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성녀님, 너무 늦었습니다

4화

스크린 앞에 몰린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재밌다는 듯 웃는 사람도 있었고, 걱정스레 손을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팝콘을 씹으며 낄낄거렸고, 그 옆에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채널을 돌리려는 손이 스크린을 향해 뻗어 있었다. 화면 속에는 좁은 지하 통로가 비쳤다. 빨간 머리의 소녀가 등에 작은 카메라 장비를 매고 걷고 있었다. 조명이 흔들릴 때마다 벽면의 이끼가 번뜩였다. "여러분, 여기가 오늘의 최종 구간이에요! 시청자 수 십만 넘었네, 미쳤다!" 소녀가 밝게 외쳤다. 화면 하단으로 채팅창이 빠르게 스크롤되고 있었다. 그녀가 서보라였다. "근데 뭔가 발밑이 좀..." 보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면이 흔들렸다. 철컥- 바닥이 갈라지며 함정이 작동했다. 화면이 어지럽게 흔들리다, 비명이 터졌다. "뭐야, 이거 진짜야?!" 채팅창에 놀란 반응이 쏟아졌다. "장난 아니냐 이거 실화냐" "길드 지원팀은 어디 있어" "보라야 괜찮아?!" 하지만 화면 속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있던 동료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그녀를 함정 쪽으로 밀치는 것처럼 보였다. "야, 저거 봤어? 밀친 거 아냐?"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저거 배신 콘텐츠잖아. '지금 보여줘'가 요즘 그런 걸로 조회수 뽑는다더라." 누군가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 그거 나도 봤어. 팀원 중 하나가 배신자 역할 맡고 리액션 뽑는 거잖아. 저거 다 각본이야."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도진은 그 대화를 듣고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배신 콘텐츠?' 그는 그 말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함정에 빠진 동료를 방치하는 것이 오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가 알던 상식과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관문에서는 등을 맡긴 자를 버리는 순간 모두가 죽었다. 그것이 오십 년간 그가 배운 유일한 셈법이었다. 화면 속 보라의 다리가 함정 벽에 짓눌렸다. 비명이 스피커를 뚫고 나왔다. "살려줘요, 누구든...!" 주변 사람들 중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 무심함이 도진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저들은... 저것이 죽음이라는 걸 모르는가.' 그 순간, 도진의 발이 먼저 움직였다. +++ 스크린이 표시하는 위치 정보를 따라, 도진은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지하 진입로를 향해 달렸다. "저기요, 거긴 통제구역인데!" 경비원이 소리쳤지만, 도진은 이미 철제 울타리를 뛰어넘고 있었다. "이 사람이 미쳤나, 야! 거기 위험하다니까!" 경비원의 목소리가 뒤에서 멀어졌다. 도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좁고 습했다. 관문 특유의 공기가 느껴졌다. 오십 년이 지나도 이 감각만은 변하지 않았다. 흙과 돌 사이로 새어 나오는 축축한 냄새, 그리고 그 아래 도사린 것이 언제든 사람을 삼킬 수 있다는 예감. '이 냄새는 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도를 올렸다. '무릎을 굽히지 마라. 등을 맡긴 자를 버리는 순간, 셋 중 하나는 죽는다.' 스승의 목소리가 계단을 딛는 발소리 사이로 겹쳐 들렸다. 낡은 가르침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아 그의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좁은 통로 끝, 갈라진 바닥 사이로 보라의 손이 겨우 걸려 있었다. 손톱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아래는 어두운 함정 구덩이였고, 뾰족한 돌기들이 솟아 있었다. "버텨요!" 도진이 소리치며 몸을 던졌다. 쿵-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보라의 손목을 낚아챘다. 팔의 근육이 팽창하며 그녀를 끌어올렸다. "으아악!" 보라가 비명을 질렀다. 끌려 올라오는 순간, 그녀의 왼쪽 다리가 함정 벽의 돌기에 걸려 깊게 찢겼다.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축축하고 둔한, 살아있는 소리였다. 도진은 그녀를 안전한 바닥으로 눕혔다. 다리의 상처는 심각했다. 뼈까지 드러날 정도였다. "괜찮아요? 정신 차려요." 도진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보라의 눈이 흐릿하게 열렸다. "아... 아저씨는 누구..." 그녀가 힘없이 물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혈부터." 도진이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그녀의 다리를 압박했다. 천이 금세 붉게 젖어들었다. '상처가 깊다. 응급처치로는 부족하다.' 그는 판단했다. 