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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한빛중학교 3학년 4반 강도현은 종례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챙기면서도 창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지 못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전달하던 준비물 안내 같은 것은 이미 한쪽 귀로 흘려보낸 지 오래였고, 운동장 저편에서 윤서아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는 모습이 유독 눈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요즘 좀 이상해.' 지난 몇 주 동안 서아는 만날 때마다 미묘하게 시선을 피했고, 통화 중에도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거나 갑작스레 전화를 끊는 일이 잦아졌으며, 그러면서도 도현이 무슨 일 있냐고 물으면 항상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어넘기는 것이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는데, 도현은 그런 작은 변화들을 애써 눌러 넘기면서도 가슴 한편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교실을 나서면서도 도현의 눈은 계속 서아의 뒷모습을 좇았고, 반 친구 하나가 어깨를 치며 오늘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말을 걸었지만, 도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만 하고는 서둘러 신발장으로 향했다. '별일 아닐 거야. 별일 아닐 거야.'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발걸음은 이미 서아가 향한 방향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교문을 나선 서아는 평소처럼 도현과 나란히 걷지 않고, 오늘은 학원이 늦게 끝날 것 같다며 먼저 인사를 건넨 뒤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그 목소리가 어딘가 평소보다 빠르고 딱딱하게 들렸고,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손만 흔들어 보이던 그 모습이 도현의 마음에 작은 가시처럼 박혀 들었다. '학원 방향이 아니잖아.' 서아의 집과 학원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도현으로서는 그녀가 향하는 골목길이 전혀 다른 동선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머릿속으로는 그냥 못 본 척 집으로 가야 한다고, 사귀는 사이에 이렇게 몰래 뒤를 캐는 것이 얼마나 못난 짓인지 되뇌면서도, 발걸음은 이미 이성보다 먼저 그녀를 뒤따르고 있었다. '딱 한 번만. 한 번만 확인하고 바로 돌아갈 거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변명하듯 되뇌며, 도현은 서아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걸음을 옮겼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오래된 상가 건물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었고, 색이 바랜 간판들과 셔터가 반쯤 내려진 가게들이 늘어선 그 사이로, 낮게 드리운 처마와 좁은 통로가 만들어내는 어둠 속에서 서아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며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퀴퀴한 냄새가 골목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도 같았지만, 도현의 신경은 온통 서아의 발걸음 소리 하나에만 곤두서 있어서, 그런 것들은 제대로 의식조차 되지 않았다. 도현은 숨을 죽이며 벽에 붙어 걸음을 옮겼는데,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스스로의 귓가에까지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아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다시 나아가야 했다. 쿵. 쿵. 쿵. '제발, 그냥 아무것도 아니게 해줘.' 간절한 바람과는 반대로, 골목 안쪽 공기는 점점 더 무겁게 가슴을 눌러왔다. 그러다 골목 끝, 인적 없는 담벼락 아래에서 서아가 누군가와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 도현의 발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상대는 학교에서도 유명한 얼굴, 이한결이었다. 한 학년 위지만 교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외모와 분위기를 지닌 그는, 축제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던 적도 있고, 복도를 지나가기만 해도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뒤따르곤 하던 존재였는데, 그런 이한결이 서아의 손을 슬며시 잡아끌며 무언가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거리 때문에 온전히 들리지 않았지만, 간간이 끊어져 들려오는 목소리의 파편들 속에서 서아의 이름과, 그리고 도현으로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웃음소리 같은 것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서아는 그 말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웃음이 도현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저게, 뭐야.' 애써 헛것이라 믿고 싶었던 도현의 바람은 그다음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렸는데, 이한결이 서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고, 서아 역시 눈을 감으며 그 입술을 순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도현에게는 그 몇 초가 마치 시간이 통째로 멈춰버린 것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촤아아. 어디선가 흘러든 바람이 좁은 골목을 훑고 지나가며 낙엽 몇 잎을 흩날렸고,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도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벽을 짚은 도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받쳐 올라왔지만, 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채 그저 그 광경을 눈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말도 안 돼. 서아가, 나한테 먼저 좋아한다고 했었잖아.' 작년 겨울, 눈이 내리던 등굣길에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도현에게 먼저 고백을 건넨 사람이 바로 서아였다는 사실이, 지금 눈앞의 장면과 도저히 겹쳐지지 않았다. 그날 서아는 목도리 위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눈송이가 어깨 위로 내려앉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도현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좋아한다는 말을 겨우 내뱉었었고, 그 순간의 서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가장 서툴고 진심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눈앞의 광경 위로 겹쳐지며, 도현의 속을 더욱 아프게 헤집어 놓았다. '그런데 왜, 왜 지금은.' 두 사람의 입맞춤이 길어질수록 도현의 시야 가장자리가 이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눈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었다. 위이이이잉. 낮고 기묘한 울림이 귓속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왔고, 눈앞의 골목 풍경이 마치 물에 젖은 유리창처럼 뭉개지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건.' 도현은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지만 시야는 오히려 더 격하게 일그러졌고, 서아와 한결의 모습이 흐릿한 잔상으로 늘어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위이이잉. 왜애애앵. 위이이이잉. 울림은 점점 커져 이제는 두통처럼 관자놀이 전체를 짓눌러 왔고, 도현은 관자놀이를 손으로 짚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듯 몸을 앞으로 숙였다. '멈춰. 제발 멈춰.' 그러나 소리는 오히려 더 커져만 갔고, 골목의 담벼락과 상가 건물의 윤곽선들이 마치 물에 풀어진 잉크처럼 흐물흐물 뒤섞이기 시작했다. 다리에서 완전히 힘이 빠진 도현의 몸이 그대로 무너지듯 담벼락에 미끄러졌고, 등이 차가운 벽에 닿는 감각조차 이제는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의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서아의 웃는 얼굴,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배신의 순간뿐이었다. '왜. 대체 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겨를도 없이, 눈앞이 새하얗게 번쩍이는가 싶더니 곧 모든 색이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털썩. 무릎이 땅바닥에 닿는 감각과 동시에, 세상이 완전히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도현이 결코 알 수 없었던 무언가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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