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 날 아침, 콩이는 여전히 마당 화단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어제보다 짖는 소리가 더 커졌다는 걸 느낀 나는 대체 뭐가 문제인지 궁금해져서 창문을 열고 마당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흙바닥이 살짝 들뜬 것처럼 보였다. 그게 두더지 짓인지, 아니면 그냥 비가 와서 땅이 부풀어 오른 건지 알 수 없어서 나는 눈을 몇 번 비비며 다시 살펴봤지만, 결국 '주말에 삽으로 파봐야겠다' 하고 넘겼다. 어차피 지금 나가봤자 학교 갈 시간에 늦을 게 뻔했으니까.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기는 내내 콩이 짖는 소리가 계속 귓가에 걸렸는데, 어머니는 그냥 "쟤 또 왜 저래, 밥 늦게 줬다고 저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고, 나도 딱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학교에서도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 수업은 여전히 지루했고, 3교시 수학 시간엔 나도 모르게 졸다가 선생님한테 이름 불려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반 애들이 다 웃었다. 급식은 평소보다 짰고, 국물을 두 번이나 받아먹었는데도 목이 텁텁했다. 재현이는 또 던파헌터 얘기를 꺼냈다.
"그 형 이번엔 메탈 계열 슬라임 잡았다는데, 그거 하나에 팔백만 원 받았대. 미친 거 아니냐?"
나는 그 말을 듣고 젓가락을 멈췄다.
팔백만 원.
그 숫자가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재현이는 신나서 계속 떠들었는데, "야, 걔 이번 달에 던전 세 개 뛰었다더라. 유튜브 조회수도 백만 넘었대" 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내 코앞까지 들이밀었지만, 나는 그저 팔백만 원이라는 숫자만 머릿속에서 곱씹고 있었다. 우리 아빠 월급이 얼만데.
집에 돌아와서 나는 가방도 제대로 안 내려놓고 스마트폰으로 던파헌터의 예전 영상들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상 속 그는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던전 안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니며 몬스터를 때려잡고, 카메라 앞에서 마보석을 반짝이며 흔들어 보이곤 했는데, 조회수 밑에 달린 댓글들은 하나같이 "형 진짜 부자 됐네ㅋㅋ", "다음 생엔 나도 저 클래스로 태어나고 싶다" 같은 말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나도 저런 거 하나만 만나면.' 그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그게 얼마나 순진한 계산이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저녁 무렵 콩이 밥을 챙겨주러 마당에 나갔을 때, 나는 화단 옆 흙바닥이 확실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어제보다 더 뚜렷하게 색이 어두워져 있었고, 자세히 보니 흙 표면에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균열이 몇 갈래로 뻗어 있는 게 보였다. 마치 마른 논바닥이 갈라진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촘촘하고 규칙적인 무늬였다. 콩이는 그 근처로는 절대 다가가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나를 잡아끌듯 옷자락을 물고 뒤로 당겼는데, 그 힘이 생각보다 세서 나는 두어 걸음 끌려가기까지 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뭘 그렇게 겁먹어. 그냥 흙이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손끝으로 그 균열 근처를 슬쩍 만져봤는데, 순간 손가락 끝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져서 흠칫 놀라 손을 뗐다. 마치 지하 어딘가에서 뭔가가 낮게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 진동은 한 번뿐이 아니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어 번 더 이어졌다. 심장 박동 같기도 했고, 뭔가 거대한 게 아주 깊은 곳에서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한동안 흙바닥을 바라봤다. 콩이는 여전히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낮게 으르렁거렸는데, 평소 같으면 내가 등을 쓰다듬으면 금세 조용해지던 애가 이번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나는 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재현이가 보내준 던전 관련 커뮤니티 글들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거기엔 종종 '집 마당이나 골목에서도 미니 던전이 열릴 수 있다'는 경험담이 올라와 있었는데, 대부분 조회수 낚시용 제목에 어이없는 합성 사진이 곁들여져 있어서 나는 그걸 그냥 재미로 쓴 거짓 글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에이, 그런 게 있으면 뉴스에 나오지.' 나는 그렇게 결론짓고 스마트폰을 껐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나는 별생각 없이 밥을 먹었는데, 아버지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시며 팀장이 또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투덜거리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다독이며 반찬을 더 얹어주셨다. 그 평범한 저녁 풍경 속에서 나는 마당의 균열이나 진동 같은 건 이미 머릿속 저편으로 밀어놓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이불 속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던파헌터의 최신 영상을 하나 더 봤다. 그가 손에 쥔 은빛 슬라임 핵을 카메라에 들이대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영상 밑에는 그의 이번 달 수익 인증 캡처까지 올라와 있었는데,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0의 개수를 세어보다가 나는 그냥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평생 저런 거 한 번 못 만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창밖으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던 밤이었다. 몇 번인가 콩이가 짧게 짖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이미 반쯤 잠에 취해 있어서 그게 그냥 지나가는 고양이 때문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콩이의 짖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마당을 울렸다.
깨질 듯한 그 소리는 평소의 짖음과는 완전히 달랐는데, 마치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혹은 뭔가를 향해 필사적으로 경고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잠결에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그게 얼마나 다급한 신호였는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채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