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태민이 마주한 것은 낯선 풍경이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철제 다리, 굴러다니는 쇳덩이들, 사람들 손에 들린 반짝이는 판. 그가 알던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이... 지상인가.'
그는 잠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발밑의 흙은 익숙했으나, 그 위로 솟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던전 입구는 이제 낮은 언덕 아래 작은 표지판으로 막혀 있었다. 삼십 년을 헤맨 던전의 마지막 관문이, 지금은 사람 하나 지키지 않는 녹슨 철제 팻말 하나로 정리되어 있었다.
표지판에는 낯선 글자와 함께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한국 헌터협회 등록 던전 – 관리번호 7712.'
'관리번호라니.'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못 했다. 다만 사람들이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지나가던 이들이 걸음을 늦추고, 몇몇은 걸음을 멈춘 채 이쪽을 향해 손에 든 판을 들어 보였다. 그 판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낡은 갑옷, 허리에 매인 검 손잡이, 재와 피가 눌어붙은 얼굴. 그 자체로 시선을 끌 만했다. 갑옷의 이음새마다 말라붙은 몬스터의 체액과 깨진 마정석 파편이 박혀 있었고, 검집은 절반이 부서져 손잡이만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정상적인 사람의 행색은 아니었다.
'대장이 그랬었지.'
문득 스승이자 스승이었던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낯선 곳에 떨어지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하나뿐이다. 도움을 구할 곳이 어디인지.'
그 가르침 하나를 붙잡고, 태민은 헌터협회라는 글자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다리가 무거웠다. 서른 해를 최심부에서 버틴 몸이 이제 와서야 피로를 호소하는 듯했다. 그러나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도움을 구할 곳이 있다면 그곳뿐이라 여겼다.
길을 걷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모두 이상했다. 굴러다니는 쇳덩이들은 말도, 바퀴 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 안에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한참 후였다. 하늘에는 새보다 더 큰 무언가가 낮게 떠서 지나갔고, 사람들의 손에 들린 판에서는 빛이 흘러나왔다. 마법진도 아니고 부적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발광체였다.
'이 세계는... 마법이 아니라 전부 기계로 돌아가는 것인가.'
그는 그 생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세계, 혹은 완전히 다른 시간에 떨어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러나 그 확신은 아직 흐릿했다.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확인할 곳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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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지부의 문은 매끈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문지기 대신, 안내판이라는 것이 세워져 있었다. 태민은 그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이 스스로 열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밀어보고 나서야, 문 옆의 감지기가 그를 알아채고 스르륵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접수대의 젊은 직원이 힐끗 그를 훑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 표정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처음의 무심한 시선이 곧 경멸에 가까운 것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삼 초가 되지 않았다.
"코스프레는 밖에서 하세요." 직원의 목소리엔 귀찮음이 섞여 있었다.
"코스프레가 아닙니다." 태민이 짧게 답했다. 목소리는 낮고 단정했으나, 갑옷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피 냄새는 감출 수 없었다. "저는 새벽의 발톱 소속, 강태민입니다. 최심부 던전에서 올라왔습니다."
직원이 잠시 멈칫했다가, 곧 웃음을 참는 얼굴이 되었다. 옆자리의 동료를 향해 눈짓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벽의 발톱이요? 그거 삼십 년 전에 전원 실종된 파티 아니에요?" 직원이 동료를 돌아보며 물었다. "7712번 던전, 맞죠?"
동료 직원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맞아요. 전설이잖아요, 그거. 게임에도 나왔던 거 같은데. 그 다큐멘터리에도 나왔잖아, 실종 헌터 특집."
"게임..." 태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전설이라니. 삼십 년이라니.'
그는 그 두 단어를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다. 삼십 년이라는 숫자가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최심부에서 그가 보낸 시간은 길어야 몇 해,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였을 뿐이었다. 몬스터의 숫자를 세고, 동료들의 숨소리를 세고, 남은 식량을 세던 그 시간이 지상에서는 서른 해로 흘렀다는 것을 그의 몸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요, 손님." 직원이 다시 그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파티 리더가 강태민이란 건 다들 아는데, 그분은 삼십 년 전에 최심부에서 전멸한 걸로 기록돼 있거든요? 지금 여기 앉아서 나 강태민이다, 이러시는 거예요?"
"저는..." 태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전멸이라 했다.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그의 뒤로는 동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등을 맞대고 검을 겨누었던 이들, 그중 몇은 그의 눈앞에서 쓰러졌고, 몇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채 흩어졌다. 그들 모두가 지금 이곳에서는 '전멸'이라는 두 글자 안에 뭉쳐져 정리되어 있었다.
"장난이면 곱게 나가시고, 진심으로 그러시는 거면 병원 소견서 가져오세요." 직원이 손을 휘휘 저었다. "다음 분!"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를 힐끔거리며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꺼내 그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으나, 태민은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저 갑옷 되게 정교하게 만들었네." 줄 서 있던 젊은 남자가 옆 사람에게 소곤거렸다. "무슨 코스프레 행사 있었나?"
"근데 냄새가 진짜인데." 다른 여자가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거 진짜 피 냄새 아니야?"
그 말을 듣고서도 아무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듯, 몇몇은 웃음을 참으며 자리를 지켰다.
'전설이라 했다. 죽었다고 했다.'
태민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발이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최심부에서 견뎌낸 서른 해의 시간, 매일같이 죽음을 코앞에서 마주하며 지켜낸 그 무게가, 이곳에서는 손가락 몇 번 두드리면 나오는 기록 한 줄로 정리되어 있었다.
'대장이 말했었다. 살아 돌아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임무라고.'
그 말을 지키기 위해 그는 서른 해를 버텼다. 동료를 잃고, 몬스터의 이빨에 살을 내주고, 마지막 남은 식량을 나눠 먹으며 버틴 시간이었다. 그 모든 것이 이곳에 도착한 지금, 웃음거리로 변해 있었다.
접수대의 직원은 여전히 그를 무시한 채 다음 사람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완전히 구경거리를 보는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저러다 신고당하는 거 아니야? 무기 소지 아니야, 저거?"
그 말에 접수대 안쪽에서 다른 직원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표정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굳어 있었다. 누군가 조용히 내선 전화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태민의 눈에도 어렴풋이 들어왔다.
그가 알던 이름, 그가 지고 있던 무게가 이곳에서는 이야깃거리로만 남아 있었다. 그것이 그를 가장 크게 흔들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로비 저편에서 짧은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