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국립이능인생활지원센터.
건물 외벽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었다.
간판도, 문패도 없이 그저 콘크리트로 마감된 사각형 건물이었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저 낡은 관공서로 보일 뿐이었다.
실제로 건물 앞을 지나가던 행인 몇 명이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이곳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도윤은 황가린을 따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예상보다 길었다.
한 층 정도 내려간 줄 알았는데, 발밑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는 훨씬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듯했다.
형광등이 깜박이는 좁은 복도가 이어졌다.
벽에는 아무 안내판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저 회색 페인트로 칠해진 콘크리트 벽뿐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서른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기관이었다.
세금을 내고, 뉴스를 보고, 나름대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런 곳이 지하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게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황가린은 앞장서서 걸으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만이 복도에 규칙적으로 울렸다.
이도윤은 그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의문이 들었다.
'대체 몇 살인 거지, 저 애는.'
복도 끝, 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
문 위에는 작은 명패가 붙어 있었다.
[등록 3과]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안에는 온화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서류 뭉치와 낡은 모니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임재훈입니다. 등록 담당관이에요."
이도윤은 얼떨결에 손을 맞잡았다.
손바닥이 두툼하고 따뜻했다.
"이도윤입니다."
"앉으세요. 서류부터 확인하죠."
임재훈이 컴퓨터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성명: 이도윤 / 각성 계열: 뱀파이어(미분류) / 발현 조건: 야간 한정 / 위험도: 미확정)
건조한 정보들이 화면에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도윤은 그 문구를 보며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요약되는 건가.'
이름 세 글자와 몇 개의 항목으로 압축된 자신의 존재가 어딘가 이상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살아온 서른다섯 해가 저 몇 줄로 정리될 수 있다는 게 알 수 없는 기분을 만들어냈다.
"위험도가 미확정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아직 실전 데이터가 없다는 뜻이에요."
임재훈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첫 각성이 사무실이었죠? 인명 피해는 없었고요."
"...네, 없었습니다."
그 순간을 떠올리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김하은의 얼굴이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럼 위험도는 낮게 시작합니다."
임재훈이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쿵. 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다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요?"
"혈액 관리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임재훈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지금까지의 부드러운 태도와는 다른 결의 표정이었다.
"매일 정해진 양의 혈액을 공급받아야 해요. 지정된 클리닉에서만요."
"만약 못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욕구가 쌓입니다."
임재훈이 짧게 답했다.
"쌓인 욕구는 본능적으로 표출돼요. 그게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이도윤은 그 말을 곱씹었다.
'욕구가 쌓인다니.'
왠지 모르게 목이 마른 느낌이 들었다.
착각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혀끝이 마르고, 목 안쪽이 뻐근하게 조여드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지금부터 시작인가.'
임재훈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은 듯 잠시 이도윤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황가린이 옆에서 조용히 덧붙였다.
"이도윤 씨는 특이 유형이라 관찰 대상으로도 등록됩니다."
"관찰 대상이요?"
"미분류 계열은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주기적으로 상태를 확인해요."
황가린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무적이었다.
억양의 높낮이가 거의 없어, 마치 미리 녹음해둔 문장을 재생하는 것처럼 들렸다.
"제가 담당할 겁니다."
이도윤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고생처럼 보이는 얼굴에, 나이답지 않은 눈빛.
그 눈빛은 방금 전 계단을 내려올 때부터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체 이 애는 뭐 하는 애일까.'
궁금했지만 지금 물을 상황은 아니었다.
임재훈이 서류 마지막 장을 내밀었다.
"여기 서명하시면 등록이 완료됩니다."
이도윤은 펜을 들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펜 끝이 종이에 닿기까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서명을 마치자, 임재훈이 옅게 웃었다.
"축하합니다. 이제 정식 이능인입니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기묘한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도윤은 자신이 방금 무언가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감각을 느꼈다.
서명 하나로, 인간이라는 이름 옆에 다른 이름 하나가 덧붙여진 기분이었다.
그때, 임재훈의 책상 위 통신 단말기에서 신호음이 울렸다.
삐빅.
임재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화면을 확인하던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벌써?"
황가린이 즉시 물었다.
"무슨 일이죠?"
"근처 편의점에서 신고가 들어왔어요."
임재훈이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지도와 함께 붉은 점 하나가 깜박이고 있었다.
"미등록 각성자 반응 감지. 야간 시간대. 위치가..."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붉은 점 옆에 뜬 주소를 다시 확인하는 듯했다.
"이도윤 씨가 다니는 회사 근처예요."
이도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김하은이 야근 후 자주 들르는 편의점이 떠올랐다.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다가, 라면 하나 사러 나간다며 웃던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다.
'거기에 지금, 하은이가 있을 수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황가린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방금 전까지의 사무적인 눈빛과는 또 다른, 날카롭게 벼려진 무언가가 그 안에 스쳤다.
"이도윤 씨."
그녀가 짧게 말했다.
"지금 당장 같이 가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