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오, 새 얼굴이네."
그 말 한마디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목덜미부터 시작된 서늘함이 등줄기를 타고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발이 떨리는 걸 애써 감췄다.
이게 사람 목소리인가.
분명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목소리에 담긴 여유가 사람 같지 않았다. 마치 벌레를 관찰하는 듯한 톤이었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침착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장도한."
그가 이름을 밝혔다. 굳이 감출 이유가 없다는 투였다. 실제로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이름을 말하는 태도부터가 달랐다. 나는 뭐라도 캐치했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할까 봐 이름조차 함부로 못 대는데, 이 인간은 자기소개를 명함처럼 던졌다.
[종합 랭킹 3위. 전투력 지수 9,102.]
네비가 그 이름을 확인해주는 순간, 나는 3분 전 석판에서 본 숫자를 다시 떠올렸다. 9,102와 112. 나는 그 격차 사이에 서 있었다. 자릿수가 다르다. 아니, 자릿수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나 싶을 만큼 차이가 났다.
이건 격차가 아니라 종이 다른 거다.
"뭘 그렇게 굳어 있어."
장도한이 천천히 걸어왔다. 걸음마다 바닥이 살짝 눌리는 느낌이 났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는데 착각이라도 그렇게 느껴졌다. 신발 밑창과 돌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마저 유독 크게 들렸다. 다른 소리는 다 죽고 그 발소리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도망 안 가나?"
"…도망가면 살려주시나요?"
"글쎄."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은 웃지 않았다. 입만 웃는 얼굴이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뛰어봐. 재밌겠네."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산책 나온 사람이 길가의 개미집을 발끝으로 툭 건드려보는 듯한 태도였다. 죽고 사는 문제를 취미처럼 대하는 인간.
나는 침을 삼켰다. 목이 바짝 말라서 삼킬 것도 별로 없었다. 머리는 도망치라고 소리치는데 다리는 얼어붙어서 말을 듣지 않았다. 개조된 다리가 시속 60킬로짜리인데도 지금은 그 성능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몸이 안 움직이면 다리가 무슨 소용인가.
"제가 왜 도망가야 되는데요."
입에서 나온 말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겁이 나서 튀어나온 오기였다. 이럴 때일수록 약한 소리를 하면 더 재밌어할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정신이 아득해져서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후회할 말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장도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로, 배를 잡고 웃을 것처럼 큰 소리였다.
"마음에 드네. 아홉 명 죽였는데 이런 반응은 처음이야."
아홉 명.
숫자가 귀에 박혔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는 느낌이었다.
"…진짜로요?"
"거짓말할 이유가 있나."
그의 말대로였다. 이 인간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나 하나 죽이는 데 굳이 허세를 부릴 이유가 없으니까. 그게 더 무서웠다. 위협이 아니라 사실 전달이라는 게.
그의 손목에서도 은색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나와 같은 각인이었다. 다만 그의 것은 더 짙고, 더 뚜렷했다. 내 손목의 문양은 흐릿하게 스며든 잉크 같았는데, 저건 아예 새겨 넣은 낙인 같았다.
[대상. 근력 강화 스킬 보유. 등급 A.]
네비가 조용히 정보를 흘렸다. 등급 A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속이 울렸다. 나는 여태 내 손목의 각인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데, 저 인간은 벌써 등급까지 매겨진 상태였다.
"넌 스킬 있어?"
장도한이 물었다. 마치 취미를 묻는 듯한 어조였다. 그 가벼움이 소름 끼쳤다.
나는 대답 대신 손목을 힐끔 봤다.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뭐가 스킬인지도 모르겠다. 이 각인이 뭔가 힘을 준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정확히 뭘 하는 건지, 어떻게 꺼내 쓰는 건지 아무것도 몰랐다.
"…모르겠는데요."
"모른다고."
그가 웃음기를 지웠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이 더 무서웠다. 웃던 얼굴은 그나마 사람 같았는데, 무표정해지자 그냥 인형처럼 보였다. 감정이라는 걸 잠깐 꺼둔 것 같은 느낌.
"그럼 재미없겠네."
말과 동시에 그의 몸이 흐릿해졌다.
온다.
생각이 완결되기도 전에 그가 이미 눈앞에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개조된 다리가 아니었으면 그 순간 뭉개졌을 거다. 근육이 아니라 신경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보다 몸이 빨랐던 건 순전히 다리 개조 덕이었다.
콰앙!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의 바닥이 움푹 꺼졌다. 돌가루가 튀어 얼굴을 때렸다. 뺨이 얼얼했다. 손등으로 문지르니 작은 돌조각이 우수수 떨어졌다.
"…미친."
욕이 절로 나왔다. 방금 그 자리에 내 머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실감 났다.
"미쳤다고? 이제 시작인데."
그가 다시 웃었다. 그 웃음이 지금까지 본 어떤 것보다 무서웠다. 방금 사람 하나 죽일 뻔한 주먹을 날려놓고, 그 여운을 아직 즐기는 얼굴이었다.
네비가 다시 말을 붙였다.
[경고. 참가자 강신우, 생존 확률 급격히 하락 중.]
"지금 그거 말해줄 때예요?"
[사실 전달.]
이 와중에도 네비는 태연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죽을 확률을 숫자로 확인해야 하는 게 더 스트레스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뒤로 뛰었다. 달렸다. 시속 60킬로짜리 다리가 처음으로 온전히 제 기능을 했다. 발바닥이 바닥을 딛는 감각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것처럼 뛰었다.
하지만 장도한의 그림자가 계속 시야 끝에 걸려 있었다.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 그림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커졌다.
"도망가는 거 재밌네."
그의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렸다.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저 인간은 산책 중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방향을 틀었다. 통로 하나를 골라 몸을 던졌다. 왜 그쪽으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직선으로 도망치면 잡힐 것 같아서, 무작정 꺾었다.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따라붙었다.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통로 벽이 좁아지면서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 발소리와 그의 발소리가 겹쳐 들렸다. 아니, 겹치는 게 아니라 점점 하나로 붙어가고 있었다. 뒷목이 서늘했다. 곧 손이 닿을 거리라는 감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나 보자."
그 말이 채찍처럼 등을 때렸다.
다음 갈림길에서 나는 왼쪽으로 꺾었다. 근거 없는 선택이었다. 어느 쪽이든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멈춰 서는 것보다는 나았다.
발밑이 갑자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