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널 데려가기로 했다

4화

서준은 아이를 안아 든 채, 잠시 멈춰 섰다. 품 안의 무게가 이상할 정도로 가벼웠다. 또래라면 이보다는 무거워야 정상일 텐데, 뼈마디가 그대로 만져질 만큼 앙상한 몸이었다. 숨은 옅었고, 간간이 끊길 듯 이어졌다. 한람 가 저택까지는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거리였다. 그동안 이 아이가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가까운 마을에 의원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서준은 주변을 둘러봤다. 이 외곽 도로 근처엔 그럴 만한 곳이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나가는 마차 한 대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말을 타고 왔으면 좋았을걸.' 뒤늦은 후회가 스쳤지만 이미 소용없는 생각이었다. 서준은 아이를 조금 더 단단히 고쳐 안았다. 품에서 아이의 몸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걷는 걸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결국 서준은 저택으로 향하기로 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두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뿐이었다. *** 서준이 아이를 안고 저택 문 앞에 나타났을 때, 문지기는 눈이 튀어나올 듯 놀랐다. "도, 도련님! 그게 뭡니까!" "사람이야. 죽어 가고 있어. 의원 불러." 서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다급했다. 문지기는 그 목소리에 눌려 곧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택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시종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몇몇은 문가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수군거렸다. "저 아이는 누구예요?" "도련님이 어디서 데려오신 거래?" 다들 궁금해했지만, 아무도 정확한 답을 알지 못했다. 한 시종은 아이의 몰골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다른 하나는 서준의 옷깃에 묻은 핏자국을 발견하고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유모 하나는, 이런 일이 생전 처음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련님이 이런 일을 하실 줄이야." 유모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반가움과 불안함이 반씩 섞여 있었다. 서준은 그런 반응들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품 안의 아이에게만 향해 있었다. *** 의원이 도착해 아이를 살피는 동안, 서준은 방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문 안쪽에서 들리는 부산스러운 소리들이 그의 귀를 계속 긁었다. 물을 끓이라는 지시, 천을 가져오라는 외침, 그리고 가끔씩 새어 나오는 낮은 신음. 서준은 그 소리들을 하나씩 다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한참 뒤, 문이 열리고 의원이 나왔다. "영양 상태가 극도로 나쁩니다. 몸에 오래된 상처와 새 상처가 뒤섞여 있고요." 의원이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며칠만 늦었어도 손쓸 수 없었을 겁니다." 서준은 그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몇 시간만 늦게 산책을 나왔어도.' 그런 생각이 들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만약 오늘 그 길로 가지 않았다면, 만약 그 자리에 잠시라도 더 늦게 도착했다면. 상상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상처가... 최근에 생긴 것도 있다는 거지." 서준이 낮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매를 맞은 흔적으로 보입니다." 의원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등과 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오래도록, 반복적으로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서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시종들은 그런 서준의 얼굴을 처음 봤다며 나중에 서로 수군거렸다. 평소의 서준은 웬만한 일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성격으로 유명했으니까. "누가... 이렇게 했는지는 모르는 거고." 서준이 다시 물었다. "아이가 아직 의식이 온전치 않아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은 더 안정을 취해야 할 겁니다." 의원의 대답에 서준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소식은 곧 한도현에게도 전해졌다. 한도현은 서재에서 보고를 듣고 미간을 좁혔다. "서준이 길에서 아이를 데려왔다고?" "네, 가주님. 신원 불명의 여자아이입니다. 상태가 심각해서 지금 별채에서 치료 중입니다." 한도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남의 일에 웬만해선 나서지 않는 성격. 그런 아들이 처음 보는 아이를 직접 안아 데려왔다는 게 뜻밖이었다. "직접 안고 왔다고 했나." 한도현이 재차 확인했다. "예. 두 시간 거리를 직접 걸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도현의 손끝이 서류 위에서 잠시 멈췄다. 서준이 남을 위해 그 정도로 움직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대로 두어라." 한도현이 짧게 명령했다. "단, 아이의 신원을 알아봐. 어디서 온 아이인지." "알겠습니다, 가주님." 시종이 물러난 뒤, 한도현은 홀로 서재에 남아 창밖을 응시했다. 아들이 데려온 아이라는 존재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 지시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이때만큼은 한도현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 다은이 다시 눈을 뜬 건 그날 밤 늦게였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부드러운 이불 감촉이 낯설어서, 다은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잠시 의심했다. 몸을 조금 움직여 보려 했지만, 온몸이 무겁게 짓눌린 듯 말을 듣지 않았다. "깼어?"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은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봤다. 길에서 자신을 안아 올렸던 그 소년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소년의 눈매는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이상하게 위압감이 없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다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말을 뱉는 것만으로도 목이 아려 왔다. "한람 가 저택이야. 걱정 마, 아무도 널 해치지 않아." 서준이 그렇게 말하며 물그릇을 내밀었다. 다은은 그 말을 듣고도 몸을 움츠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해치지 않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 말을 해 놓고 뒤통수를 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은의 시선이 물그릇과 서준의 얼굴 사이를 오갔다. 받아도 되는 건지, 이게 무슨 함정은 아닌지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서준은 그런 다은의 반응을 보며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물그릇을 조금 더 가까이 밀어 줬을 뿐이었다. 방 안에는 오직 낮은 촛불 하나만 흔들리고 있었다. 다은은 그 불빛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이 물그릇에 닿기 직전, 다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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