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아버지, 왜 그렇게 보세요

3화

진우는 손을 놓지 않았다. "형, 저기 봐요. 바람이 흙을 들어 올려요." 마당 구석에서 작은 흙먼지가 소용돌이치듯 일었다. 진우가 손끝을 뻗자 먼지는 그 손을 따라 원을 그렸다. 나는 그것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미숙했다. 흐름이 끊겼다. 힘의 방향이 세 번은 어긋났다. 먼지는 원을 그리다 갑자기 방향을 잃고 흩어졌다. 다시 진우가 손끝에 힘을 모으자 먼지는 또 다른 방향으로 튀었다. 바람의 결을 억지로 붙잡으려는 손짓이었다. 전생에서는 바람의 결을 읽는 데 하루가 걸리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손끝을 대는 순간 대기 전체가 그 아이의 뜻대로 움직였다. 이번에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잘하네." 나는 대신 그렇게만 말했다. 진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렇죠? 사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형은 아직 속성을 모르니까 부럽지 않아요?" 부럽지 않았다. 다만 답답했다. 단전이 없는 몸이었다. 진기가 흐를 길조차 제대로 뚫리지 않은 몸이었다. 전생의 나는 검 한 자루로 산을 갈랐으나 지금의 나는 뜀틀을 넘는 것도 숨이 가빴다. 숨을 크게 들이켜 보았다. 가슴 안쪽 어딘가가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결여였다. "곧 알게 될 거다." 나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담장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서늘했다. 진우는 다시 흙먼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끝을 오래 바라보았다. 손끝에 굳은살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 아무것도 쥐어본 적 없는, 순수하게 자라난 손이었다. 내 손도 마찬가지였다. 검을 쥐어본 기억은 전생의 것이었고, 이 몸의 손바닥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닷새가 지났다. 선택 의식까지 남은 날은 열흘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마당에 나갔다. 아버지의 수련을 지켜보는 일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해가 완전히 뜨기 전, 마당은 아직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나는 늘 같은 자리, 회랑 기둥 옆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진무애는 늘 같은 자리에서 검을 뽑았다. 늘 같은 각도로 베었다. 그러나 그 검이 지나간 자리마다 공기가 미세하게 떨렸다. 첫 번째 검격은 어깨 높이에서 시작해 대각선으로 떨어졌다. 두 번째는 허리를 낮춰 옆으로 그었다. 세 번째는 다시 위로 솟구쳤다. 순서는 늘 같았으나 그 안에서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힘이 실리는 지점, 숨을 내뱉는 순간, 발끝이 땅을 딛는 세기. 나는 그 떨림을 눈으로 좇았다. 전생에서는 그런 떨림을 만드는 것이 내 검이었다. 검을 휘두르면 공기가 갈라지고, 그 갈라짐이 곧 초식이 되었다. 이번에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보고 있으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버지가 검을 거두며 물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던진 물음이었다.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실대로 답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마당을 한 바퀴 돌고 지나갔다. 진무애의 옷자락이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아는 것과 되는 것은 더 다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검을 검집에 넣었다. 검이 검집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소리가 낮고 짧게 울렸다. 나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보는 것, 아는 것, 되는 것. 전생의 나는 그 세 단계를 이미 다 지나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이 몸으로는 첫 단계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본다는 것마저도 흐릿했다. 아버지는 검을 허리에 차고 대청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등이 곧았다. 걸음마다 흔들림이 없었다. 전생에서는 저런 등을 가진 자를 여럿 베었다. 이번에는 저런 등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생각이 낯설어서, 나는 잠시 멈춰 서 있었다. --- 그날 오후, 진우가 마당 창고 뒤에서 나를 불렀다. "형, 여기로 와봐요. 아무도 안 봐요." 창고 뒤는 담장의 그늘이 짙게 내려앉는 곳이었다. 기와가 몇 장 빠진 틈으로 빛이 가늘게 스며들었다. 나무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오래된 짚 냄새가 났다. 진우는 품에서 작은 목검을 꺼냈다. 손잡이가 닳아 반질반질했다. "이거 형 줄게요. 제가 처음 쓰던 거예요." 나는 목검을 받아 들었다. 가벼웠다. 굳은살 없는 내 손에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였다. 손잡이 끝에는 작은 균열이 하나 나 있었다. 오래 쥐고 흔든 흔적이었다.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지." "형은 아직 검이 없잖아요. 선택 의식 전에 조금이라도 손에 익혀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진우의 눈빛에는 계산이 없었다. 순수한 걱정뿐이었다. 나이보다 앳된 얼굴에 진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전생에서는 누군가의 걱정을 받아본 기억이 희미했다. 늘 걱정을 받는 쪽이 아니라 걱정을 시키는 쪽이었다. 부하들은 내 앞에서 늘 고개를 숙였고, 적들은 내 이름만으로 몸을 떨었다. 이번에는 그 걱정을 받는 쪽에 서 있었다. "고맙다." 나는 목검을 쥔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형이 저번에 그랬잖아요. 곧 알게 될 거라고. 그거 무슨 뜻이에요?" 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미뤘다.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생의 기억이 있다고, 이 몸에 갇힌 무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이 아이의 눈빛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다. "의식이 끝나면 알게 될 거란 뜻이었다." 나는 애매하게 말을 돌렸다. 진우는 그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형이 무슨 속성이든 상관없어요. 형은 형이니까요."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목검을 들고 허공에 한 번 그어보았다. 