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내놔봐." 박태준이 손을 뻗었다. 목소리에는 명령이 아니라 이미 확정된 결과를 알리는 통보의 톤이 담겨 있었다.
그 손짓 하나에 화단 전체의 공기가 얼어붙는 걸 느꼈다. 박태준이 손을 내밀 때는 늘 그랬다. 거절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이 학교에 다니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거... 그냥 곤충이에요." 나는 사육통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 떨림이 곤충을 지키려는 최후의 저항이라는 걸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세 달을 키운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였다. 유충일 때부터 온도를 재고, 발효 톱밥을 갈아주고, 습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밤에도 일어나 분무기를 뿌렸던 시간들이 손바닥 안에서 압축되는 기분이었다. 이름도 지어줬다. 헤라클. 유치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세계였다.
"곤충이냐, 알아. 내놔봐."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정민호와 최성진이 양쪽에서 슬며시 다가와 퇴로를 막았다.
발소리가 없었다. 원래부터 그런 애들이었다. 조용히 자리를 잡고, 조용히 사람을 가두고, 조용히 웃는 애들. 소리를 내는 건 언제나 당하는 쪽이었다.
윤서아가 뒤늦게 나타나 상황을 구경했다. "뭔데, 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미와 조롱이 뒤섞여 있었다.
하이힐 소리가 화단 시멘트 바닥을 톡, 톡 두드리며 다가왔다. 나는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 들으면서, 이 상황이 이미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화단은 낮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유일한 출구는 박태준이 서 있는 방향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손끝부터 시작된 떨림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왔다.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담벼락을 넘으면? 무릎 높이도 안 되는 낮은 벽이었지만, 그 위로 몸을 던지는 순간 사육통을 놓칠 게 뻔했다. 정민호 쪽으로 파고들면? 어깨 넓이만 봐도 승산이 없었다. 소리를 지르면? 이 시간, 이 구석 화단까지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계산은 전부 실패로 끝났다.
"이거 저한테 소중한 건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소중해? 씨발, 벌레가 소중해?" 박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화단 전체를 삼킬 만큼 크게 울렸다. "야, 정민호."
이름이 불리는 순간 정민호의 몸이 움직였다. 미리 짜놓은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정민호가 순식간에 내 팔을 붙잡았다. 최성진이 반대쪽 팔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순간 사육통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안 돼!"
내 목소리는 화단을 넘지 못했다.
박태준이 사육통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오, 이거 크네." 그의 손가락이 통 안으로 들어갔다.
크다는 말이 그렇게 사람을 소름 끼치게 할 줄은 몰랐다. 그 말 속에 담긴 게 감탄이 아니라 평가라는 걸, 상품을 고르는 눈빛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발버둥쳤다. 팔이 붙잡힌 채로도 몸을 비틀며 통을 향해 다가가려 했지만 정민호의 손이 어깨를 더 세게 눌렀다. 최성진은 낮게 웃으며 내 다리를 걷어찼다. 무릎이 꺾이며 몸이 앞으로 쏟아졌다.
박태준이 헤라클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찰했다. 뿔을 손끝으로 튕겨보고, 다리를 하나씩 잡아보며 반응을 즐겼다.
"야, 이거 뜯으면 어떻게 되냐?" 그가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던지는 예고였다.
"제발..." 내 목소리는 이제 애원이었다. 자존심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채, 팔이 두 사람에게 붙잡힌 채로 나는 계속 애원했다. 제발, 그냥, 그것만은. 어떤 문장을 완성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가 헤라클의 다리 하나를 잡고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뜯겼다.
다리 한쪽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그 순간, 나는 내 안에서 뭔가가 함께 뜯겨나가는 감각을 느꼈다. 비명을 지른 건 나였는지 그 곤충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오, 이거 소리 나네?" 윤서아가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곤충도 소리 내?"
박태준은 계속했다. 두 번째 다리, 세 번째 다리. 그가 즐기는 방식은 정확히 그런 식이었다. 최대한 천천히, 최대한 오래, 최대한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며.
