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구했더니 청혼받았습니다

5화

마차가 멈춰 서자 심장이 먼저 요동쳤다. 바퀴 소리가 잦아들고, 그 뒤를 따라 정적이 찾아왔다. 문이 열리고, 시린 바람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겨울 초입의 공기는 살갗을 스치기만 해도 따끔거렸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마차에서 내렸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자갈길의 냉기가 신발 밑창을 뚫고 올라왔다. 눈앞에 펼쳐진 진성 공작가의 규모는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높이 솟은 기와지붕, 정교하게 조각된 대문, 끝없이 이어진 회랑. 대문 하나의 폭이 침방 전체보다 넓었다. 기와 끝마다 매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려 낮게 울렸다. '이곳이 이제 내가 살아갈 곳이다.' 말로만 듣던 것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정문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그 모습이 마치 시험대에 올라선 나를 심사하려는 배심원 같았다. 곽서겸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와 나를 맞이했다. "영애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의 말투에는 진심 어린 온기가 담겨 있었다. 목소리의 높낮이, 시선을 맞추는 각도, 손끝의 예를 갖춘 정도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이 사람만은 진짜로 나를 반기는 것 같다.' 그 옆으로 늘어선 시녀와 시종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옷깃 하나 흐트러짐 없이 각이 잡힌 태도, 그러나 눈동자만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지만, 그 눈빛에는 노골적인 관찰이 실려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의 질감부터 걸음걸이까지 하나하나 뜯어보는 시선이었다. '저 눈빛들, 나를 저울질하고 있구나.' 시장에서 물건 값을 매기듯, 나라는 사람의 값어치를 계산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 시녀가 다른 시녀에게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침방나인이었다지." "그런 애가 정말 며느리가 될 수 있을까."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낮게 얹혔다. "저 옷차림 좀 봐. 급하게 지어 입힌 게 티가 나잖아." "그러게, 저런 걸로 어디 감히 이 댁 안에……." 일부러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였다. 숨죽인 웃음소리가 뒤이어 옅게 퍼졌다가 금세 사라졌다. 나는 못 들은 척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귓불이 뜨거워졌지만, 걸음의 속도만은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다. 첫걸음부터 밟히고 시작할 순 없다.' 대전 앞에 다다르자, 화려한 예복을 입은 노부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단으로 층층이 두른 옷자락이 계단 아래까지 흘러내려 있었고, 손목에는 옥으로 깎은 장신구가 무겁게 걸려 있었다. 짙게 그려진 눈썹 아래로, 냉담한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시선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살갗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저분이 공작가의 어른이신가 보다.' 곽서겸이 미리 언질을 줬던 그 이름, 대부인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 것이었다. 예법대로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태정 서은채, 인사 올립니다." 허리를 숙이는 각도까지 미리 배운 대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맞췄다. 한참 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적막이 길게 이어졌다. 바람에 풍경 소리만 낮게 울릴 뿐,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이들 모두 그 침묵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노부인의 입이 열렸다. "침방나인이 감히 어디까지 올라오는지, 두고 볼 일이구나." 낮고 차가운 음성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날이 서 있었다. 주변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가 이내 눌려 사라졌다. 누군가는 손으로 입을 가렸고, 누군가는 아예 대놓고 고개를 돌려 웃음을 감췄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표정을 지키려 애썼다. 속에서는 뭔가 뜨겁게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견제는 예상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이 정도면 시작부터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좋다. 어차피 순탄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곽서겸이 옆에서 조용히 나를 감쌌다. "영애님,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 무거운 공기를 잠깐이라도 흩어놓기에는 충분했다. 그의 손짓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동안, 등 뒤로 수많은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시선들은 화살처럼 정확했고, 하나같이 등판 한가운데를 겨누고 있었다. 회랑을 지나는 내내 아무도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지나치는 시종들은 고개를 숙였지만, 그 숙임에는 예의가 아니라 무관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투명한 벽 하나가 나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내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그 벽은 함께 움직이며 나를 이 저택으로부터 갈라놓았다. 그 벽 너머로, 이곳 사람들 모두가 나를 이방인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회랑의 기둥마다 새겨진 문양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이 집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실감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집안에 침방나인 출신이 발을 들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방에 도착해서야 나는 겨우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방문이 닫히기 전까지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자,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넓은 정원이 보였다. 손질이 잘된 나무들, 정갈하게 깔린 돌길, 그 모든 것이 이 집안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정원 한쪽, 회랑 기둥 뒤에 누군가가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젊은 여인이었다. 옷차림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서 있는 자세만으로도 이 집안에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오래도록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아까 대문 앞에서 마주쳤던 노부인의 것과는 또 달랐다. 노부인의 눈빛에는 명백한 적의가 있었지만, 저 여인의 눈빛에는 뭔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경계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그녀가 누구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시선 하나만으로도, 이 저택에서 나를 향한 진짜 견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창가에서 물러나지 않고 계속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팽팽한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는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었다. 곽서겸이 방문을 닫기 직전,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영애님. 이곳에서는, 말 한마디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의 표정에는 평소의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다 알지 못했다. 문이 닫히고, 정원의 그 여인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그녀의 시선이 남긴 서늘함을 오래도록 떨쳐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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