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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접골원의 문턱을 넘는 순간, 본좌는 낡은 문지방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으니, 이는 필시 문전박대(門前薄待)*의 예감이었으리라. *문전박대: 문 앞에서 냉대를 받음 낡은 간판은 페인트가 벗겨져 '박노석 접골원'이라는 글자의 절반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고, 유리문에는 오래된 스티커들이 켜켜이 붙어 있었다. 본좌는 그 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강호에 처음 출도(出道)*하는 협객이 문파의 문턱을 밟는 심정이 바로 이러할 것이라, 그런 생각을 하며 소라의 뒤를 따랐다. *출도: 세상에 처음 나섬 "뭘 그렇게 뻣뻣하게 서 있어. 빨리 들어와." 소라가 뒤돌아보며 눈을 흘겼다. "...알겠느니라." 본좌는 그리 답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박 원장님, 얘가 걔예요, 제가 말한." 소라가 앞장서서 안내직원처럼 말을 붙였다. 접골원 안은 오래된 파스 냄새와 뜸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벽에는 오십 년은 됐을 법한 침구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 옆에는 색이 바랜 상장 몇 개가 액자에 걸려 있었는데, 아마도 이 접골원의 전성기를 증명하는 유물인 듯했다. 대기실 의자에는 노인 두어 명이 앉아 텔레비전을 멀뚱히 보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은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박노석이라는 노인이 안경을 콧등 위로 밀어 올리며 이쪽을 흘겨보았다. 칠순은 훌쩍 넘은 나이였으나,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그 눈빛은 마치 강호의 노고수가 신출내기 무사를 훑어보는 것과 같아서, 본좌는 저도 모르게 등을 곧게 세웠다. "힐러라고?" 노인의 목소리엔 별다른 기대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하다." 본좌가 답했다. "뭘 할 수 있는데." "초당 삼십의 생명력을 채우는 회복술을 지녔노라." "...뭐라고?" "삼십입니다." 본좌가 얼른 현대어로 고쳐 말했다. "초당 삼십씩요." 노인이 헛웃음을 쳤다. "삼십? 야, 요즘 서울 힐러들은 한 방에 몇백씩 채운다더만." [※ 알림: 대상이 당신의 능력을 저평가하고 있습니다.] [※ 별도 조치 없음.] 본좌는 그 알림을 보며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요망한 손바닥만 한 기계마저 이런 상황을 눈치 있게 알려주니, 참으로 형세비상(形勢非常)*이로다. *형세비상: 상황이 심상치 않음 '별도 조치 없다는 말은, 결국 이 본좌가 스스로 알아서 하란 뜻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무정한 시스템이로다.' "그, 그래도 원장님, 도현이 괜찮은 애예요." 소라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괜찮은 건 알겠는데, 우리 여기 힐 필요 없어. 뜸이랑 침이랑 물리치료로 다 해결돼." "원장님, 그래도 한 번만 보시면 안 돼요? 저 진짜 얘 실력 좋다니까요." "소라 씨, 나 사십 년 접골원 했어. 이 바닥에서 삼십 초당 회복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이러는 거 아니야."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본좌를 이미 없는 사람 취급하는 태도였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정적을 채웠고, 대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낮게 웅웅거렸다. 본좌는 그 무시를 견디며 속으로 다짐했다. '기다리다 보면 필시 기회가 찾아오리라. 이는 병가(兵家)의 병법에도 나오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대기만성: 큰 인물은 늦게 이루어짐 바로 그때, 대기실에서 나이 든 환자 한 명이 신음하며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 나왔다. "아이고, 무릎이야···" "어르신, 뭐 일이십니까." 본좌가 얼른 다가섰다. "몰라, 며칠째 무릎이 안 낫아. 침도 맞았는데 소용없어." 노인이 뒤에서 소리쳤다. "어이, 손대지 마. 우리 환자야." "잠시만, 잠시만 봐도 되겠습니까." 할머니는 본좌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더니,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릎을 내밀었다. "그래, 젊은이. 자네가 뭘 아는가 한번 보자고." 본좌는 환자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오래된 인대 손상, 거기에 관절액이 줄어든 상태였다. 서울에서 초당 삼십이라 조롱받던 그 술법이 조용히 흘러들어갔다. [치유술 발동. 대상: 미상 환자.] [만성 손상 감지. 회복 진행 중.] [초당 30HP 회복 (효율 +5% 적용, 31.5).] 할머니의 미간이 처음엔 살짝 찌푸려졌다가, 이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뭔가 따뜻한데?" "참으시면 됩니다. 곧 편안해지실 것입니다." 노인은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안경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오 분이 지나자 환자가 눈을 크게 떴다. "어어? 안 아픈데? 아니, 진짜 안 아파!" 환자가 무릎을 굽히고 펴기를 반복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까까진 계단도 못 올랐는데!"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노인도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허, 저거 뭐야. 뜸도 아니고 침도 아니고." "몰라, 나도 처음 봐." 코를 골던 노인이 언제 깼는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노인이 그 광경을 보며 안경을 다시 밀어 올렸다. 그 표정엔 아까와는 다른 무언가가 스치고 있었다. "...뭘 한 거야, 방금." "말씀드린 대로, 초당 삼십의 회복술입니다." 노인이 한동안 말을 잃었다. "삼십이라는 게···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거였어?" "그렇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습니다." 본좌는 속으로 생각했다. '서울에서는 이 지속성이 지루함으로 치부되었으나, 이곳에서는 만성 통증을 치료하는 데 이보다 값진 것이 없느니라. 참으로 재대작소(材大者小)*라, 큰 재목은 작은 그릇에 담기지 않는 법이니.' *재대작소: 큰 재목은 작은 곳에 쓰이지 않음(본좌가 임의로 짜낸 조어) 노인이 다시 안경을 밀어 올리며 팔짱을 꼈다. 얼굴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조금 전과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흠. 별거 없어 보이는데." [※ 알림: 대상이 여전히 평가를 보류 중입니다.] 본좌는 그 알림에 살짝 이가 갈렸다. 이 노인, 참으로 완고하도다. 사십 년 접골원을 운영했다는 자부심이 저리 굳게 자리 잡았으니, 이는 마치 태산과도 같은 아집(我執)*이 아니겠는가. *아집: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함 하나 소라가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노인을 쳐다보았다. "원장님, 이거 완전 대박 아니에요? 저 할머니 몇 달째 못 걸으신 분이잖아요. 지난주에도 뜸 맞고 침 맞아도 계속 아프다고 하셨잖아요." "그, 그건 그런데···" 노인이 말을 흐리며 다시 서류를 뒤적였다. 손끝이 종이 위에서 괜히 서류를 정리하는 척 움직였으나, 그 눈은 자꾸만 무릎을 굽히는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아직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는 태도였으나, 그 침묵 안에는 조금씩 균열이 일고 있었다. 할머니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박 원장, 이 정도면 써먹어야지. 나 이제 계단도 올라갈 수 있겠어." "...참고는 하겠습니다, 어르신." 노인이 딴청을 피우며 대답했다. 그 순간, 대기실 문이 벌컥 열리며 또 다른 환자가 신음하며 들어왔다. "원장님, 저 허리가··· 아이고, 아이고." 중년의 사내는 허리를 부여잡고 반쯤 몸을 기울인 채 겨우 걸어오고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고, 걸음마다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한눈에 보아도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는 듯했다. 노인이 본좌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는 조금 전까지의 완고함 대신, 무언가를 저울질하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한번, 만 해봐." 본좌는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는구나.' 허나 사내의 신음 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깊었고, 허리를 짚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으니, 이것이 단순한 근육통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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