하지만 이아리처럼 치유 능력을 쓸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없었다. 그 사실이 처음으로,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녀라면 이 정도는 손끝 하나로 막았을 텐데.' 손바닥에 닿는 축축한 피의 온도가, 잃어버린 것의 부재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 지원팀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십 분 뒤였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방호복을 입은 인원들이 들것을 들고 내려왔다. 그들 중 누구도 도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신원 확인용 태그를 목에 걸어주고 자리를 비키라 했을 뿐이었다. 보라는 곧바로 응급 이송되었고, 다리는 결국 절단 수술을 피할 수 없었다. +++ 병실에서 눈을 뜬 보라는, 자신의 무릎 아래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도 이상하게 담담했다. "역시... 그렇게 됐네요." 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창밖으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병실 안에는 소독약 냄새와 낮은 기계음만이 남아 있었다. "그 남자는 누구였습니까. 당신을 밀친 사람." 도진이 물었다. 병실을 지키고 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료였어요. 아니, 동료라고 믿었죠." 보라가 담요를 만지며 답했다. "요즘 스트리밍 콘텐츠 중에 '배신 시스템'이라는 게 있어요. 팀원 중 하나가 배신자 역할이 되고, 나머지는 그걸 눈치채고 살아남아야 하는 형식이요. 근데 저 사람, 진짜로 저를 밀었어요. 방송이 아니라 진짜로." "진짜와 방송의 경계가 없어졌다는 뜻입니까." 도진의 목소리에 낮은 분노가 서렸다. "그런 것 같아요. 조회수가 오르면 뭐든 용서되는 세상이니까요." 보라가 힘없이 웃었다. 그 웃음에는 슬픔보다 익숙함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까." 도진이 낮게 물었다. "처음은 아니에요. 다들 그렇게 컸어요. 밀리면 밀리는 대로, 찍히면 찍히는 대로. 그게 요즘 방식이니까." 보라가 대답했다. 그 말투에는 어떤 저항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도진은 그녀의 다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자신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다리를 잃지 않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또 지키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아리를 놓쳤던 그 손끝의 감각이 다시 떠올랐다. 손을 뻗었으나 닿지 않았던 그 순간의 무게가, 지금 이 병실의 공기 속에서도 여전히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저씨, 근데 진짜 신기한 힘을 쓰던데요. 그거 무슨 스킬이에요? 방패 아이템 등급 몇이에요?" 보라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의 담담함과는 다른,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등급이라니요." 도진이 되물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그 정도 힘이면 최소 레전더리급 장비일 텐데. 아니면 히든 클래스? 요즘 그런 콘텐츠 많잖아요, 숨겨진 회귀자라던가." 보라가 웃으며 말했다. 다리를 잃은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밝은 목소리였다. 도진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알던 방패는 그저 다섯 해 동안 함께 싸운 손때가 묻은 물건이었을 뿐, 등급 같은 것은 몰랐다. 손잡이가 닳아 반질반질해진 자리마다, 함께 버텨낸 밤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제 방패는 그냥... 오래 쓴 물건입니다." 그가 짧게 답했다. "에이, 그렇게 말하면서 다 숨기시더라." 보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 쾅- 문이 벽에 부딪혀 큰 소리를 냈다. 복도의 소음이 순식간에 병실 안으로 밀려들었다. "서보라!" 검은 긴 머리의 여자가 뛰어들어왔다. 손에는 얇고 날카로운 레이피어가 들려 있었다. 칼날 끝에서 옅은 은빛이 번뜩였다. 여자는 곧장 보라의 침대로 달려가려다, 멈춰 섰다. 시선이 먼저 도진에게 꽂혔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눈이 도진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에는 명백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네가... 보라를 이렇게 만든 놈이냐." 여자가 낮게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 안에 실린 힘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손끝이 레이피어의 손잡이를 이미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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