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널 데려가기로 했다

3화

다은은 밤새 걸었다. 방향도 목적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마을을 벗어나는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성당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신부님이 살아 계셨다면 분명 알려 주셨을 텐데, 이제 그 신부님도 없었다. 새벽바람은 매웠다. 다은은 얇은 옷 하나만 걸친 채였다. 손끝과 발끝이 점점 감각을 잃어 갔다. 처음에는 시렸고, 그다음에는 저렸고, 이제는 아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나올 거야.' 다은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풀이해 말했다. 사실은 확신이 전혀 없었다. 길은 계속 뻗어 있었다. 굽은 곳을 돌면 뭔가 나올 것 같았지만, 굽은 곳을 돌면 또 다른 굽은 길이 나왔다. 다은은 발밑을 내려다봤다. 신발은 이미 어제 낮에 밑창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맨발과 다름없는 발이 자갈길을 밟을 때마다 따끔거렸지만, 그것도 이제는 익숙했다. *** 해가 뜨고 다시 지는 동안, 다은은 마을 하나를 지났다. 사람들에게 성당의 위치를 물어보려 했지만, 그 누구도 다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넝마 같은 옷을 걸친 아이에게 관심을 주는 어른은 없었다. 한 번은 시장 어귀에서 채소를 팔던 여인에게 다가가 입을 열어 보았다. "저, 성당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여인은 다은을 힐끗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휘저었다. 가라는 뜻이었다. 다은은 더 묻지 못하고 돌아섰다. 마른 빵 한 조각은 첫날 저녁에 다 먹어 버렸다. 그 뒤로 다은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고픔은 처음 몇 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뱃속이 텅 빈 채로도 그럭저럭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다은은 알지 못했다. 둘째 날 밤, 다은은 배가 고픈 것도 잊었다. 그저 다리가 무거웠고, 눈앞이 자꾸 흔들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세상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나무를 붙잡고, 돌담을 짚고, 그렇게 겨우 몸을 세웠다. '졸리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다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정확히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길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별도 몇 개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 다은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발이 가는 대로 걸었다. *** 다은이 걷고 있던 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외곽 도로였다. 그 도로는 한람 가의 영지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했다. 서준은 그날 밤 그 길을 지나고 있었다. 밤 산책이 예상보다 길어져, 그는 말도 없이 저택에서 두어 시간이나 떨어진 곳까지 걸어와 있었다. 원래는 저택 정원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원을 나서니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고, 산책로를 따라가니 숲길이 나왔고, 숲길을 지나니 어느새 외곽 도로였다. 서준은 뒤늦게 걸어온 거리를 셈해 보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길을 좀 잘못 든 것 같은데." 서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인적이 드문 외곽 도로에 등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가려면 최소 두 시간은 다시 걸어야 할 터였다. 서준은 잠시 이마를 짚고 서 있었다. 그때 서준의 눈에 길가에 쓰러져 있는 작은 형체가 들어왔다. *** 처음엔 자루인가 싶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짐짝인가, 하고 서준은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것이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작은 여자아이였다. 얼굴은 흙과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옷은 다 젖어 있었고, 몸은 놀랄 만큼 말라 있었다. 팔은 나뭇가지처럼 가늘었고, 손등에는 온통 긁힌 상처였다. "이봐." 서준이 급히 무릎을 꿇고 어깨를 흔들었다. 아이는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지만, 반응이 거의 없었다. 몸을 흔들 때마다 머리가 힘없이 옆으로 넘어갔다. 서준은 손목을 짚어 맥을 확인해 보았다. 있긴 있었다. 다만 너무 느리고 약했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서준은 그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열여섯 평생, 이렇게 위태로운 사람의 숨을 눈앞에서 본 적은 없었다. 저택에서 하인이 앓아눕는 것도, 사냥터에서 짐승이 죽어 가는 것도 본 적 있었지만, 이런 종류의 위태로움은 처음이었다. 서준은 잠시 망설였다. 저택으로 돌아가 사람을 부를 시간이 있을까. 아니, 그럴 시간이 없어 보였다. 저택까지 가는 데만 두 시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데 또 두 시간. 아이는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업고 가는 게 빠르겠다.' 서준은 그렇게 판단하고 몸을 낮췄다. *** 다은은 눈을 감은 채, 아주 먼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그 목소리인가.' 다은은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익숙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낮고 조금 다급한, 낯선 소년의 음성이었다. 신부님의 목소리와도 달랐고,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와도 달랐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는데,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정신 좀 차려 봐."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다은은 대답하려 했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꺼풀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마치 남의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과, 이대로 그냥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목소리는 몇 번 더 다은을 불렀다. 흔들림도 느껴졌다. 누군가 다은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점점 멀어지는 감각이었다. '여기서 죽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누군가의 팔이 다은의 몸을 들어 올렸다. 온기가 느껴졌다. 다은이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온기였다. 그 온기는 신부님의 손을 잡았을 때와도, 담요를 덮었을 때와도 달랐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뜨겁고 확실한 온기였다. 다은의 몸이 그 온기 쪽으로 조금 기울었다. 의식이 남아 있었다면 스스로도 놀랐을 반응이었다. 무언가가 다은을 등에 업었다. 걸음이 시작되는 게 느껴졌다. 규칙적이고 힘 있는 걸음이었다. 그 흔들림이 자장가처럼 다은을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다은의 의식은 완전히 끊겼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