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0년 전 죽은 영웅

1화

던전 최심부의 공기는 무거웠다. 습기와 마력이 뒤섞여 살갗에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폐 안쪽이 서늘하게 저렸다. 지상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공기였다. 마치 던전 자체가 살아 숨 쉬며 침입자를 옥죄는 것 같았다. 강태민은 검을 늘어뜨린 채 숨을 골랐다. 방금 쓰러뜨린 보스의 사체가 서서히 검은 재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 재는 바람도 없는 석실 안에서 스스로 흩날렸다. 마치 마지막까지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처럼. '삼 년이었다.' 태민은 검 끝을 바닥에 짚으며 숨을 내뱉었다. '이 층 하나를 뚫는 데 삼 년.' 그의 팔은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검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릿하게 떨렸다. 방금까지 휘두른 검의 무게가 뒤늦게 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드디어." 도규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웃었다. 갑옷 이곳저곳이 찢어져 속살이 드러나 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삼 년을 팠는데, 이제야 끝이군." 그는 크게 숨을 내쉬며 등을 벽에 기댔다. 온몸에서 땀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풍겼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지." 태민이 짧게 답했다. "이 층을 뚫었으니 위로 올라가는 길이 열릴 거다." "공자님은 진짜 낭만이 없으십니다." 도규가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다. 태민은 대답 대신 검을 검집에 넣었다. 스릉- 하는 낮은 소리가 석실에 잔잔하게 퍼졌다. 새벽의 발톱, 그것이 그들의 이름이었다. 여섯 명이 시작해 지금은 다섯이 남았다. 처음 던전에 발을 들였을 때는 여섯이 함께 웃고 있었다. 지금은 그중 하나가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흙이 되었다. 남은 다섯은 태민, 도규, 은호, 소하, 그리고 정미였다. 정미는 다른 통로를 정찰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태민은 그중에서도 가장 말이 없는 축이었다. 지상에 두고 온 것이 거의 없어서였다. 부모는 어릴 적 역병으로 잃었고, 정혼자는 없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오직 이 파티뿐이었다. '가족이라 부를 만한 건 여기가 유일하다.' 태민은 종종 그렇게 되뇌었다. 아버지는 죽기 전 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태민아, 검은 사람을 베는 물건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드는 물건이다."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덟 살짜리 아이에게 지킬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눈앞의 이 넷이었다. "공자님은 또 그 표정이시네." 막내인 소하가 옆구리를 찔렀다. 작은 체구에도 손끝은 매서웠다. "이겼는데 왜 이렇게 심드렁하십니까." "심드렁한 게 아니다. 다음을 생각하는 거지." "다음은 무슨, 오늘은 좀 쉽시다요." 도규가 크게 하품했다. 그러고는 아예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쉬는 것도 살아야 할 수 있는 거다." 태민이 낮게 대꾸했다. "어이구, 또 저 소리." 소하가 눈을 굴렸다. "공자님은 좀 웃으면서 사셔야 합니다. 그러다 늙기도 전에 주름 생기시겠어요." "검사는 웃음보다 판단이 먼저다." "그놈의 판단, 판단." 도규가 누운 채로 손을 휘저었다. "판단만 하다가 인생 다 갈 겁니다, 공자님은." 웃음소리가 잔해뿐인 석실에 잠깐 퍼졌다. 그것이 그들이 함께 웃는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부파티장인 은호는 그 웃음에 끼지 않은 채 석실 벽면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원래 말수가 적은 성격이었다. 웃고 떠드는 것보다 주변을 경계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방심하지 마라." 은호가 낮게 말했다. "던전은 보스가 죽었다고 끝나는 곳이 아니다." "또 저러신다." 소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은호 형님도 참, 방금 이겼는데 좀 즐기시죠." "즐기는 건 지상에 올라가서 해도 늦지 않다." 태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은호의 신중함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파티를 위기에서 건져낸 바 있었다. 삼 년 동안 다섯이 살아남은 것도 그런 신중함 덕이 컸다. +++ 보스의 재가 완전히 흩어지고, 석실 중앙에 숨겨진 문양이 떠올랐다. 스르릉- 바닥 전체가 얕게 울리며 빛을 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옅은 청색이었다가 점차 짙어지며 붉은 기운을 띠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부파티장인 은호가 검을 고쳐 잡았다. 몸이 반사적으로 전투 자세로 돌아갔다. "보상의 진법인가?" "이런 날엔 보상 진법이 뜨는 게 보통 아닌가." 도규가 몸을 일으키며 기대감 어린 목소리를 냈다. "삼 년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있어야지." "아니, 이건..." 태민의 표정이 굳었다. 눈에 익은 문양이었다. 봉인이 아니라 폭발형 함정의 전조였다. 그는 지난 던전에서 비슷한 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미리 알아채고 파티를 뒤로 물려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문양이 떠오르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왜 이번엔 이렇게 빠르지.' 태민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전조부터 발동까지의 시간이 반도 안 된다.' "모두 물러나!" 그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앙- 바닥이 갈라지며 붉은 섬광이 석실을 집어삼켰다. 빛은 눈을 태울 듯 강렬했고,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살갗을 훑고 지나갔다. 태민은 몸을 던져 소하를 밀쳐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손끝이 소하의 어깨를 붙잡고 밖으로 밀어내는 순간, 등 뒤로 섬광이 그를 덮쳤다. '왜 지금.'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충격에 휩쓸렸다. 최심부를 뚫은 대가로 던전이 마지막 발톱을 세운 것이었다. 폭발의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석실의 벽이 부서지며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도규의 비명 같은 외침이 아득하게 들렸다. 은호가 뭐라 소리치는 것도 같았지만, 이미 소리는 형체를 잃고 있었다. 몸이 허공으로 뜨는 감각을 마지막으로 느꼈다. 그리고 곧, 그마저도 사라졌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드는 물건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다시 떠올랐다. 이 순간에 왜 그 말이 떠오르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소하를 밀쳐낸 손끝의 감각만은 선명했다. 적어도 그것 하나는 지켰다고, 그는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그는 도규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공자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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