, 마님. 그 정도면 거의 나라 끝이라고 봐야." 보름. 왕도에서 그만큼 떨어진 곳이면 정려원의 손길도, 이준서의 눈치도, 아버지의 계산도 거기까지 뻗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물론 반대로 구원의 손길도 안 닿는다는 뜻이지만, 지금 나한테 구원의 손길을 뻗을 사람이 있기는 한가 싶었다. 손가락 하나 꼽으려는데 꼽을 사람이 없었다. 이것도 참 서글픈 확인이었다. 혼례 준비는 이상하게 조용히 진행됐다. 보통 이런 대례라면 온 도성이 들썩여야 하는데, 초청장이 돌고 예복을 맞추고 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소란이 있어야 정상인데, 이번엔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처리됐다. 예복도 최소한으로 맞췄고, 하객도 거의 부르지 않았다. 나는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이 결혼을 최대한 빨리, 최대한 조용히 끝내고 싶어하는 누군가의 의지가 느껴졌다. 출발 전날, 아버지가 처음으로 나를 따로 불렀다. 서재로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보고 있었다. 나를 보지도 않고 말을 시작했다. "청류령에 가서도 우리 가문의 이름을 잊지 마라." "제가 잊어도 아버님이 잊게 하실 것 같지는 않네요." "말버릇이 그게 뭐냐." "이제 와서 말버릇 지적하실 처지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그제야 나를 돌아봤다. 표정에 짜증이 살짝 스쳤지만 곧 억눌렀다. 이 사람은 늘 그랬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체면 문제로 여겼다. "네가 그렇게 나오니 내가 더 할 말이 없다." "할 말 없으시면 저 그만 나가볼게요." 아버지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나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방을 나오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이 집을 눈에 담았다. 복도의 낡은 그림들, 어릴 때 넘어져서 생긴 계단 모서리의 흠집, 유모가 늘 앉아 있던 창가 자리.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하지만 더는 내 것이 아닌 곳. 방으로 돌아와 짐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유모가 챙겨준 옷가지들, 몇 권의 책,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장신구. 그게 내가 이 집에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전부였다. 열여덟 해를 산 집인데 챙길 게 이것뿐이라는 게 조금 서글펐지만, 동시에 짐이 가벼워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다 버리고 가는 길이었다. 창밖으로 마차 한 대가 이미 마당에 대어져 있었다. 검은 칠을 한 낯선 마차였다. 마부도 낯설었고, 그 옆에 서 있는 호위병들의 갑주도 왕도에서 흔히 보는 것과는 달랐다. 문양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마차를 보는 순간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이건 그냥 시집가는 여정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라는 예감이. 문턱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돌아올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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