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신입 탐사자가 최강이라니

4화

"저게... 뭐예요?" 한소연이 내 팔을 붙잡았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결계 밖에서 다가오는 그림자는 오크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피부는 검붉었고, 등에는 뼈처럼 솟은 돌기가 나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울렸다. 쿵. 쿵. 발자국 소리가 심장 박동보다 먼저 들려왔다. "오거다!" 누군가 외쳤다. 결계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오거가 왜 여기까지 와? 3구역은 오크 나오는 구역이잖아!" "규칙이 잘못된 거 아니야?" "이거 신고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헌터협회 규정 위반이잖아!" 비명과 항의가 뒤섞였다. 나 역시 이해가 안 갔다. 등급판정 던전은 참가자 수준에 맞춰 몬스터 난이도가 정해진다고 했다. 이건 명백히 규칙 위반이었다. 내 옆에서 누군가가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린 모양이었다. 그 옆 사람은 헛구역질을 했다. 공포는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졌다. 그때 박기준이 결계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박기준 씨! 저거 뭐예요? 3구역에 왜 오거가 나와요?" 한 참가자가 그에게 소리쳤다. "설명 좀 해봐요! 지금 사람들 다 죽게 생겼는데!" 다른 참가자도 따라 외쳤다. 목소리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박기준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 머뭇거림이 뭔가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가, 다시 결계 밖 그림자를 향했다가, 결국 우리에게 돌아왔다. "...솔직히 말할게."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등급판정 던전은 참가자 수에 따라 몬스터 등장 확률이 조정돼. 근데 그게, 인원이 줄어들수록 상위 몬스터가 나오게 설계되어 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탈락자가, 아니 사망자가 많이 나올수록 남은 사람들이 더 강한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야." 순간 결계 안이 조용해졌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몇 초가 더 걸렸다. "그, 그게 말이 돼요? 그럼 사람이 죽을수록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거잖아요!" "그런 거야." 박기준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위에서 그렇게 설계했으니까." "왜 그런 규칙을 만든 거예요?" "난들 알겠냐. 위에서 정한 거니까. 아마... 생존 경쟁을 극한으로 몰아서 진짜 헌터 자질을 걸러내려는 거겠지."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걸러낸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갈아넣는다는 거다. 협회니 헌터니 하는 것들도 결국 사람 목숨을 숫자로 취급하는 건 다를 게 없구나. 오늘 처음 진입한 47명 중 이미 몇 명이 사라졌는지 세어볼 생각도 하기 싫었다. 아까 지나쳐 온 자리에 핏자국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그때는 그저 오크와의 전투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한소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붙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손톱이 내 팔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박기준이 결계 밖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오거는 결계를 뚫을 수는 없어. 하지만 결계 유지 시간에는 한계가 있고, 지금 인원으로는 한 시간도 못 버텨." "한 시간이요?" "그 안에 탐사자 헌터가 파견될 거야. 원래 판정 던전은 상시 감독 인력이 배치돼 있으니까. 그러니까 최소한 죽지는 않을 거야. 버티기만 하면." 버티기만 하면. 말은 쉬웠다. 하지만 결계 밖 저 거대한 그림자가 언제 안쪽으로 뚫고 들어올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거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결계를 노려보고 있었다. 코를 킁킁대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냄새로 우리 숫자를 세고 있는 것처럼.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런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결계 막에 붉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계에 금 가는 거 맞죠?" 누군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박기준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제한 인원 초과됐어. 원래 이 결계는 30명 기준으로 설계된 거야. 지금 여기 47명이나 몰려 있잖아." 순간 나는 깨달았다. 결계가 사람 수만큼 무너지고 있다는 걸. 살아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낮아진다는 이 끔찍한 역설을. "그러니까... 결계도 인원 초과라서 못 버틴다는 거예요?" 내가 되물었다. "그래. 30명짜리 결계에 47명이 매달려 있으니까 부하가 걸리는 거야. 균열이 그 증거고." "그럼... 누가 나가야 하는 거예요?" 한소연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적막이 흘렀다. 다들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당연했다. 결계 밖은 오거가 서 있는 지옥이었다. 바람 소리인지, 오거의 숨소리인지 모를 낮은 울림이 결계를 타고 안으로 스며들었다. 다들 그 소리에 반응해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명품 전투복을 입은 무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팔목에 번쩍이는 시계를 차고 있었다. 얼굴에는 여유가 흘렀는데, 그 여유가 지금 이 순간에는 소름 끼치도록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저기, 아까 발목 삔 사람 있잖아. 저 사람 밖으로 내보내면 안 돼요?" 모두의 시선이 한소연에게 쏠렸다. 내 옆에서 그녀가 숨을 멈췄다. 붙잡은 손이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발도 못 뛰는데 데리고 있어봤자 짐만 되잖아요." 한소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건... 아니잖아요..."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왔다. "솔직히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기서 우리 다 죽는 것보단 한 명 나가는 게..."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동조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몇몇이 시선을 피했다. 몇몇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미묘한 몸짓들이 더 무서웠다. 아무도 대놓고 동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침묵으로 이미 동의하고 있었다. 낙관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함께 살아남자는 분위기였는데. 불과 몇 분 전까지 서로 등을 두드리며 힘내자고 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온기가 이렇게 빨리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한소연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나를 붙잡은 손에만 더 힘을 주고 있었다. 그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다친 발목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면서,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것보다 더 큰 두려움에 짓눌려 있었다. 나는 한소연의 팔을 붙잡은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줬다.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지 않으면, 이 분위기는 정말로 그녀를 결계 밖으로 밀어낼 것 같았다. "그 말, 취소하세요." 내 목소리가 결계 안에 낮게 울렸다. 정적이 다시 내려앉았다. 명품 전투복을 입은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빛에는 짜증과 불쾌함이 뒤섞여 있었다. "뭐라고요?" 그가 되물었다. 목소리에는 위협조가 섞여 있었다. 결계 밖에서는 오거가 여전히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고, 붉은 균열은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넓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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