두 번째 다리가 뜯길 때 헤라클의 몸이 손바닥 위에서 튀어오르며 발버둥쳤다. 딱딱한 등딱지가 박태준의 손바닥을 긁는 마찰음이 들렸다. 세 번째 다리가 뜯길 땐 그 소리마저 약해졌다.
나는 정민호의 손을 떨쳐내려 온몸을 비틀었지만, 몸부림칠수록 더 세게 붙잡혔다. 눈앞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뭔지 인식하지도 못한 채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새끼 우네." 최성진이 낮게 비웃었다.
"운다, 운다." 윤서아가 손뼉을 치듯 즐거워했다. "벌레보다 더 시끄럽네."
그 말이 웃겨서 셋 다 낮게 킬킬거렸다. 그 웃음소리가 헤라클의 마지막 다리가 뜯기는 소리와 겹쳐 들렸다.
마지막 다리가 뜯겨나갈 때 나는 이미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몸 전체가 무기력하게 늘어졌고, 정민호가 잡은 손을 놓아도 그 자리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박태준은 남은 몸통을 바닥에 던졌다. 등딱지가 흙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됐어, 재미없다." 그가 발끝으로 몸통을 밟았다. 등딱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아주 작았다. 딱, 하는 짧은 파열음. 하지만 그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 뇌 안쪽까지 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소리 하나에 세 달치 시간이 전부 부서졌다는 걸 알았다.
윤서아가 하이힐을 신은 발로 내 얼굴을 밀었다. "울지 마. 씨발, 진짜 짜증나게." 그녀의 표정에는 혐오와 즐거움이 정확히 반씩 섞여 있었다.
구두 굽이 광대뼈를 눌렀다. 아팠지만 아프다는 감각조차 뒤로 밀려났다. 눈앞에 있는 건 오직 부서진 등딱지와 흩어진 다리들뿐이었다.
"이딴 걸로 우는 게 진짜 병신 같지 않냐?" 박태준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다. 완전한 무감각. 그 무감각이 나를 더 절망하게 만들었다.
무감각이 폭력보다 무서웠다. 때리는 손에 분노라도 담겨 있었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저 눈빛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지루함을 죽이는 놀이. 나는 그 놀이의 도구였다.
그때 정민호가 내 얼굴을 발로 밀었다. 뒤통수가 화단 벽돌에 부딪혔다. 시야가 순간 하얗게 번쩍였다.
최성진이 이어서 배를 걷어찼다. 숨이 막혔다. 폐 안의 공기가 한 번에 빠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몸이 반으로 접혔다.
숨을 쉬려고 입을 벌렸는데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좁아진 것 같은 감각, 물속에 처박힌 것 같은 감각. 손으로 바닥을 긁으며 숨을 찾았다.
"야, 죽이겠다." 박태준이 말리는 듯 하면서도 자기 손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나를 세워 앉히고 얼굴을 몇 번 더 때렸다. 코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맞을 때마다 시야가 흔들렸고,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헤라클의 몸통이 반복해서 보였다. 부서진 등딱지, 흩어진 다리, 그 위로 겹쳐지는 내 얼굴의 통증. 어느 순간부터는 어느 게 더 아픈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윤서아가 다시 하이힐로 내 얼굴을 밟았다. "더러운 손으로 나 만지지 마." 그녀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녀를 만진 적이 없었다. 그건 나중에 그녀가 학교에 위증하는 데 쓰일 문장이었다.
그 순간에는 그 말의 무게를 몰랐다. 그냥 억울했다. 하지만 억울함을 표현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시야가 흔들리고 소리가 멀어졌다. 몸에 남은 감각이 하나씩 지워지는 게 느껴졌다.
발소리, 웃음소리, 흙 냄새, 피 냄새. 그 모든 것들이 하나씩 꺼지는 스위치처럼 사라져갔다.
마지막으로 본 건 흙바닥에 부서진 채 뒹구는 헤라클의 몸통이었다. 그 옆에 흩어진 다리 세 개.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직전, 나는 딱 한 문장을 생각했다.
아, 조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