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신입 탐사자가 최강이라니

2화

"이도현." 호명이 떨어졌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런 소리가 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는 그랬다. 나는 발걸음을 옮겨 게이트 안쪽 접수대로 향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겁먹은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어깨를 억지로 폈다. 접수대에는 방금 그 경비원이 서 있었다. 명찰에는 '박기준'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표 아래 붙은 작은 스티커에는 헌터관리국 마크가 찍혀 있었다. 이 사람도 한때는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가던 처지였을까. 지금은 이렇게 밖에서 사람들을 줄 세우고 있지만. "등급판정 던전 첫 진입자?" "네." "긴장 안 풀렸구나." 박기준이 픽 웃었다. 웃음이라기엔 좀 시니컬했지만, 적의는 없었다. 오히려 익숙한 듯, 수백 번은 봤을 표정을 보는 사람 같았다. "규칙은 간단해. 던전 안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시스템이 뜬다. 그거 보고 몬스터 잡든, 퀘스트 깨든 알아서 해. 살아남으면 등급 나와." "그게 다예요?" "그게 다야. 다만—" 그가 잠깐 말을 끊었다. 뭔가 더 있다는 뜻이었다. 그 짧은 침묵 사이에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했다. 함정이 있나? 확률이 낮다는 얘긴가? 아니면 그냥 하던 말 까먹은 건가? "다만 뭐요?" "별거 아니다. 들어가서 조심하라고." 박기준은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더 이상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뒷모습이 딱, 대화 종료 안내판 같았다. 뭔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걸 캐물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게이트는 커다란 아치형 구조물이었는데, 표면에서 옅은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물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지면 손이 젖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무 촉감도 없다고 들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들어가자.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곳은 없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이 하얗게 번쩍였다. 눈이 부셔서 잠깐 앞이 안 보였다. 시신경이 타버리는 줄 알았다. 몇 초 후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면서, 눈앞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등급판정 던전 - 제3구역] [참가자 인원: 47명] [제한 시간: 4시간] 텍스트가 시야 한쪽에 떠 있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47명.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47명 중에서 나는 몇 등이나 할까. 아니, 등수를 매기는 시험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순위를 매기게 됐다. 습관이란 게 참 지독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아까 줄 서 있던 사람들이다.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대기줄에 서 있을 때는 다들 초조한 표정으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들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들뜬 사람들'과 '얼어붙은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후자였다. "야, 저기 봐. 아이템 몇 개 챙겼냐?" "당연하지. 이거 신형 스킬북이야. 인터넷에서 3백만 원 주고 산 거." 명품 전투복을 입은 무리가 서로 아이템을 자랑하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손목에 찬 팔찌며, 허리춤에 매달린 단검이며, 하나같이 광고에서 본 것 같은 물건들이었다. 마치 백화점 명품관을 통째로 이 던전 안으로 옮겨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어이, 저기 후드티 입은 애 봐. 맨몸이네." 한 남자가 나를 가리키며 비웃었다. 손가락 끝이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런 애들이 꼭 있더라. 스킬도 없고 아이템도 없고. 왜 왔대?" "강제소집이잖아. 안 오면 취업 못 하니까 온 거지." "쯔쯔, 딱하다."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퍼졌다. 마치 콜로세움 관중석에서 검투사를 내려다보며 웃는 로마 시민들 같았다. 나는 검투사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는데, 이미 무대 위에 올라온 셈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박할 가치도 없었다. 어차피 말로 이길 싸움이 아니었다. 대신 속으로 되물었다. 스킬북 3백만 원짜리, 그게 뭐가 대단해? 생존하는 것과 자랑하는 것 중 뭐가 더 중요한지 모르는 걸까? 하지만 사실 나도 모른다. 스킬도, 아이템도, 마나감응률도 제로인 내가 살아남을 방법을 나조차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저 사람들이 밉지도 않았다. 부러웠으면 부러웠지. 3백만 원짜리 스킬북 살 돈이 있었다면 나도 사지 않았을까. 아니, 그 전에 그 돈이 있었다면 굳이 헌터가 되겠다고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 순간, 시야 한쪽에 새로운 텍스트가 떠올랐다.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도현님의 초기 상태를 측정합니다] 측정? 뭘 측정한다는 거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등급을 매기는 절차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걸 확인하는 건가. 알 수 없는 텍스트일수록 더 불안했다. [측정 완료] [특이사항 발견: 이상 반응] [※해당 반응에 대한 상세 안내는 조건 충족 시 제공됩니다] 조건 충족? 무슨 조건? 텍스트는 더 이상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저 사라질 뿐이었다. 이상 반응이라니.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시스템이 얄미웠다. 마치 시험지에 "이상하네요"라고만 써놓고 채점표를 안 주는 선생님 같았다. 나는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그게 축복인지 재앙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찝찝한 기분을 안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서 또 다른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다들 옷차림이 화려하기보단 단단해 보였다. 실전용 장비를 갖춘 사람들. 방어구는 낡았지만 손질이 잘 되어 있었고, 무기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날이 살아 있었다. 딱 봐도 실전 경험이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중 한 명이 스마트폰을 들고 셀카를 찍고 있었다. "이거 SNS 올리면 반응 좋겠다. #등급판정던전 #헌터라이프." 죽음을 목전에 둘 수도 있는 상황에서 셀카를 찍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필터까지 씌워가며 찍는 저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는 지금 심장이 벌렁거려서 숨쉬기도 힘든데. 하긴, 나도 이해받으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니까. 나는 조용히 무리에서 떨어져 구역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바닥에 밟히는 흙의 질감이 낯설게 느껴졌다. 현실에서는 이런 흙을 밟아본 적이 없었다. 던전 특유의, 약간 건조하면서도 서늘한 냉기가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혼자가 편했다. 아니, 혼자여야만 했다. 스킬도 아이템도 없는 나는, 그 누구도 지켜줄 여력이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가 위험한 순간에 발이 묶이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나 혼자 움직이는 게 나았다.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건 생존의 문제였다. 가장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구역은 넓은 초원 같은 형태였는데, 곳곳에 부서진 석상과 오래된 돌기둥이 널려 있었다. 마치 잊혀진 고대 신전의 폐허 같았다. 저 멀리 안개가 낀 숲의 경계가 보였다. 저 숲 안에 뭐가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줄기가 서늘했다. 그때 낮은 굉음이 들려왔다. 쿠웅! 땅이 흔들렸다. 발밑에서 진동이 올라와 무릎까지 타고 올랐다.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뭐, 뭐야!" "몬스터다!" 셀카를 찍던 사람도, 스킬북을 자랑하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방금까지 낄낄대던 웃음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날카로운 비명과 다급한 발소리만이 구역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굉음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안개 낀 숲의 경계 너머에서 뭔가가, 아주 거대한 뭔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제한 시간 4시간짜리 시험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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