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잘렸더니 감정사 만렙이라니

3화

쏴아아- 파도 소리가 아직 어두운 부두를 채우고 있었다. 오전 6시, 인천 제3부두 던전 회수반 앞. 본좌는 낡은 안전화를 신고 그 앞에 섰다. 발끝에 밟히는 시멘트 바닥의 냉기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으나, 무인이라면 이 정도 삭풍*은 견뎌야 하는 법이었다. *삭풍: 겨울철에 부는 찬 바람. 여기서는 새벽 부두의 냉기를 비유한 표현. 창고 같은 건물 안에는 이미 십여 명의 인부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거친 인상의 사내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본좌의 정장 재킷은 참으로 이질적인 존재였다. 마치 산적 소굴에 갓 씻은 서생 하나가 잘못 들어온 형국이라, 본좌 스스로도 그 낙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이, 저 형은 뭐야?" "박 반장 아는 사람이라던데." "근데 옷차림이 왜 저래. 결혼식장 가는 줄."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본좌는 개의치 않았다. 무릎이 아프도록 굽히기보다는, 실력으로 입증하는 것이 도리이니라. 옷차림으로 사람을 논하는 것은 하수의 안목이라, 본좌는 그저 태연히 턱을 들었다. 박태식이 다가와 상황을 설명하였다. "오늘 게이트 하나가 자연 소멸됐어. 소멸된 게이트 안에 있던 잡동사니가 폐기물로 나왔는데, 그거 분류하고 감정하는 게 오늘 일이야." 창고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인 폐기물이 보였다. 부서진 갑주 조각, 이름 모를 광석,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 파편들. 마치 어느 전장의 뒤처리를 도맡은 형국이라, 본좌는 문득 이것이 옛적 전쟁터의 유물 정리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본좌가 감정하는 것이오?" "'본좌'는 그만하고. 그래, 네가 감정한다고. 손 대고 스킬 써서 대략 가치 매기면 돼." "알겠소. 본좌의 눈은 십오 년간 잡철과 보물을 가려온 눈이니라." "...그래, 그거 말투부터 좀 어떻게 해봐라." 본좌는 고개를 끄덕이며 첫 번째 물건, 녹슨 쇳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감정 스킬 【감정(鑒定)】을 사용합니다.] [대상: 부식된 합금 조각. 가치: 하급.] 예상대로였다. 시시한 잡철이었다. 본좌는 그것을 잡철함에 던져넣었다. 쨍- 하는 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대부분의 물건이 하급으로 판정되었고, 본좌는 슬며시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무료한 노동이로다. 갑주 조각 하나, 부러진 창날 하나, 정체불명의 사슬 하나. 모두가 하급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백전백승*의 명장이 잡초 뽑는 일을 하는 것과 같은 굴욕이었다. *백전백승: 싸울 때마다 늘 이김. 여기서는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는 표현. 옆에서 함께 물건을 나르던 사내가 본좌를 향해 힐끔거리며 물었다. "형씨, 근데 진짜 무슨 스킬 써요? 그, 반짝반짝하는 거 나오나?" "본좌의 스킬은 그런 요망한 광채와는 거리가 머니라. 그저 마음의 눈으로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오." "...그게 반짝이는 거 아니에요?" 본좌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여 그저 헛기침을 하고 다음 물건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던 중, 폐기물 더미 아래에서 검은 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크기는 주먹만 하고, 표면에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여느 잡석과는 다른 기운이 흐르는 듯하여, 본좌의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다. 본좌는 그것을 집어 들며 습관처럼 스킬을 발동하였다. [감정 스킬 【감정(鑒定)】을 사용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경고※ 스킬 사용 조건이 특수 상태와 결합되었습니다.] [【감정(鑒定)】이 【진안통찰(眞眼洞察)】로 진화합니다.] [숨겨진 속성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본좌는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이 무슨 조화인가. 머릿속에 섬광이 스치는 듯한 감각이 지나갔다. 마치 십오 년간 닫혀 있던 문 하나가 벌컥 열리는 느낌이라, 본좌는 그 자리에서 잠시 숨을 멈추었다. [대상: 마정석 파편(등급 미표기). 실제 등급: 중급 상. 시중 미판정으로 인해 저평가됨. 예상 거래가: 180만 원.] "...180만 원?" 