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오후 3시, 인천 제3부두 근처를 지나던 본좌의 코끝에 비린 갯내와 기름 냄새가 뒤섞여 스쳐 지나갔다.
바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색빛으로 잠잠하였고, 본좌는 그저 회수반 순찰의 일환으로 이 구역을 지나던 참이었다. 요즘 들어 회수반이라는 자리도 참으로 편치 않은 자리라, 매일같이 잔여 몬스터의 흔적이나 살피고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참으로 고단한 하청업이로다.'
그리 생각하던 찰나, 요란한 함성이 귓전을 때렸다.
"으아아악!!"
비명이 아니라 함성이라 여겼던 그것이, 실은 진짜 비명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부두 한쪽, 임시 촬영 장비가 늘어선 곳에서 사람들이 우왕좌왕 흩어지고 있었다. 조명 스탠드가 넘어지고, 케이블이 발에 걸려 사람들이 고꾸라졌다. 누군가는 마이크를 내던지고 냅다 도망쳤다.
"위장균각충*이다!"
*위장균각충: 겉모습을 위장하여 은신하는 갑각류형 몬스터. 게이트 소멸 후에도 잔여 개체로 남는 경우가 있음.
본좌의 시야에 거대한 갑각 생물이 들어왔다. 크기는 자동차 한 대만하고, 등껍질이 부두의 콘크리트 바닥과 흡사한 문양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참으로 교활한 요물이로다. 저 은신술이라면 본좌의 문파에서도 상급 첩보술로 취급했을 것을.'
그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낯익은 얼굴, 이하준이라는 청년이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카메라를 놓지 못한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준씨! 도망쳐요!"
뒤편에서 여성 하나가 소리쳤다. 촬영 담당인 듯한 그녀는 카메라를 든 채로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위장균각충의 앞다리가 이하준을 향해 치켜올려졌다. 근처의 헌터 몇몇이 있었으나, 갑작스런 습격에 대응이 늦었다. 누군가는 무기를 꺼내려다 발이 얽혀 넘어지기까지 하였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본좌는 순간적으로 【진안통찰】을 발동하였다. 습관이었다.
[대상: 위장균각충. 실제 등급: 표기상 하급, 실제 중급 하. 급소: 좌측 앞다리 관절부. 위험도: 대상자 즉사 가능.]
즉사 가능. 그 두 글자가 본좌의 뇌리에 박히는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할 겨를이 없도다. 저것이 백면서생*을 짓뭉개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느니라!'
*백면서생: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
본좌는 근처에 놓여 있던 촬영용 삼각대를 집어 들고 그대로 위장균각충의 좌측 앞다리 관절부를 후려쳤다.
타악-
생각보다 둔탁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삼각대라는 것이 이런 용도로 쓰일 물건은 아니었을 터인데, 그러나 그 촬영 도구는 정확히 그 급소를 파고들었고, 위장균각충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르륵!"
놈이 몸을 뒤틀며 뒷걸음질쳤다. 등껍질이 부딪히는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본좌는 이하준의 팔을 잡아당겨 뒤로 물러섰다.
"괘, 괜찮으세요?"
이하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괜찮다 하기엔 아직 이르오. 저놈이 다시 일어설 것이니."
본좌는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삼각대를 다시 고쳐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났으나, 겉으로는 태연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물러서 있으시오. 이것은 본좌가..."
그 순간이었다.
[감정 스킬 【진안통찰(眞眼洞察)】이 위험 감지 영역에서도 작동합니다.]
[신규 발견: 본 스킬은 '가치'와 '위험' 두 속성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습니다.]
본좌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이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가치를 읽는 눈이, 위기를 읽는 눈으로도 작동하는 것이던가. 이는 마치 하나의 영맥*에서 두 개의 검로가 뻗어나오는 것과 같도다.'
*영맥: 무공의 기운이 흐르는 통로.
