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대식가, 먹이가 되다

5화

곳간굴 깊은 곳에서 몰려온 것은 열 마리가 넘는 고블린 무리였다. 도윤은 벽을 등지고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숫자가 많다는 것은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세어보다가 그만두었다. 세는 것이 무의미해질 만큼 많았다. 하지만 두려움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첫 번째 놈이 뛰어들었다. 작은 몸집. 삐뚤어진 이빨. 손에 쥔 돌칼. 도윤은 팔을 휘둘렀다. 그것만으로 작은 몸이 튕겨 나갔다.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놈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 세 번째가 동시에 달라붙었다. 돌칼이 옷자락을 찢었다. 피부에 얕은 상처가 났다. 따가움이 늦게 찾아왔다. 통증이 몸을 관통하기까지 한 박자쯤 늦었다. 그 늦음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팠다면 멈췄을지도 몰랐다. 도윤은 손에 잡힌 놈을 그대로 벽에 던졌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잠깐 정신이 들었다. 이건 짐승이 아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에 계산이 있었다. 협공하는 방식에 순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무리는 흩어졌다가 다시 좁혀왔다. 하나가 발목을 물었다. 도윤은 다리를 흔들어 떼어냈다. 이빨이 살을 긁고 지나가는 감각이 남았다. 다른 하나가 등 뒤에서 뛰어올랐다. 등에 매달린 무게가 느껴졌다. 가벼웠지만, 그 가벼움이 오히려 성가셨다. 도윤은 몸을 낮춰 뒤로 벽에 등을 부딪혔다. 등에 붙은 것이 떨어져 나갔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짧은 비명이 울렸다. 숨이 가빠졌다. 땀이 흘렀다. 이마에서 시작된 땀이 눈썹을 타고 눈으로 흘러들었다. 시야가 잠깐 흐려졌다. 그런데도 배 속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웅— 낮고 둔중한 울림이었다. 싸움 중에도 그 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마치 몸 안에 별개의 짐승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았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도윤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변해갔다. 방어가 아니라 사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처음에는 벽을 등지고 버티는 자세였다. 지금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쓰러진 고블린 곁을 지날 때마다 그의 시선이 그 몸에 잠깐씩 머물렀다. 피 냄새. 살 냄새. 익숙하지 않은데도 자꾸 끌리는 냄새. 이상한 일이었다. 평생 사냥을 다니며 짐승의 피 냄새를 맡아왔다. 그것들과는 달랐다. 이건 뭔가, 먹을 수 있다고 몸이 먼저 판단해버리는 냄새였다. 도윤은 스스로 그것을 억눌렀다. 턱에 힘을 주고, 숨을 짧게 끊어 쉬며 그 냄새로부터 정신을 떼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억누를수록 배 속의 감각은 더 날카로워졌다. 마치 억누르는 행위 자체가 그것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한 놈이 무리에서 떨어져 도윤의 다리를 붙잡고 물었다. 통증이 번졌다. 날카로운 이빨이 종아리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도윤은 그 작은 몸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손아귀에 잡힌 몸이 버둥거렸다. 순간, 그 눈과 마주쳤다. 작지만, 두려움에 찬 눈이었다. 그 눈은 사람의 아이가 겁에 질렸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윤의 손이 멈췄다. 몸의 절반은 이미 그것을 던지려는 동작으로 굳어 있었는데, 손만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 짧은 정지가 스스로도 이상했다. 이게 짐승이라면 왜 이런 눈을 하는가. 짐승이 아니라면,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틈에 다른 두 마리가 달려들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팔뚝의 피부를 긁었다. 도윤은 그것들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섰다. 손에 쥐고 있던 놈도 함께 놓쳤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무리 쪽으로 도망쳤다.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무리는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대열을 갖췄다. 줄을 서는 것처럼, 흩어진 것들이 다시 모여 정렬했다. 그 짧은 틈에, 도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굴 벽면 한쪽에, 사람의 손으로 깎은 듯한 홈이 파여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로 하나, 세로로 하나, 다시 가로로 하나. 그 홈들은 굴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가두고, 몰아넣기 위한 구조 같았다. 도윤은 그것을 오래 볼 수 없었다. 무리가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더 조직적이었다. 양쪽에서 협공하듯 좁혀왔다. 왼쪽에서 셋, 오른쪽에서 넷. 가운데를 비워둔 채 양옆을 압박하는 방식이었다. 도윤은 밀리기 시작했다. 등이 다시 벽에 닿았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돌벽의 차가운 감촉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손끝의 떨림이 이제는 두려움인지 허기인지 구분이 안 됐다. 손끝만이 아니었다. 무릎도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힘 빠짐이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을 갈구하는 몸의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무리 중 하나가 신호를 보냈다. 짧고 낮은 울음소리였다. 