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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게임방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는데, 하늬가 따라왔다. "나도 같이 갈래." "네가 게임을?" "왜, 못할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못할 것 같았다. 하늬는 평소에 스마트폰 게임도 별로 안 하는 애였다. 카톡 답장도 3일에 한 번 오는 애가 갑자기 게임방을 따라온다고? 뭐지, 이 전개는. 근데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마치 조용하던 옆집에서 갑자기 인테리어 공사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 뭔가 바뀌고 있는데, 나는 그게 뭔지 알 수가 없는 그런 불안감. 유안이가 먼저 자리에 앉아서 캐릭터를 골랐다. "나 이번엔 근접 딜러 할래." "어, 나도." 나는 그냥 아무거나 골랐다. 어차피 나는 게임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오늘의 관심사는 게임 승패가 아니라 하늬 쪽이었으니까. 하늬는 한참 캐릭터 화면을 스크롤했다. 전사, 마법사, 힐러, 탱커, 계속 넘기다가 결국 궁수 아이콘에서 멈췄다. "궁수? 너 원래 이런 거 안 하잖아." "그냥 오늘 느낌이야." 느낌이라니. 그런 말은 원래 삼각김밥 참치마요 살지 스팸 살지 고민할 때 쓰는 말 아닌가. 근데 하늬 입에서 나온 "느낌"이라는 단어에서 뭔가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다. 게임이 시작됐다. 로딩 화면이 끝나고 캐릭터들이 맵 위에 뿌려졌다. 처음엔 다들 평범하게 움직였다. 유안이는 근접 딜러답게 앞으로 돌진했고, 나는 뒤에서 눈치만 보며 어슬렁거렸다. 근데 하늬 캐릭터가 화면에 잡히는 순간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하늬의 조작이, 너무 정교했다. 적을 감지하는 타이밍이 이상할 정도로 정확했다. 화살을 쏘는 궤적도 그냥 감으로 쏘는 게 아니라, 마치 각도를 계산해서 쏘는 것 같았다. 이동 경로는 더 심했다. 장애물을 피하는 타이밍, 몸을 숨기는 위치, 전부 마치 게임을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해본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야, 서하늬 뭐야, 이거 처음 한다는 거 아니었어?" 유안이가 화면을 보며 놀랐다. "어? 어, 그냥 감이 좋아서." 감이 좋다는 말로 넘어갈 정도가 아니었다. 저건 감이 좋은 게 아니라 뭔가 신체 스펙이 다른 수준이었다. 촤악! 촤악! 하늬 캐릭터가 화면 구석에서 구석으로, 마치 순간이동하듯 움직였다. 적 세 명이 동시에 덤벼드는데도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타이밍이 마치 예측이 아니라 그냥 미래를 보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거 핵 아니야?" 유안이가 웃으며 물었다. 그냥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을 텐데, 나는 그 말에 순간적으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왜냐하면 나는 저게 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아니, 아니야, 그냥 잘하는 거야." 하늬가 급하게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근데 그 손짓 자체가 너무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CCTV 앞에서 물건 안 훔쳤다고 손 흔드는 사람 같았다. 뭐지, 이 반응은. 평소 하늬는 이렇게 허둥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뭘 해도 여유 있고, 심지어 나한테 잔소리할 때도 표정 하나 안 바뀌는 애였는데. 게임이 끝났다. 결과는 당연히 우리 팀 압승이었다. 하늬가 캐리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 셋이 편의점에 갔다. 삼각김밥을 사서 밖에 놓인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 먹었다. 참치마요 하나, 불닭 하나, 그리고 하늬는 그냥 삼각김밥을 손에 쥔 채 먹지도 않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늬야, 너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얼굴이 이미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니었다. 표정 관리라는 게 원래 저렇게 실패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하늬는 계속 시선을 피했다. 그때, 편의점 뒤편 골목에서 갑자기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야옹! 동네에서 몇 번 본 것 같은 삼색 고양이였다. 근데 그 고양이 뒤로, 뭔가 검은 형체가 따라 나왔다. 처음엔 그냥 쓰레기봉투가 바람에 날린 건가 싶었다. 근데 그 형체는 바람에 날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감정: 검은 개체 / 종류: 하급 마수 / 위협도: 중] 뭐지. 마수라니, 진짜로. 삼각김밥 먹다가 마수를 만나는 인생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근데 지금 그게 내 얘기였다. 검은 형체가 고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 어어!" 유안이가 놀라서 소리쳤다. 하늬가 순간 반응했다. 촥!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늬가 그 검은 형체를 걷어찼다. 발이 움직이는 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잔상만 남았다. 형체가 벽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쾅! 벽돌담이 살짝 움푹 들어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저게 사람 발차기라고? "헐, 뭐야 저거!" 유안이가 소리를 질렀다. 하늬가 순식간에 자세를 잡았는데, 그 자세가 뭔가 무술 사범 같았다. 무게중심이 낮고, 어깨는 이완되어 있고, 시선은 표적을 정확히 고정하고 있었다. 평범한 여대생의 자세가 아니었다. 저건 최소 몇십 년은 수련한 사람의 자세였다. "저, 저거 뭐였어?" 유안이가 다시 물었다. 하늬가 순간 굳었다.