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제기랄, 저건 중형 개체 급이 아니야!"
박기범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킨 존재가 그 정체를 드러냈는데, 사람 세 명은 족히 넘을 듯한 체구에 등줄기를 따라 뾰족한 골편이 촘촘히 돋아 있었고, 두 개의 팔 끝에는 낫처럼 휘어진 거대한 갈고리가 달려 있어, 그것이 단순한 소형 몬스터가 아니라 이 던전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개체라는 사실을 한눈에 짐작케 했다.
도현은 편팔의 눈을 통해 그 형체를 바라보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예지 속에서 스치듯 보았던 그림자와 지금 눈앞의 것이 서서히 겹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설마, 저게 그거였나.'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불길한 감각만은 분명했다.
그워어어어어어!
포효와 함께 개체가 앞다리를 크게 휘두르자, 그 궤적에 있던 소형 개체 두 마리가 그대로 짓뭉개져 튀어 올랐는데, 자신의 하위 개체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그 압도적인 힘에, 파티 전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퍼걱, 퍽!
살점과 체액이 사방으로 튀며 동굴 벽에 끈적하게 들러붙었고, 그 광경을 목격한 마법사 청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저, 저게 뭐야···"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창! 후방으로 빠져서 원거리 지원해! 방패는 시선 붙잡고!"
박기범이 다급히 소리쳤지만, 그 명령이 채 실행되기도 전에 개체의 갈고리가 방패를 든 남자의 왼쪽 어깨를 그대로 찢어발겼다.
부와아아악.
피가 사방으로 튀며 남자의 신음이 동굴을 가득 채웠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형 개체들이 벌어진 빈틈으로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키에엑! 키에에엑!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겹겹이 겹쳐지며, 마치 굶주린 짐승들이 축제를 벌이러 몰려드는 듯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대로는, 다 죽는다.'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도현은, 편팔의 몸이 저절로 물약과 붕대를 챙겨 쥐고 앞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이 오랜 세월 서포터로 살아온 이 몸의 반사적인 습성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멈춰, 멈추라고! 지금 나가면 죽어!'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이 몸의 주도권은 여전히 편팔에게 있었다. 도현은 그저 관찰자처럼 이 몸의 결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 무력감이 공포보다 더 크게 그를 짓눌렀다.
"편팔, 뭐 하는 거야! 뒤로 빠져!"
마법사 청년이 소리쳤지만, 이미 부상당한 방패 남자를 향해 몸을 던진 편팔의 손은 지혈용 붕대를 그의 어깨에 감아 나가고 있었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와중에도 그 손놀림만은 놀랍도록 능숙했다.
'이 몸, 정말로 이 일을 오래 해온 거구나.'
붕대가 감기는 그 짧은 순간에도, 도현은 이 낯선 몸의 익숙한 동작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감탄이 오래갈 여유는 없었다.
그 짧은 사이 소형 개체 하나가 옆구리를 노리고 튀어 들어왔다.
'위험해!'
간신히 몸을 비틀어 발톱을 피해낸 편팔이었지만, 균형을 잃고 바닥을 나뒹구는 사이 두 번째 개체의 이빨이 정확히 성한 팔뚝을 노리고 짓쳐들었다.
뚜두둑.
뼈가 뒤틀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통증이 전신을 관통했고, 도현은 이 몸의 고통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프다, 이게, 이게 진짜 아픈 거구나.'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통증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이것이 예지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뒤늦게야 도현의 정신을 강타했다.
"물러나! 전열 붕괴됐다, 일단 후퇴!"
박기범의 외침에 창을 든 여성과 마법사 청년이 몸을 돌려 통로 안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는데, 그 대열에서 방패 남자와 편팔의 위치는 이미 한참 뒤처져 있었다.
"박기범! 여기, 여기 아직···!"
창을 든 여성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지만, 박기범의 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아 억지로 끌어당겼다.
"안 돼, 저기로 다시 들어가면 우리도 죽어! 전력을 다시 짜야 해!"
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죄책감이 배어 있었지만, 동시에 물러설 수 없다는 단호함도 함께 섞여 있었다. 결국 여성은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키에에엑! 키에엑! 키에에에엑···
소형 개체들이 사방에서 몰려들며 도현과 방패 남자를 겹겹이 둘러싸기 시작했고, 그 포위망 너머로 우두머리 개체가 천천히, 마치 사냥감을 감상하듯 걸음을 옮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포위됐잖아.'
뒤를 돌아보아도 아군의 등불은 이미 저 멀리 통로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있었고, 남은 것은 부상당한 방패 남자와 성한 팔마저 뜯길 위기에 처한 편팔, 그리고 겹겹이 몰려드는 짐승들의 붉게 빛나는 눈동자뿐이었다.
으르르르릉···
낮게 울리는 그 소리가 마치 승리를 확신한 포식자의 여유처럼 들렸고, 도현은 편팔의 몸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극도의 공포와 함께, 이것이 바로 자신이 예지 속에서 처음 마주한 죽음의 전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설마, 여기서 벌써.'
숨이 턱 막혀왔다. 이 몸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인가. 도현은 이 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끼며, 그 박동 하나하나가 죽음을 향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방패 남자가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편팔을 향해 소리쳤다.
"정신 차려, 여기서 죽을 거야?!"
그 목소리는 절박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방패 남자는 자신의 몸도 온전치 못한 상태였음에도, 뒤처진 편팔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외침에 편팔의 다리가 힘겹게 다시 일어섰지만, 포위망은 이미 완전히 좁혀져 있었고, 통로 저편 어둠 속에서는 우두머리 개체의 갈고리가 서늘한 빛을 반사하며 천천히 들려 올라가고 있었다.
'붕대는 다 썼고, 물약도 아까 다 쏟았어. 지금 이 몸으로 뭘 할 수 있지.'
도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무기 하나 제대로 쥘 줄 모르는 서포터의 몸, 성한 팔조차 온전치 않은 상태, 그리고 사방을 둘러싼 소형 개체들과 그 뒤에서 다가오는 압도적인 존재.
'이건, 뭘 어떻게 해도 답이 안 나오는데.'
그워어어어어!
포효와 함께 개체가 몸을 낮추며 도약할 준비를 갖추는 순간, 도현의 시야 속 이 모든 광경이 한순간에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고,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이 예지의 진짜 의미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게, 내가 보게 될 죽음이야.'
지금까지 그가 봐온 예지들은 언제나 남의 일처럼, 화면 너머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그 예지 속 죽음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이 몸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실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방패 남자가 무언가 소리쳤지만, 이미 도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짐승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는 것과, 그 아래로 서서히 드리워지는 어둠만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짐승의 그림자가 편팔의 머리 위로 완전히 내려앉는 그 찰나, 동굴 전체가 짐승들의 포효로 가득 차올랐다.
위이이잉! 왜애애앵! 위이잉···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이 귓가를 스치며 지나갔고, 도현은 그것이 자신의 심장 소리인지, 아니면 이 몸이 마지막으로 듣게 될 세상의 소리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애처로운 발악.
찰나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