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토요일 아침, 나는 늦잠을 자고 있었다.
평소라면 알람이 울려도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 십 분은 더 버티는 게 내 주말 루틴이었는데, 그날은 콩이의 미친 듯한 짖음이 그 루틴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컹! 컹컹컹! 뭔가에 잔뜩 흥분한 듯한, 평소엔 듣기 힘든 다급한 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여덟 시밖에 안 됐다.
'뭐야, 이 개는 주말에도 쉬는 걸 몰라······.'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눈을 비볐지만, 창밖에서 이어지는 짖음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는 걸 느끼고는 뭔가 이상하다는 감이 왔다. 콩이가 저렇게까지 짖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택배 아저씨가 와도 몇 번 짖다 마는 녀석인데, 지금은 마치 뭔가와 대치라도 하는 것처럼 쉬지 않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나는 부스스한 몰골로, 잠옷 바람에 슬리퍼만 걸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마당 화단 옆, 어제까지 실핏줄 같은 균열만 있던 자리에 지름 1미터쯤 되는 검은 구멍이 뻐끔하게 열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땅에 커다란 도장을 쾅 찍어놓은 것처럼 원형의 균열이 선명했고, 그 안쪽에서는 보랏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안개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당 잔디를 깎다가 이 자리에 삽질을 해본 적이 있어서 아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그냥 갈라진 흙바닥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이게 웬 지름 1미터짜리 싱크홀이란 말인가.
콩이는 그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계속 짖어댔고, 나는 순간 '이거 뭐야'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거 설마······."
나는 몇 발짝 다가가 그 구멍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구멍 안쪽은 마치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처럼 어둡게 파여 있었는데,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손전등이라도 들고 있었으면 안쪽을 좀 확인해볼 텐데,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재현이가 보내준 커뮤니티 글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집 마당에서 미니 던전이 열릴 수 있다'던, 그때는 헛소리처럼 웃어넘겼던 그 이야기가, 지금 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설마, 진짜로?'
나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재현이가 톡으로 보내준 그 링크 제목이 뭐였더라. '마당·집안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소규모 균열 현상, 던전화(化) 사례 정리'였나. 그때는 그냥 읽다가 낄낄거리고 넘겼는데, 이렇게 실제로 마주하니 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구별이 안 됐는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던파헌터의 영상 속 장면들을 다시 떠올렸다. 카메라 앞에서 반짝이는 마보석, 팔백만 원짜리 슬라임 핵, 그리고 그가 매일같이 자랑하던 명품 시계까지. 그 영상 밑에 달린 댓글들도 기억났다. '와 저거 팔면 내 한 달 월급인데', '던전 하나 잘 잡으면 인생 역전이네'.
'이게 진짜 던전이라면.'
나는 그 생각 하나로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로 흥분했다. 팔백만 원. 슬라임 핵 하나에 팔백만 원. 그 돈이면 매달 용돈이 부족해 허덕이던 내 지갑이 숨통 좀 트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용돈 오르는 것도 아니고, 로또도 안 맞는 인생인데, 이런 기회가 내 집 마당에 뚝 떨어졌다는 걸 그냥 무시하고 다시 방에 들어가 잠이나 잘 수는 없었다.
"콩아, 잠깐 저리 가 있어."
나는 콩이를 집 안으로 밀어넣으며 목줄을 채웠다. 콩이는 계속 낑낑거리며 내 다리를 물듯이 붙잡으려 했지만, 나는 그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마치 "형, 저거 위험해 보여, 가지 마" 하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는데, 나는 애써 못 본 척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부모님은 아침부터 마트에 가고 안 계셨고, 집에는 나 혼자였다.
'이거 지금 안 들어가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겠어.'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며, 창고로 달려가 낡은 야구 배트 하나를 챙겨 들었다. 손잡이 부분 테이프가 다 벗겨져서 너덜너덜한,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주신 그 배트였다. 무기라고 하기엔 초라했지만, 그때 내 머릿속엔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부엌칼을 들까 고민도 했지만, 어쩐지 그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구멍 앞에 서서 안쪽을 다시 들여다보자, 서늘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뭔가 비릿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저릿한 기운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었다. 마치 겨울철 냉동고 문을 열었을 때처럼 서늘한데, 그 안에서는 뭔가 살아있는 것 같은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야구 배트를 꽉 움켜쥔 채 구멍 가장자리에 발끝을 걸쳤다.
'괜찮을 거야. 그냥 좀 보고, 이상하면 바로 나오면 되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한 발을 구멍 안으로 내밀었다.
쿵.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마당의 풍경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는 낯선 공간 안으로 완전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콩이의 짖는 소리가 저 멀리서, 마치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뭉개져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마저도, 이내 완전히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