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오후, 남자가 알려준 주소를 따라 나섰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마을버스로 한 번 더 갈아탄 끝에 도착한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공업단지 인근이었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이 점점 낡아지는 게 눈에 들어왔는데, 처음엔 반듯한 아파트 단지였다가, 어느 순간 녹슨 철제 담장과 페인트가 벗겨진 공장 건물들로 바뀌어 있었다. 그 변화가 마치 이 세계의 뒷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분위기 하나는 제대로 잡아주네.'
은서는 버스 안에서 내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곳에 아이를 데려온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나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맡길 곳이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맡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은서를 혼자 집에 두고 이런 자리에 나온다는 상상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 바닥에서 신원 없는 놈이라는 건, 언제 어디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는 뜻이었고, 그럴 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뿐이었다. 은서를 데리고 다니는 게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떼어놓는 게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거였다.
버스에서 내려 십 분쯤 걸으니, 목적지가 보였다. 간판에는 번듯하게 '태수건설'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는데, 페인트가 아직 덜 마른 것처럼 반짝거리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최근에 새로 걸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아래 정문에서부터 어깨가 넓은 남자 둘이 눈을 부라리며 지키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이곳이 단순한 건설회사가 아니라는 건 이미 진안 없이도 짐작할 수 있었다.
'건설회사가 정문을 저렇게 지킨다고?'
일반적인 회사라면 경비원 한 명이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게 정상일 텐데, 저 둘의 자세는 경비가 아니라 문지기, 정확히는 검문소 초병에 더 가까웠다. 몸에 익은 자세, 다리를 살짝 벌리고 손을 허리춤 가까이 두는 그 습관은 아마추어가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약속하신 분?" 문지기 하나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서의 손을 잡은 채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는 왜 데려왔지?" 남자가 미묘한 눈으로 은서를 훑어봤는데, 그 시선이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계산적인 데가 있었다. 아이를 인질로 쓸 수 있을지 가늠하는 눈치랄까. 나는 미리 준비해둔 대답을 태연하게 내놓았다.
"맡길 데가 없어서."
사실 그건 반쪽짜리 거짓말이었다. 맡길 데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은서를 떼어놓을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남자는 잠시 나와 은서를 번갈아 보다가, 뭐 상관없다는 듯 손짓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겉과 안의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밖에서 봤을 때는 그냥 낡은 건물이었는데, 안쪽은 의외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복도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눈에 띄지 않게 박혀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진안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 카메라 위치를 하나씩 눈으로 세었는데, 대략 여섯 개쯤 확인한 시점에서 세는 걸 그만뒀다. 어차피 셀 필요가 없는 정보였으니까.
회의실로 들어가자,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눈빛만큼은 이 바닥에서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그대로 묻어났는데, 그가 바로 박태수였다. 그의 뒤로 서 있는 부하 셋이 눈에 들어왔고, 회의실 안의 공기가 묘하게 무거웠다. 마치 이 방 자체가 협박의 도구로 설계된 것 같았달까.
"김도윤이라고 했지?" 라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은서는 내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손에 쥔 작은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그 태연함이 오히려 이 방 안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어린애가 이런 자리에서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상한 그림이었으니까.
진안을 켜는 순간, 그의 몸 위로 떠오른 문양들이 예상보다 훨씬 짙고 복잡했다.
[진안 - 대상의 은닉 정보 일부를 열람합니다.]
불법 매장, 폐기물 위장 처리, 그리고 그 아래 겹겹이 쌓인 시체 몇 구의 흔적까지. 건설회사라는 간판 아래 뭐가 묻혀 있는지 대략적으로 그려졌는데, 문양이 겹치는 방식을 보니 단순히 한두 건이 아니었다. 몇 년에 걸쳐 쌓인 흔적, 그것도 상당히 체계적으로 관리된 흔적이었다.
'...이 아저씨, 생각보다 훨씬 깊게 담근 사람이었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어디서 굴러들어온 금괴 몇 개에 대해 굳이 경찰에 신고할 리도 없었고, 오히려 이런 부류일수록 '조용히 돈이 되는 물건'에는 관대한 법이었으니까. 나는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속으로만 이 계산을 마쳤다.
"어제 물건 하나 팔았다고 들었는데." 박태수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라이터를 켜는 손짓이 지나치게 여유로웠는데, 그 여유가 오히려 이 자리의 긴장감을 더 짙게 만들었다.
"순도가 이상하게 좋았다더군. 채굴한 게 아니라 만든 물건이라는 소문도 있고." 그의 목소리에는 흥미와 경계가 반쯤씩 섞여 있었다.