허나 감탄할 겨를조차 사치였다. 위장균각충이 다시 몸을 세우며 돌진해왔다. 그 속도는 결코 하급 몬스터라 부를 수 없는 것이었으니, 본좌는 다급히 다시 스킬을 발동하였다.
[급소: 좌측 앞다리 관절부, 이미 손상됨. 2차 급소: 등껍질 이음새 부분. 타격 시 완전 무력화 가능.]
본좌는 놈의 돌진 방향을 살짝 비켜서며, 삼각대를 등껍질 이음새 부분에 정확히 꽂아넣었다.
콰직-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위장균각충이 그대로 널브러졌다. 놈은 몇 번 다리를 떨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부두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파도 소리만이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소음이었다.
누군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뒤늦게 도착한 헌터 하나가 무기를 든 채로 멍하니 서 있었고, 넘어졌던 촬영 스태프들도 하나둘 몸을 일으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났나요?"
촬영 담당 여성, 훗날 윤서아라는 이름을 알게 될 그녀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카메라가 굳게 붙들려 있었다.
"...끝났소이다."
본좌는 삼각대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애써 태연한 척 답했다. 그러나 심장은 여전히 세차게 뛰고 있었으며,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태산처럼 무게를 잡았으나, 속으로는 뛰는 가슴을 억누르기 바빴으니 참으로 겉과 속이 다른 순간이었다.
이하준이 벌떡 일어나 본좌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손이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본좌는 순간 뼈마디가 아릴 지경이었다.
"진짜 감사합니다! 저 죽을 뻔했어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오."
"헌터세요?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본좌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등급이라... 참으로 곤란한 물음이로다. 본좌의 등급을 사실대로 고하면 또 얼마나 시끄러워질꼬.'
"...본좌는, 그저 회수반에서 일하는 자요."
"회수반이요? 그런데 어떻게 그 급소를..."
주변에서 몰려든 다른 헌터들도 놀란 눈으로 본좌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시작되었다.
"저 사람, 방금 그거 봤어?"
"삼각대로 위장균각충을 한 번에... 저거 위험도 안 낮은데."
"회수반이라는데 뭔 헌터보다 더 헌터 같네."
"저 관절 각도 자를 대고 친 것도 아니고, 대체 뭐야?"
본좌는 뒤통수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원치 않게 실력이 드러난 것이었다. 마치 은신해 있던 절정 고수*가 실수로 초식을 펼쳐 정체를 들킨 형국이었으니, 참으로 낭패로다.
*절정 고수: 무공이 극도로 뛰어난 고수.
윤서아가 조심스레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저... 이거 방금 다 촬영됐는데요."
본좌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촬영이라 하면?"
"생방송이었어요. 지금 시청자가... 어, 3만 명 넘게 보고 있었는데."
3만 명. 그 숫자가 본좌의 머릿속에서 종을 울리듯 쟁쟁하게 맴돌았다.
'조용히 살고자 했거늘, 참으로 낭패로다. 이는 마치 은거하던 산문에서 하산하자마자 만천하에 얼굴을 드러낸 격이 아니던가.'
카메라 화면 한쪽 구석, 채팅창이라는 것이 쉬지 않고 흘러 올라가고 있었다. 본좌는 그것이 무슨 요망한 문서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으나, 윤서아의 표정을 보아 결코 좋은 조짐은 아닌 듯하였다.
이하준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섰다.
"저기, 성함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저희 채널에서 꼭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본좌는 그 물음에 즉답을 하지 못하였다. 이미 화면 너머 수만 명이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헌터들은 여전히 수군거림을 멈추지 않았고, 누군가는 벌써 손바닥만 한 요망한 기계를 꺼내 본좌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사진이라는 것을 찍는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오늘, 하필이면 이곳에서 이런 낭패가 벌어질 줄이야. 이는 필시 하늘이 본좌를 시험하려는 계책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도다.'
본좌는 뒤로 슬며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는 것을, 몰려드는 인파의 눈빛 속에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