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잘렸더니 감정사 만렙이라니

1화

하늘이 참으로 청명하였으니, 이는 필시 본좌의 15년 공로가 하루아침에 방출되는 것을 비웃는 하늘의 조롱이었으리라. 인천 제3게이트 경비초소, 그곳이 본좌 강도현의 무림맹*이었다. *무림맹: 무인들이 모이는 총본산. 여기서는 도시경비회사 사옥을 이름. 15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문턱을 넘었느니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게이트에서 요물이 기어나오나, 본좌는 자리를 지켰었다. 그것이 곧 무인의 도리요 충심이라 여겼음이니. 신입 시절,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하급 마수 한 마리를 홀로 붙잡아 표창을 받았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본좌의 뇌리에 선명하도다. 그때만 해도 본좌의 앞길은 대붕의 날갯짓처럼 창창하였거늘. 그런데 오늘, 팀장이라는 자가 본좌를 불러 앉히더니 덜컥 이런 말을 던졌다. "강도현 씨, 내일부터 안 나오셔도 돼요." 본좌는 잠시 그 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필시 잘못 들었으리라 여겨 다시 물었다. "본좌더러... 아니, 저더러 하루 쉬라는 뜻이십니까?" "아뇨. 계속. 계속 안 나오셔도 된다고요." 팀장의 눈빛에는 미안함 반, 귀찮음 반이 뒤섞여 있었다. 본좌는 그 눈빛만으로도 사태의 전말을 파악하였다. 참으로 개파대전*이로다. *개파대전: 문파가 열리고 닫히는 큰 사건. 여기서는 조직 개편을 뜻함. "회사가 AI 감지 시스템으로 전환한다고요. 인건비도 그렇고... 강도현 씨 나이도 있고 해서." 나이. 서른하나. 그 두 글자가 화살처럼 뒤통수를 관통하였다.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아니, 정확히는 관자놀이 부근이 지끈거리기 시작하였다. "저... 그래도 15년을 근무했는데, 무결근이었습니다만." "알죠, 알아요. 근데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나요. AI는 잠도 안 자고 월급도 안 받잖아요." 그 말에 본좌는 잠시 말을 잃었다. 잠도 안 자고 월급도 안 받는 요물이라니. 본좌가 15년간 겨루어온 상대는 게이트의 마수가 아니라 애초에 이 회사의 곳간이었던 게로다. "위로금은 세 달 치 나갈 거고, 실업급여도 신청하시면 될 거예요." 실업급여라는 요망한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본좌도 어렴풋이 아는 바였으나, 15년 무결근의 대가가 고작 그런 곳납*이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었다. *곳납: 관아에 바치던 세금 또는 관아에서 내려주는 것을 뜻하는 옛말. 여기서는 정부 지원금을 이름. 본좌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리를 곧게 펴고, 최대한 위엄 있게 말하려 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참으로 창피한 노릇이었다. 팀장은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사직서 양식과, 짧은 사원 카드 반납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본좌는 그것을 받아 들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것이 곧 강도현이라는 문파의 폐문 선언이로다.' *** 초소를 나서자마자 [게이트 감시 스킬 【감정(鑒定)】 - 접근 권한이 해제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연이어 [경비회사 직원 전용 통행패*가 회수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뒤따랐다. *통행패: 관문을 통과할 때 보이는 패. 여기서는 사원증 겸 출입증을 이름. 본좌는 이 요망한 손바닥만 한 기계, 흔히들 스마트폰이라 부르는 전서구*를 내려다보며 실소를 흘렸다. *전서구: 소식을 전하는 새. 여기서는 스마트폰을 이름. "15년을 부려먹고 나가는 문 앞에서까지 통보라니, 참으로 야박하도다." 중얼거리자니 지나가던 신입 경비원 하나가 흠칫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저 어린 것은 아직 본좌의 대업을 모르는도다. 본좌는 애써 헛기침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저 아저씨 오늘 잘렸다던데." "쉿, 들려." 등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본좌는 애써 못 들은 척 걸음을 옮겼다. 참으로 소인배들의 입방정이로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는 점이 더욱 통탄스러웠다. 【감정】이란 스킬은 본좌가 게이트 근무 중 우연히 얻은 잡기였다. 물건이나 사람의 진위, 대략적 가치를 어렴풋이 짚어내는 정도의 미약한 힘이었으니, 헌터들 사이에서는 하급 판별 스킬이라 불리며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그래도 15년간 반입 물품 검사에는 요긴하게 써먹었었다. 몰래 위험 물품을 들여오려던 자들을 몇이나 잡아내었던가. 그 공로를 아는 이는 오직 본좌 하나뿐이었으나, 그마저도 이제는 흘러간 무용담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스킬을 쓸 자리조차 사라졌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본좌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15년을 바친 자리에서 이토록 허망하게 밀려나다니, 이는 필시 하늘이 본좌에게 새로운 시험을 내리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좋다. 이 강도현, 어디 한번 새 판을 짜보자꾸나.' 창에 비친 본좌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초췌하였다. 눈 밑에는 그늘이 짙었고, 입가에는 억지로 끌어올린 결기만이 겨우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결의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지하철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는 순간, 본좌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꾸르륵- 옆자리 아주머니가 슬쩍 자리를 옮겼다.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었다. 본좌는 애써 헛기침을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뱃속의 반란은 좀처럼 진압되지 않았다. 원룸에 도착하여 통장을 확인하니, 잔고는 위로금을 제하고도 그럭저럭 버틸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재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 본좌는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유통기한이 사흘 지난 계란 두 알과, 언제 사두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반찬통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참으로 살림살이가 궁핍하도다. 본좌는 조용히 냉장고 문을 닫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전서구를 만지작거리며 채용 공고를 뒤적였다. '31세, 경력 15년 경비직... 이라.'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조건은 하나같이 냉랭하였다. 서른 이상은 지원 불가라는 문구가 태반이었다. 심지어 한 공고에는 "청년 우대"라는 문구 아래 나이 제한이 스물아홉까지라 적혀 있었다. 본좌는 그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두 살 차이로 청년과 노병의 경계가 갈리다니, 참으로 세상의 인심이 매정하도다. 본좌는 눈을 감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바로 사회라는 문파의 규율이던가. 참으로 각박하도다.' 그때, 화면 위로 낯선 알림이 떠올랐다. [알림: 귀하는 무직 전환 대상자입니다. 지역 고용센터 방문을 권장합니다.] 무직 전환 대상자. 그 다섯 글자가 본좌의 심장을 다시 한번 쿡 찔렀다. 본좌는 전서구를 내려놓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좁은 원룸, 낡은 옷장, 그리고 벽에 걸린 15년 무결근 표창장. 그 종이 한 장이 이제 와서는 그저 벽지 위의 얼룩처럼 느껴졌다. '표창장 따위,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구나.' 창밖으로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본좌는 눈가가 살짝 촉촉해지려는 것을 급히 손등으로 훔쳐냈다. 이는 결코 눈물이 아니요, 그저 미세먼지 탓이리라. 내일부터, 본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물음을 곱씹으며 본좌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잠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고, 대신 뱃속에서 다시 한번 꾸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으로 이 육신은 본좌의 근엄함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도다. 그 물음의 답을 찾기까지, 본좌는 자신이 얼마나 좁은 우물 안에 있었는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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