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쿠구구구구—.
진동은 점점 강해졌고, 나는 벽에 손을 짚으며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발밑의 바닥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고, 먼지가 천장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이게 대체 뭐야.' 나는 이를 악물며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소녀를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는 어느새 방 전체를 뒤덮을 만큼 퍼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녀의 몸 주변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그것이, 지금은 벽과 천장까지 잡아먹을 듯이 팽창해 있었다. 그 안에서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의 울음 같기도 한 기묘한 음색이었다. 마치 수백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겹쳐서 울리는 것 같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였다.
나는 감지기를 다시 들어 화면을 확인했지만, 기계는 이미 과부하가 걸린 듯 화면이 깨진 채 깜빡이고 있었다. 숫자 대신 온통 지지직거리는 잡음만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고, 그 사이로 간간이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고장인가, 아니면 진짜 수치가 저렇게 나오는 건가.' 나는 감지기를 몇 번 흔들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장비 탓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나는 손전등 불빛을 소녀 쪽으로 다시 비췄고, 그녀의 몸을 묶고 있던 사슬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며 갈라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쇠사슬 특유의 무거운 광택 대신, 표면에 실핏줄 같은 금이 촤악 퍼지고 있었다. 마치 얼음판이 갈라지는 소리와 비슷한 것이, 카각, 카가각, 하고 귓가에 스치듯 들려왔다.
소녀는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초점이 흐렸던 눈동자가 이제는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결마저 서늘한 냉기를 품고 있었다. 그 냉기는 단순히 온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치 겨울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처럼, 뼛속까지 서늘하게 파고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대로면 뭔가 터진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구마사로서의 훈련된 감각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위기감이었다.
사슬이 완전히 부서지는 순간, 검은 안개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콰아앙—!
파열음과 함께 방 안의 상자들이 순식간에 재로 변해 흩어졌고, 나는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나며 벽에 등을 부딪쳤다.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숨이 턱 막혔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눈앞으로 재가 눈처럼 흩날렸고, 그 사이로 소녀의 실루엣만이 검은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다. '이건 못 버텨, 이 방 자체가 무너질 거야.' 그런 생각이 스치는 동시에, 나는 몸을 일으켜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도망치는 게 정상적인 판단이었을 텐데, 나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몸을 던졌으니까.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이건 미친 짓이라고, 지금이라도 문 쪽으로 뛰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었는데도, 다리가 먼저 소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소녀의 손을 붙잡은 순간, 나는 예상치 못한 감각에 숨이 턱 막혔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서늘함이 팔을 타고 올라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배수구에 물이 빨려 들어가듯, 그녀를 뒤덮고 있던 검은 안개가 내 손을 중심으로 스르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검은 연기가 손목을 타고 소용돌이치며 사라지는 광경을, 나는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이런 반응은 처음인데.' 나는 놀라움에 손을 놓을 뻔했지만, 억지로 붙잡은 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방 전체를 흔들던 진동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고, 웅웅거리던 이상한 음성도 점점 낮아지며 잦아들었다. 마치 볼륨을 조금씩 줄이는 것처럼, 소음이 사그라들었다. 소녀의 검게 물들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방 전체를 짓누르던 압박감도 조금씩 옅어졌고, 진동도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설마 내 능력이 통하고 있는 건가.' 나는 반신반의하며 그녀의 손을 더 강하게 붙잡았고, 그 순간 그녀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따뜻해."
작고 갈라진 목소리였다. 며칠 동안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는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바닥에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 이런 말을 할 상황인가.' 나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검은 안개는 완전히 사라졌고, 부서진 사슬 조각들만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내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를 붙잡고 있었는데, 그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나는 몇 번이나 손을 빼려 했지만 실패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것처럼, 손가락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나는 주위를 살피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무너진 벽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깥의 공기가 이상하게 차가웠고, 그 틈으로 새로운 진동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이번엔 방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무겁고 규칙적인, 마치 누군가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걷는 것 같은 그 소리는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소녀의 손을 붙잡은 채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