본좌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옆에 있던 인부가 흠칫 놀라 쳐다보았다. "뭐야,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오." 본좌는 그 돌을 슬쩍 주머니에 감추려다가, 이내 정직함이 무인의 본이라 여기고 박태식에게 가져갔다. 손안의 돌이 묵직하니 참으로 든든한 무게였다. "형님, 이것이... 심상치 않아 보이오만." 박태식이 돌을 살펴보며 미간을 좁혔다. 손바닥 위에 돌을 얹어 요리조리 돌려보는 그의 표정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이건... 그냥 잡석 아니냐? 검사기로는 하급 나오는데." "검사기라는 것은 그저 기계 나부랭이일 뿐이오. 본좌의 감으로는 이것이 훨씬 값어치가 있을 것이오." "기계 나부랭이라니, 야 그거 협회에서 몇 억 주고 들여온 감정 장비다." "허나 그 장비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 아니오? 사람의 손이 만든 것에는 늘 빈틈이 있는 법이오." 박태식은 반신반의한 얼굴로 돌을 감정소에 보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결과가 나왔다. "...뭐야 이거. 중급 상 마정석 파편이라는데?" 박태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사기가 놓친 걸 네가 어떻게 잡았어?" 본좌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본좌의 안목이란 것이, 그리 만만치 않소이다." "말투는 좀 그렇다만... 야, 이거 팔면 인센티브 붙는다. 너 오늘 첫날인데 대박 쳤어." 주변 인부들도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저 형 뭐야, 진짜 뭐 있는 거야?" "박 반장이 아무나 데려온 게 아니었나 보네." 본좌는 그 시선들 속에서 슬며시 어깨를 펴며, 십오 년의 세월이 결국 헛되지 않았음을 속으로 자축하였다. 본좌의 통장에 그날 오후, 정산금 72만 원이 입금되었다. 회수반의 하루치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더한 금액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숫자를 확인하며, 본좌는 그 요망한 손바닥만 한 기계를 몇 번이고 흔들어 보았다. 혹여 숫자가 착오는 아닐는지 확인하려는 심산이었다. '참으로 개세지재*로다.' *개세지재: 세상을 뒤덮을 만한 재능. 여기서는 자신의 재능을 자화자찬하는 표현. 본좌는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흐뭇해하였다. 15년간 잡기라 여겼던 【감정】이, 이제 진안통찰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참된 힘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늘이 본좌를 버리지 않았음이라. 참으로 대기만성*이로다. *대기만성: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 여기서는 자신의 오랜 무명 생활이 드디어 빛을 본 것을 자축하는 표현. 그러나 그 감탄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알림: 【진안통찰】은 특정 조건에서만 발동합니다. 발동 조건: 대상의 진짜 가치와 표면 가치의 격차가 존재할 때.] 조건부 발동이라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 힘을, 본좌는 아직 완전히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검을 얻었으되 그 검이 언제 뽑힐지 검 스스로 정하는 격이니, 이 어찌 온전한 내 것이라 할 수 있으리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창고를 나서며 박태식이 툭 던지듯 말했다. "내일은 정식 경매장 가는 날이다. 오늘 나온 물건들 팔러. 너도 같이 가자." "경매장이라 하면... 무림맹의 저잣거리 같은 곳이오?" "...뭐 비슷하다고 치자. 근데 거긴 헌터들도 많이 오거든. 니 말투 그거, 거기 가면 진짜 무시당한다." "헌터라는 자들도 결국은 사람이오. 본좌를 무시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의 안목이 미숙한 탓이리라." 박태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 불이 그의 얼굴을 잠시 붉게 비추었다가 사그라들었다. "...내일 두고 보자." "두고 보시오. 본좌, 그 경매장이라는 곳에서도 발군*의 안목을 떨칠 것이오." *발군: 여러 사람 가운데서 특별히 뛰어남. 박태식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연기만 길게 내뿜었다. 그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본좌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 말이 어떤 예언이었는지, 본좌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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