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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밤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핏빛으로 번진 구름 사이로, 별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 무너져 내린 빌딩 잔해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발밑으로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굴러떨어졌다. 검은 슈트 자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바람은 평범한 바람이 아니었다. 주변의 먼지와 파편들이 그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쳤다. 남자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빛났다. "이제 그만 끝내자." 낮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그저 사실을 통보하는 듯한 어조였다.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자, 주변의 공기가 통째로 얼어붙는 듯했다. 쿠구구구- 땅이 진동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인간의 형체라고는 볼 수 없는, 거대하고 흉포한 무언가였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이도윤이었다. 서른다섯,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 이도윤. 그가 어떻게 이런 존재가 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장면이 갈라지듯 어두워졌다. 얼마 전. 오전 열 시, 사무실 공기는 벌써부터 무거웠다. "이 대리, 그거 오늘까지 아니었어?" 최민석 과장의 목소리가 파티션 너머로 날아왔다. 이도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네, 지금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마무리는 어제도 했잖아." 최 과장이 혀를 찼다. 의자를 끌고 다가온 최 과장이 모니터를 흘긋 들여다보았다. "이거 말고 저번에 지시한 견적서는 언제 나와?" "오늘 오후까지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어제 말하지 않았어?" 이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감이 목덜미까지 타고 올라왔다. '또 밤샘이겠구나.' 벌써 이번 주 세 번째였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끝이 저릿하게 감각이 없어져 있었다. 커피는 이미 세 잔째였지만 정신은 오히려 더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사무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동료들은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방을 챙기는 소리, 의자를 밀어 넣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박서현이 지나가다 걸음을 멈췄다. "도윤 씨,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총무팀 박서현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이도윤의 눈 밑에 짙게 드리운 그늘에 닿았다. "괜찮습니다." 이도윤이 애써 웃었다. 박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요." "보고서만 끝내고 바로 퇴근할 겁니다." "...그 말, 지난주에도 들었어요." 박서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 진짜 쓰러져요. 병원은 가봤어요?" "시간이 없어서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안 내는 거겠죠." 박서현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도윤의 업무를 조정할 권한이 없었다.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밥은 먹었어요?" "...나중에요." 박서현이 뭔가 더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고 자리를 떠났다. 그때 후배 김하은이 다가왔다. "선배님, 죄송한데 이 부분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김하은이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빽빽하게 채워진 표와 숫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도윤은 잠시 숨을 삼켰다. '또...' 시계를 보니 벌써 아홉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곧 손을 뻗어 서류를 받았다. "줘봐. 금방 볼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김하은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 이거 아니면 내일 팀장님한테 진짜 혼나거든요." "괜찮아. 어디 보자." 이도윤은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빨간 펜으로 표시를 남겼다. 김하은은 옆에 서서 초조하게 발끝을 까딱거렸다. 이도윤은 그 표정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거절하는 법을 그는 알지 못했다. 서류를 다 봐주고 나니 시간은 이미 아홉 시 반을 넘어 있었다. 김하은이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떠났다. 사무실 불빛이 하나둘 꺼졌다. 밤 열 시가 넘었다. 사무실에는 이제 이도윤 혼자였다. 형광등 불빛이 유난히 하얗게 느껴졌다. 손끝이 떨렸다. 키보드 위에 얹어둔 손가락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최근 며칠 사이, 몸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고 있었다. 낮에는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반대로 밤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이상하다.' 어제도 그랬다. 야근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몸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서서히 눈을 뜨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각은 늘 아침이 오면 사라졌다. 그리고 남는 건 극심한 피로뿐이었다. 병원에 가볼까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그럴 시간조차 낼 수 없었다. 이도윤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밤 열 시 십오 분.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점점 멀어져갔다. 사무실 안에는 오직 형광등의 낮은 웅웅거림만 남아 있었다. 갑자기 뒷목이 서늘해졌다. 마치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도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텅 빈 책상들, 꺼진 모니터들, 그리고 정적. 그러나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도윤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예민해진 거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두통이 조금씩 밀려오고 있었다.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이제야 눈을 뜨려는 듯했다. 이도윤은 숨을 멈췄다. 가슴 한가운데서 시작된 그 낯선 감각이,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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