"믿기 힘드시면 직접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손바닥 위에서 마나를 끌어모아 작은 금괴 하나를 만들어 보였고, 회의실에 있던 부하 몇이 눈을 크게 떴다. 그중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반걸음 물러섰는데, 그 반응이 재밌어서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박태수는 그걸 한참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직접 만져보기까지 했다. 무게를 가늠하는 듯 손바닥 위에서 몇 번 튕겨보고, 손톱으로 표면을 긁어보기까지 하고 나서야, 이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웃었다.
"재밌는 능력이군. 근데 능력만 있다고 우리 쪽 거래에 낄 수 있는 건 아니야." 그 말투에 은근한 협박이 섞여 있었다.
"이 바닥은 신용으로 돌아가는 판인데, 신원도 없는 놈을 어떻게 믿나."
말이 끝나자마자 방 안쪽 벽에서 부하 두 명이 슬그머니 다가섰는데, 그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위협적이었다. 발소리를 죽이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걸 보니, 이건 은밀한 접근이 아니라 보여주기용 압박이었다.
'슬슬 시험을 하려는 거군.'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한 게 아니었다. 신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놈이 순도 좋은 금괴를 들고 왔다면, 어느 조직이든 가장 먼저 하는 게 '이 자식이 우리를 상대로 뭘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대신 오히려 어깨를 편하게 늘어뜨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은서는 그 와중에도 인형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그 무심함이 오히려 내게는 안심이 됐다. 은서가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건,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위험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무언의 확인 같은 거였으니까.
부하 하나가 갑자기 몸을 날려 내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악. 그 손이 내 목에 닿기도 전에, 나는 불동금강술을 발동시켰다.
[스킬 '불동금강술'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지속시간 동안 물리 피해 90% 감소.]
퍽!
부하의 손날이 내 어깨를 그대로 후려쳤는데, 마치 강철 기둥을 친 것처럼 그의 손목이 오히려 뒤로 꺾이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그가 손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고, 회의실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다른 부하 하나는 뭔가 대응을 하려는 듯 몸을 살짝 움직였다가, 이내 그대로 굳어버렸다. 방금 자기 동료가 그저 어깨를 후려친 것만으로 손목이 꺾이는 걸 봤으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신용은 이런 식으로 증명하는 거 아닙니까."
박태수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눈빛에 스치는 계산이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였는데, 흥미가 아니라 경계, 그리고 그 밑에 깔린 두려움 비슷한 것이었다. 그가 담배를 쥔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고, 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뭐 하는 놈이야, 진짜." 그가 낮게 중얼거렸고, 나는 대답 대신 다시 한번 손바닥 위에 금괴 세 개를 더 만들어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퉁, 퉁, 퉁. 세 개의 금괴가 테이블 위에서 각각 작은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았고, 그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매달 이 정도 물량,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나는 직접적으로 본론을 꺼냈고, 박태수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손목이 꺾인 부하를 힐끗 쳐다보고, 다시 테이블 위의 금괴를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본 다음에야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몇 초의 침묵 안에 그가 얼마나 많은 계산을 했을지 짐작이 갔다. 이 물건을 받았을 때의 이익, 이 상대를 적으로 돌렸을 때의 위험, 그리고 지금 당장 회의실 안에서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까지.
"...거래하지. 대신 조건이 있어." 그가 말했고, 조건은 예상대로 출처를 묻지 않는 대가로 시세보다 낮은 값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애초에 출처를 캐물었다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마나로 만든 금괴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좋습니다." 나는 짧게 답했다.
악수를 나누는 순간, 그의 손에서 미묘한 떨림이 느껴졌는데, 그게 두려움인지 계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이게 이 바닥에서 신원 없이 살아가는 이 세계 최초의, 유일한 방식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뿐이었다.
'요컨대 최초 기록인 셈이지.'
하는 생각에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신원도 없고, 서류 한 장도 없이, 오로지 능력 하나로 범죄 조직과 정식 거래를 뚫는 놈이라니. 어디 소설에나 나올 법한 전개였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나는 승리감을 느꼈다. 은서의 손을 다시 잡고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 오늘 하루의 성과가 나름 만족스러웠으니까. 매달 안정적으로 현금화할 창구를 뚫었다는 건, 앞으로의 생활에 있어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박태수의 시선이 여전히 내 뒷모습에 꽂혀 있는 게 유리창에 비쳐 보였다. 그 시선에는 단순한 거래 상대를 향한 눈빛이 아니라, 뭔가 더 계산적인 것이 담겨 있는 듯했다. 마치 오늘의 거래가 끝이 아니라, 그가 뭔가 다른 것을 이미 계획하기 시작한 것 같은, 불편한 예감이었다.
'...설마 벌써 뒤통수 칠 궁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그 생각을 애써 지우며 걸음을 재촉했지만, 등 뒤에 꽂힌 시선의 무게는 정문을 벗어날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