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신님, 저 곧 죽나요?

2화

오전 9시 12분. 헌터협회 3층 사무실. 창밖으로 서울 스카이라인이 보였다. 빌딩 유리창들이 아침 햇빛을 받아 하나씩 번쩍였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종이컵이었다. 협회에서 나눠주는 싸구려 원두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감각이 좋았다. 1만 년 동안 산속에서 마신 건 물뿐이었으니까. 커피 한 잔에도 감탄하는 내가, 가끔은 우습게 느껴졌다. "밥은 먹었어?" 오유리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갈색 피부에 분홍색 쇼트헤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체구는 나보다 컸다. 등에는 늘 거대한 철퇴를 메고 있었다. 그 철퇴가 의자에 걸리는 소리가 났다. 쿵. "먹었어요." "거짓말하면 알아." "진짜예요." 오유리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눈 밑에 그거 뭐야." "뭐가요." "다크서클. 어제 잠도 못 잤지." 정확했다. 어젯밤 강가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백설아의 눈빛. 그 눈빛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순 없었다. "그냥 던전 생각하다가요." "그래, 그래." 오유리는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내 어깨를 툭 쳤다. 세게. 나는 커피를 흘릴 뻔했다. 오유리는 나를 형처럼, 아니 동생처럼 여겼다. 그 애칭이 정확히 뭔지는 나도 몰랐다. 가끔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를 어린애처럼 취급하는 게 이상했다. 1만 년을 산 나에게, 인간의 나이 개념은 무의미했다. 그런데도 오유리 앞에서는 자꾸 어린애가 되는 기분이었다. 한유미는 소파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작은 체구, 금발 세미롱, 청록색 눈동자가 짝을 이루지 않고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났다. 오드아이였다. 그녀는 총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손질용 기름 냄새가 사무실 전체에 퍼져 있었다. 찰칵. 슬라이드를 당기는 소리. 찰칵. 다시 당기는 소리. 그 소리가 세 번째로 났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 던전 들어가요." 한유미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저주 해제 아이템 때문에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 내 등급이 F급으로 표기된 이유였다. 협회 시스템에는 그렇게 찍혀 있었다. 실제로는 던전 몬스터를 손가락 하나로 정리할 수 있는데도. 그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시스템이 틀렸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틀림이 왜 생겼는지는 몰랐다. 알아야 하는데, 아무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강한데 F급이라니." "저주 때문이야." 백설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밖을 보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였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몸 안에 뭔가 걸려 있어. 그게 시스템을 왜곡시켜." "그 저주가 뭔지는 알아요?" "아직." 그녀의 목소리가 짧게 끊겼다. 너무 짧았다.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그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던전에 들어가는 거야. 해제 아이템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떤 던전인데요?" "들어가면 알아." 또 짧았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1만 년을 산속에서 홀로 수련한 나였다. 인간의 거짓말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감각 자체가 나에게는 없었다. 몬스터의 기척은 백 리 밖에서도 느껴졌는데, 인간의 속마음은 코앞에서도 읽히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그 이상함을 파고들 생각까진 못 했다. 오전 9시 40분. 협회 게시판 앞을 지나갔다. 뉴스 화면이 걸려 있었다. [클랜 섬광매, 랭킹 1위에서 6위로 추락] [박정우 헌터, 독성 중독으로 입원] [헌터협회, 이능관리청과 공조 수사 착수] 세 번째 자막이 지나갈 때, 화면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같은 뉴스가 반복되고 있었다. "저거 봤어요?" "봤어." 오유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평소의 밝은 톤이 사라졌다. "차강모 짓이야." "차강모요?" "A급 헌터. 독 계열 유니크 스킬 보유자." 한유미가 총을 만지던 손을 멈췄다. 손끝이 아주 살짝 떨렸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전 국무총리 손자고, 이능관리청장 아들이야. 아무도 못 건드려." 나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어딘가 불쾌한 이름이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 사람이 왜 박정우를 독으로 중독시켰는데요?" "랭킹 싸움이야." 오유리가 팔짱을 꼈다. "섬광매가 1위였잖아. 차강모 쪽에서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 "그래서 죽이려고 한 거예요?" "아니, 죽이는 건 너무 눈에 띄니까. 입원 정도로 끝내는 거야. 랭킹만 깎아내리면 되니까." 말하는 오유리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평소라면 웃으면서 말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웃지 않았다. "그런 짓을 해도 처벌 안 받아요?" "안 받아." 한유미가 대신 대답했다. "증거 인멸도 완벽하고, 뒤에서 봐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 나는 화면을 다시 봤다. 박정우 헌터의 사진이 떠 있었다. 젊은 남자였다. 표정이 없는 증명사진. 이런 세상이었구나. 1만 년 동안 산속에 있었던 나는 이런 걸 몰랐다. 힘이 있어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세상. 힘 위에 다른 힘이 있는 세상.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차강모. 오전 10시 20분. 던전 입구. 서울 외곽의 폐공장 지하였다. 입구에서 검은 안개가 새어 나왔다. 안개는 바닥을 타고 낮게 흘렀다. 공기가 차가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백설아와 오유리, 한유미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몸짓은 다급했다. 나는 허리에 찬 단검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실 필요 없는 단검이었다. 맨손으로도 던전 몬스터쯤은 충분했다. 하지만 협회 규정상 무장을 갖추지 않으면 던전 출입이 안 됐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챙긴 것뿐이었다. "확인해봤어?" 오유리가 물었다. "응." 백설아가 답했다. "수치가..."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내가 다가갔다. 발소리를 죄어 걸었지만, 세 사람은 이미 내 기척을 느낀 듯했다. 동시에 몸이 굳었다. "뭐 얘기해요?" 세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1초, 2초, 3초.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 안에 담긴 어색함은 무겁게 느껴졌다. "아니. 장비 얘기." 오유리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밝은 웃음이었다. 평소 오유리의 웃음과는 온도가 달랐다. 한유미는 시선을 피했다. 총 손잡이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백설아는 나를 잠깐 바라봤다. 그 눈빛이 다시, 어젯밤 강가에서 봤던 것과 같았다. 뭔가를 재는 눈. 저울에 나를 올려놓고 무게를 가늠하는 듯한 눈빛. 그 시선을 받을 때마다 목이 마르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목이 마르다. "수치가 뭐예요?" 내가 다시 물었다. "던전 난이도 수치. 예상보다 조금 높게 나와서." 백설아가 대답했다. 이번엔 대답이 빨랐다. 너무 빨랐다. 준비된 대답 같았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의심이라는 감정이 어떤 모양인지 나는 여전히 잘 몰랐다. 다만 뭔가 목 안쪽에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삼켜도 삼켜도 내려가지 않는 감각. "들어가죠." 나는 던전 입구로 걸어갔다. 뒤에서 세 사람의 발소리가 따라왔다. 느리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검은 안개가 발목을 감싸며 밀려왔다. 한 걸음, 두 걸음. 안개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전, 나는 뒤를 돌아봤다. 세 사람의 표정이 보였다. 오유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한유미는 무표정했다. 백설아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 무표정이 가장 이상했다. 나는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안개가 시야를 지웠다. 서울 외곽의 폐공장 지하, 검은 던전. 그 안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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