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시험 답안지에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고, 고양이 괴롭히는 나쁜 놈이야! 걱정 마!" 이건 또 뭔 설명인가. 나쁜 놈이라기엔 형체에 눈코입도 없었는데. "나쁜 놈이라기엔 너 발차기가 너무 프로급이었는데." 유안이가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내, 내가 태권도 좀 했거든!" "태권도로 벽까지 튕겨나가게 하는 발차기가 있어?" 유안이 말이 맞았다. 저건 태권도 발차기가 아니라 뭔가 다른 거였다. 태권도장에서 저런 발차기를 가르쳤다면 그 도장은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을 거다. * 하늬가 당황해서 계속 변명을 늘어놓는 사이, 검은 형체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촤르르르륵! 형체가 그림자처럼 늘어나며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형체 표면에서 뭔가 끈적한 액체 같은 게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어둠 그 자체가 흐르는 거였다. "위험해, 도훈아! 뒤로 물러나!" 하늬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외쳤다. 평소 말투와 완전히 다른 목소리였다. 톤도 낮아지고, 발음도 또렷해졌다. 저건 대학생 서하늬의 목소리가 아니라 뭔가 다른 존재의 목소리였다. "하늬야, 너 지금 뭐..." "설명은 나중에! 일단 유안이 데리고 물러나!" 유안이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얼음이 된 사람처럼 삼각김밥을 손에 쥔 채로 움직이질 못했다. 나도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근데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그 검은 형체를 다시 감정해봤다. 왜 감정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몸이 먼저 반응했다. [감정: 검은 개체 / 종류: 하급 마수 / 약점: 빛] 약점: 빛. 이거 봐라, 이렇게 편하게 알려줄 거면 진작에 좀 알려주지. 꼭 이렇게 애들 겁먹고 난 다음에 스포일러 뿌리는 스타일이냐. "하늬야, 저거 빛에 약하대!" "뭐?" "빛에 약하다고!" 하늬가 순간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이 뭔가 복잡했다. 놀라움과 의심과, 뭔가 다른 감정이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도 몰라, 그냥 보였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짜로 그냥 보였으니까. 근데 이게 정상적인 대답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늬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서 형체에게 비췄다. 촤악! 형체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마치 어둠 속에 물을 뿌린 것처럼, 형체는 흔적도 없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사, 사라졌다." 유안이가 멍하게 서서 말했다. *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편의점 안에서 새어 나오는 캐럴 캐롤 음악만 어색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계절이랑 맞지도 않는 캐럴이었다. 하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안아, 방금 본 거는... 못 본 걸로 해줄 수 있어?" "그게 가능해? 방금 괴물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는데?" 유안이 말이 맞았다. 이건 못 본 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편의점 앞에서 괴물을 봤는데 그걸 안 봤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늬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700년 은신술 가문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누가복음 8:17, 은밀히 있는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나니] 700년을 은밀히 지켜온 게 대학교 편의점 앞에서 삼각김밥 먹다가 들통났다. 성경 말씀 하나는 참 예리하게 맞아떨어졌다. 근데 이 타이밍에 이 구절이 왜 떠오르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저기, 유안아. 이거 진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하늬 목소리가 떨렸다. 평소 침착하던 하늬가 이렇게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유안이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삼각김밥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그러니까, 서하늬 네가... 뭐야, 초능력자야?" 초능력자. 뭐 얼추 비슷한 설명이긴 한데. 정확히 말하면 초능력자보다는 700년 묵은 은신술 가문의 후계자 쪽이 맞겠지만, 그걸 지금 여기서 정정해줄 상황은 아니었다. 하늬가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눈으로 묻는 것 같았다. 나도 몰랐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삼각김밥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는 것뿐이었다. 근데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오늘부로 우리 셋의 관계가 뭔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변화가 좋은 쪽으로 갈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터질지, 나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편의점 형광등이 유독 하늬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더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사건이 오늘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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