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마당에는 서은채가 서 있었다.
짙은 눈썹, 단호한 인상.
초등학교 때부터 도윤과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도윤이 마루로 나오자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시선은 오래 머물렀다.
발끝부터 어깨까지, 마치 뭔가 부족한 부분을 찾으려는 눈빛이었다.
도윤은 그 시선이 익숙했다.
어릴 때부터 서은채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을 살폈다.
"진짜 가는 거야."
"응."
"오늘."
"응."
서은채의 눈썹이 좀 더 좁혀졌다.
"미친놈."
"고맙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알아."
도윤은 마루에 걸터앉았다.
서은채는 그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얼굴 반쪽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나머지 반쪽은 아직 그늘 속에 있었다.
"뭐 하러 왔어."
"그냥 얼굴 보러 왔지."
"먼 길인데."
"안 멀어."
"너희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반 시간은 걸릴 텐데."
"그게 뭐 먼 거라고."
서은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걸어왔다는 사실을 도윤은 알지 못했다.
서은채는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것을 도윤 앞에 내밀었다.
손에 쥐어보니 묵직했다.
천 너머로 느껴지는 결정의 각진 감촉.
"이게 뭐야."
"소금."
도윤은 주머니를 열었다.
하얀 결정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침 빛을 받아 자잘하게 반짝였다.
청담에서 소금은 귀했다.
산골이라 소금길이 멀었고, 값도 비쌌다.
장이 서는 날이면 소금 한 줌을 두고 흥정하는 소리가 반나절은 이어졌다.
"이거 비싼 거잖아."
"우리 집 창고에서 몰래 훔쳐 왔어."
"들키면 혼나겠네."
"안 들켜."
"어떻게 안 들켜. 창고 지키는 게 너희 큰오빠잖아."
"큰오빠는 요즘 낮잠만 자. 창고 문도 제대로 안 잠가."
도윤은 그 말에 살짝 웃었다.
웃음은 짧았지만, 아침 들어 처음으로 나온 웃음이었다.
도윤은 주머니를 다시 묶었다.
그리고 서은채를 올려다보았다.
"이걸 왜 줘."
서은채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시선이 마당 끝, 산 쪽을 향했다.
곳간굴이 있는 산봉우리가 저 멀리 흐릿하게 보였다.
아침 안개가 봉우리 중턱을 감고 있었다.
"거기 들어가면 뭘 먹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렇지."
"짐승 고기든 뭐든, 맛없는 걸 먹느니 짜게라도 먹으라고."
"짐승 고기가 왜 맛없어."
"먹어봤어?"
"아니."
"그럼 가만있어."
도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고맙다. 진짜 도움 될 것 같아."
"당연하지."
서은채의 목소리에 옅은 웃음이 섞였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손끝으로 마루 나무를 톡톡 두드렸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손짓이었다.
손끝이 나무 위를 두 번, 세 번 오갔다.
"도윤아."
"응."
"너 살아서 나오면."
"응."
"그다음엔 뭐 할 건데."
도윤은 잠시 생각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먹고 싶은 거 실컷 먹을 거야."
서은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뭔가 다른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거 말고."
"뭐 더 있어야 돼?"
"…아니, 됐다."
서은채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려다 다시 멈췄다.
그녀의 발이 마당의 흙을 한 번 문질렀다.
"나 이번에 시집 얘기 나왔어."
"뭐?"
"우리 아버지가 벌써 신랑감 알아보고 있대."
도윤은 그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벌써? 열넷인데."
"이 동네에서는 이 정도 나이가 딱 맞대."
서은채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체념이 함께 담겨 있었다.
도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
"어떤 사람인데."
"몰라. 만나본 적도 없어."
"만나본 적도 없는데 시집을 가?"
"그런 거지, 뭐."
서은채는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아침 이슬이 아직 마루 아래 잔풀에 남아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몰라. 아직 답 안 했어."
"안 하면?"
"계속 미루는 거지. 아버지가 더 세게 나오기 전까지는."
서은채는 다시 도윤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뭔가를 확인하려는 절실함이 있었다.