느렸다. 힘이 실리지 않았다. 검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한 번의 검격으로 성벽을 무너뜨렸다. 검을 휘두르면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만으로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나뭇조각 하나 흔들지 못했다. 그 격차가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진우가 옆에서 내 손 모양을 유심히 보았다. "손목을 좀 더 세워보세요. 사부님이 저한테 그렇게 가르쳐주셨어요." 나는 그 말대로 손목을 세워 다시 목검을 그었다. 조금 전보다는 나았으나,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진우가 웃었다. "금방 좋아질 거예요." 그 웃음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근거 없는 믿음이 이상하게 든든했다. --- 선택 의식이 다가올수록 저택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하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청 앞 마당에는 못 보던 깃발이 세워졌다. 낡은 담장 한쪽은 급히 손질된 흔적이 남았다. 마당을 쓸던 하녀들의 손이 평소보다 서둘렀고, 부엌 쪽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뭔가를 끓이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변화를 조용히 관찰했다. 진가는 겉으로 작은 가문이었으나, 선택 의식만큼은 격식을 갖추려 애쓰는 듯 보였다. 대청 기둥에는 오래된 문양이 새로 칠해졌고, 마당 한쪽에는 손님을 맞을 자리까지 준비되고 있었다. 왜일까.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어느 밤, 나는 잠들지 못하고 창가에 앉아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으로 달빛이 얇게 스며들어 마루 위에 옅은 그림자를 그렸다. 손목의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아홉 개의 선이 얽혀 있는 검은 문양이었다. 중심에는 작은 점 하나가 박혀 있었다. 별자리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손끝으로 그 문양을 눌러보았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다시 한 번, 조금 더 오래 눌러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구천검결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만, 그 안쪽에서 아주 미약한 열기가 올라왔던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단 한 번뿐이었고, 그 뒤로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 기억이 사실인지, 상상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전생의 기억과 지금의 감각이 뒤섞여서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창밖에서 서리 냄새가 났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숨을 내쉬자 하얗게 흩어졌다. 방 안의 온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문양을 다시 소매 속으로 감췄다. 문양을 감추고 나서도 나는 오래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은 구름 사이로 반쯤만 보였고, 마당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열흘 뒤, 저 마당 어딘가에서 나는 무언가를 증명해야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마당에 낯선 인기척이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청년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 가까이 위로 보였다.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는 오래 손에 익은 사람의 것처럼 반들거렸다. 걸음마다 옷자락이 무겁게 흔들렸다. 진우가 그를 보고 살짝 몸을 굳혔다. "형님." 진우가 조그맣게 인사했다. 청년은 진우를 지나쳐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차가웠다. "네가 진천이냐." 낮고 오만한 목소리였다. "그렇습니다." 나는 짧게 답했다. 청년의 입가에 얕은 웃음이 스쳤다.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들었다. 열 살이 되어서도 진기 한 줌 흐르지 않는다고. 이번 선택 의식에서 무엇을 보여줄 생각이냐." 나는 침묵했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빛에는 대답을 기다리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을 뿐이었다. 청년의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아버지의 관심이 아깝다. 너 같은 놈에게."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등이 곧았다. 걸음에 자신감이 넘쳤다. 마당 흙바닥을 밟는 발소리마저 단단했다. 진우가 내 옆으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진운 형님이에요. 저희 큰형님. 삼 년 만에 육단 검력을 얻어서 요즘 저택에서 아무도 못 건드려요." 육단. 나는 그 숫자를 속으로 되새겼다. 전생에서는 그런 숫자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힘의 경지를 숫자로 나눌 필요조차 없었다. 검을 쥐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번에는 그 숫자 하나가 이 가문 안에서 사람의 위치를 결정하는 잣대였다. "저 사람이 형 볼 때마다 저렇게 차가워요. 원래는 안 그랬는데." 진우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부터 그랬지." 나는 물었다. "형이 태어났을 때부터인가... 잘 모르겠어요. 그냥 형이 어릴 때부터 형님이 형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나는 진운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의 뒷모습에서 짙은 질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미움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려는 자의 경계처럼 보였다. 선택 의식이 열흘 뒤였다. 그 안에서 저 눈빛과 다시 마주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담장 위로 구름이 낮게 깔렸다.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바람이 마당을 스치고 지나가며 흙먼지를 조금 일으켰다. 진우가 다시 손을 뻗었으나, 이번에는 흙먼지가 그 손을 따르지 않았다. 마당은 다시 고요해졌고,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진운의 차가운 눈빛만을 오래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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