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신입 탐사자가 최강이라니

1화

휴대폰 진동이 세 번 울렸다. 또 저놈의 알림이다. [국가 필수 등급판정 대상자 안내] 제목만 봐도 속이 뒤틀렸다. 나는 화면을 몇 초간 노려보다가 손끝으로 밀어 열었다. 귀속 개인 ID: 이도현(24) 판정 사유: 헌터 등급 미보유자 대상 강제 소집 출석 기한: 3일 이내 불응 시: 사회활동 제한 조치 웃음이 나왔다. 정확히는 실소였다. 10년 전 그날, 서울 한복판에 처음으로 균열이 열렸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 그날 이후로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갈라졌다. 능력자와 비능력자. 나는 후자였다. 지금까지는. 그날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다. 무너지는 건물, 비명, 붉은 하늘 같은 파편들만 남아 있다. 부모님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정확히는 모른다. 정확히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이 몸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가끔 꿈에서 그 하늘을 다시 본다. 붉다기보다는 검붉었다. 마치 하늘 전체가 피멍이 든 것처럼. 그 꿈을 꾸고 나면 항상 식은땀에 젖어 깬다. 그리고 다시 잠들지 못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평범했다. 헌터 등급도 없고, 스킬도 없고, 마나감응률도 제로에 가까운, 완벽하게 무해한 인간. 회사에서도 그랬다. 편의점 알바를 세 개나 뛰면서도 특별한 재능 하나 없었다. 동료들은 나를 "그냥 도현이"라고 불렀다. 특징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국가는 이제 와서 나를 소집한다는 거다. "등급판정 던전이라니." 혼자 중얼거려봤다.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원룸 안에는 나뿐이었고, 창밖 가로등 불빛만 방 안을 어슴푸레 비췄다. 벽에 걸린 낡은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소집이 왜 지금 오는지. 능력자 인구가 부족해지고 있다는 뉴스, 던전 개방 지역이 늘어난다는 뉴스, 헌터 부족으로 인한 인프라 붕괴 우려라는 뉴스.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퀴 밑에 깔린 게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뉴스 앵커는 항상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부는 전국 비능력자 인구를 대상으로 순차적 등급판정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침착한 목소리가 오히려 더 무서웠다. 마치 재난이 아니라 일상처럼 얘기하니까. 거부할 수 있을까?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사회활동 제한이라는 문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계좌 동결, 이동 제한, 취업 불가. 사실상 인간 취급을 안 해준다는 뜻이다.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져봤다. '등급판정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같은 제목의 글들이 수두룩했다. 답은 전부 비슷했다. 거부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에 대한 후일담. 누구는 통장이 얼어붙어서 월세를 못 냈고, 누구는 이동제한 태그가 붙어서 지하철도 못 탔다고 했다. 읽을수록 숨이 막혔다. 선택지는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 나는 3일 뒤,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서울 외곽에 있는 '탐사자 양성 길드' 부속 시설. 버스에서 내려 걷다 보니 거대한 철제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게이트 위에는 붉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등급판정 던전 - 제3구역 입구] 게이트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녹슨 철판 위로 새로 도색한 붉은 페인트가 어색하게 겹쳐 있었다. 그 부조화가 이 시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급하게 만들어졌고, 급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주변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다들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겁먹은 얼굴, 기대에 찬 얼굴, 무기력한 얼굴. 나는 아마 세 번째에 속했을 것이다. 한 무리의 젊은 사람들은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 어제 유튜브 봤는데, 요즘 판정 던전 통과율 진짜 낮대." "에이, 그래도 우리는 괜찮겠지." 낙관적인 목소리였다. 나는 그 낙관이 부러웠다. 나에겐 저런 여유가 없었으니까. "저기요."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목에는 길드 배지를 걸고 있었다. "이도현 씨죠? 확인 좀 할게요." "네." 남자는 태블릿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판정 대상자 명단에 있으시네요. 입구 쪽으로 이동해주세요." 건조한 말투였다. 나를 사람으로 대하는 건지, 처리해야 할 서류로 대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남자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태블릿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다음 사람 확인할 준비를 하는 거였다. 나는 그저 순번이었다. 명단에 적힌 숫자 하나.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서자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이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다들 나이도, 옷차림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힌 전투복을 입고 있었고, 어떤 이는 나처럼 평범한 후드티 차림이었다. 격차는 옷차림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전투복을 입은 사람들 주변에는 은근한 거리감이 생겼다. 마치 그들이 이미 능력자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서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 판정도 받지 않았는데, 이미 계급이 나뉘어 있었다. 나는 줄 맨 끝자리에 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전자 게시판이 벽면 가득 떠 있었다. [등급판정 던전 입장 안내] 1구역~5구역까지 순차 진입. 판정 결과에 따라 헌터 등급 부여. 등급 미달 시 재판정 대상. 등급 미달 시 재판정. 달콤한 문구였다. 다시 도전할 기회를 준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 문구 뒤에 숨은 뜻을 곱씹어봤다. 실패하면 계속 불려온다는 뜻이다.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한 번 발이 묶이면 영원히 이 시스템 안에서 맴돌게 된다는 소리다. 탈출구 없는 회전문. 딱 그 모양새였다. 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빨라졌다. 무섭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봤지만, 다리는 이미 후들거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왔다. "1구역은 그냥 걷기만 하면 된대." "에이, 그래도 몬스터는 나온다잖아." "몬스터? 진짜?" 누군가는 겁에 질려 되물었고, 누군가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했다. 그때, 게시판 아래쪽에 서 있던 경비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체격이 크고, 표정이 무뚝뚝한 중년 남자였다. 그가 이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짧게 말했다. "긴장 풀어. 처음엔 다 그래." 낮은 목소리였다. 위로인지 그냥 던진 말인지 구분이 안 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 다리의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경비원은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다시 무전기를 만졌다. 나는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다. 과장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줄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앞사람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반응해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 사람도, 또 그 다음 사람도. 전자 게시판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걸 보면서, 나는 내 심장 박동 수를 세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남은 사람이 다섯 명, 네 명, 세 명으로 줄어들 때마다 배 속이 조여왔다. 그리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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