"만약 네가 곳간굴에서 뭔가 대단한 걸 가져오면."
"뭘 가져와?"
"몰라, 뭐든. 그럼 우리 집도 형편이 좀 나아질 수도 있고."
"그럼 시집 안 가도 돼?"
"…그럴 수도 있겠지."
도윤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럼 열심히 뭐든 가져올게."
서은채는 잠시 도윤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짧고, 씁쓸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 끝에 눈가가 살짝 떨렸다.
"넌 진짜 하나도 모르는구나."
"뭘."
"됐어. 소금이나 잘 써."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마당을 나섰다.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도윤은 그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손에 든 소금 주머니를 다시 열어보았다.
하얀 결정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배 속에서 다시 그 소리가 났다.
오늘 아침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어머니가 마루로 다시 나왔다.
작은 보따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보따리는 낡은 무명천으로 여러 겹 싸여 있었다.
"먹을 것 좀 챙겼다. 많지는 않아."
"고마워요."
"칼 챙겼니."
"챙겼어요."
"밧줄도."
"챙겼어요."
"부싯돌은."
"그것도요."
윤미경은 아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서 어릴 때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손끝이 도윤의 옷깃을 한 번 매만졌다.
필요 없는 손짓이었지만, 손을 멈추지 못했다.
"조심해라."
"네."
"위험하면 바로 돌아와. 굴 안에서 뭐가 나와도, 이길 수 없으면 도망쳐."
"알겠어요."
"싸울 생각 하지 말고. 알겠니."
"네."
윤미경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손끝은 그렇지 않았다.
보따리를 건네는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척 보따리를 받았다.
도영이 방문 앞에 나와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다.
도윤이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도영은 아주 짧게,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전부였다.
도윤은 형에게서 뭔가 더 나오길 기다렸다.
말 한마디, 손짓 하나.
하지만 도영은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 소리가 마당의 침묵보다 더 크게 들렸다.
한승재는 마당 끝에 서서 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였다.
어깨가 평소보다 조금 굽어 있었다.
도윤이 다가가 인사를 했지만, 그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다녀올게요."
"……."
"아버지."
"조심해서 가라."
짧은 대답이었다.
그 등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도윤은 그것을 오래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산봉우리는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었다.
도윤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뭔가 더 말해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등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도윤이 먼저 몸을 돌렸다.
그는 보따리를 등에 메고, 소금 주머니를 옷 안쪽에 넣고, 집을 나섰다.
대문을 나서기 전,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마루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문도 닫혀 있었다.
그것이 이 집에서 보는 마지막 풍경일지도 몰랐다.
산길로 접어들자 마을의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개 짖는 소리, 우물가에서 물 긷는 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산의 초입을 넘어서면서 하나씩 사라졌다.
새소리,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만이 남았다.
길은 처음엔 완만했다.
발밑으로 마른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점점 경사가 가팔라졌다.
도윤의 이마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중턱에 이르자 나무들의 키가 낮아졌다.
바위가 드러난 곳이 많아졌다.
발밑에서 흙 대신 돌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계곡물이 어딘가에서 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윤은 걸음을 멈추고 물통에 남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등에 진 보따리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짐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곳간굴은 산 중턱에 있었다.
입구는 어른 셋이 겨우 나란히 설 수 있을 만한 너비였다.
안쪽은 새벽처럼 어두웠다.
돌 틈에서 축축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 바람은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는 결이 달랐다.
입구 주변의 바위는 오래된 손길로 다듬어진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이곳을 오래전에 드나들었다는 증거였다.
그 위로 이끼가 두껍게 자라 있었다.
곳간굴이라는 이름과 달리, 곳간처럼 보이는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윤은 그 앞에 섰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소금기.
젖은 흙냄새.
이끼와 오래된 돌의 냄새.
그리고 그 아래, 옅게 섞여 있는 다른 냄새.
비릿하고, 낯설고, 조금은 시큼한 냄새였다.
그 냄새는 마을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도윤의 배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내려온 산길이 안개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이제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입구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