언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분명한 명령의 형태를 갖춘 소리였다. 그 소리에 나머지가 일제히 물러섰다. 마치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도윤은 벽에 새겨진 홈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다. 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깊이가 일정했고, 방향이 모두 안쪽을 향해 있었다. 바깥에서 안으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안으로 몰아넣기 위한 흔적이었다. 이 굴은 그냥 짐승이 사는 굴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설계한 구조였다. 먹이를 몰아넣고, 가두고, 거두어들이기 위한. 식량실.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도윤 자신이 그 식량이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무리가 자신을 벽 쪽으로 계속 밀어붙이던 것도, 이제 와서 보니 우연이 아니었다. 정확히 이 홈이 파인 방향으로. 정확히 이 구조의 끝을 향해. 도윤은 처음으로, 이 싸움이 단순한 생존 싸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시각, 마을에서는 한도영이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동생이 떠난 지 반나절이 지나 있었다. 그는 창밖, 산봉우리 쪽을 오래 바라보았다. 해는 아직 완전히 기울지 않았지만, 그 봉우리 위로 벌써 옅은 그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동생이 그 그늘 속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마당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소리가 방 안까지 흘러들어왔다. "그 애가 없으면 밥은 줄어들 텐데."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현실을 말하는 거야."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보다 더 낮았지만 흔들리고 있었다. 도영은 그 대화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동생이 떠난 것이 슬픈지, 안심되는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밥 한 그릇이 줄어든다는 계산. 그 계산 속에 도윤의 이름이 숫자처럼 들어가 있었다. 가족이라는 게 원래 이런 식으로 셈해지는 것이었나. 도영은 그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 놀랐다. 장남이라는 자리는 그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라는 게 이제는 크지 않았다. 좁은 밭, 낡은 집, 그리고 앞으로 도윤이 벌어올지도 모를 무언가에 대한 기대. 그 기대의 무게가 자꾸 도영의 어깨를 눌렀다. 동생이 강해질수록, 자신의 자리는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장남이라는 이름만 남고, 그 안은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어릴 적, 도영은 도윤보다 늘 앞서 있었다. 먼저 걸었고, 먼저 말을 배웠고, 먼저 사냥칼을 쥐어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순서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순간, 동생의 등이 자신보다 넓어져 있었다. 도영은 방바닥에 놓인 낡은 칼집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주기로 한 사냥칼이었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칼이었다. 도윤이 오늘 챙겨간 것과 같은 종류였다. 그는 그것을 손에 쥐어보았다. 무거웠다.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손목이 살짝 꺾였다. 이 무게를 늘 이렇게 쥐고 다녔을까, 도윤은. 그런 생각이 스치자 어쩐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형은 뭐 할 거야." 방문 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조심스러운 물음이었다. 도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그 물음이 자신에게 향한 것인지, 아니면 부재한 도윤에게 향한 것인지조차 헷갈렸다. 손에 쥔 칼집을 다시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칼집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밖에서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산 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붉음이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도영은 그 붉음을 오래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그 붉음을 그저 저녁이라고 부를 것이다. 도영은 왜 그 색이 자꾸 핏빛처럼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곳간굴 안, 도윤은 여전히 벽에 등을 붙이고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리는 완전히 물러선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잠시 거리를 벌리고, 다시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숨을 고르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그들의 눈은 도윤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어둠 저편에서, 더 큰 형체가 서서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들보다 훨씬 무거운 발소리였다. 바닥을 딛는 소리마다 작은 돌가루가 떨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는 걸음이었다. 도윤의 배 속에서, 마지막으로 그 소리가 크게 울렸다. 웅— 그리고 그 순간, 무리 전체가 일제히 도윤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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