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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평범한 대학생이 되고 싶다. 이게 내 인생 목표라고 하면 다들 웃는다. 꿈이 왜 이렇게 소박하냐고, 뭐 대단한 거 바라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웃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누군 재벌 3세가 되고 싶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고, 누군 아이돌 되고 싶다고 하면 응원까지 해주면서, 나보고는 왜 웃는 건데. 근데 나도 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평범함이라는 게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거라는 사실을, 나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한빛대학교 경영학과 새내기 김도훈, 그게 나다. 스무 살, 남자, 키 174, 몸무게는 묻지 마라. 정말로 묻지 마라, 나도 모른다, 저번에 잰 게 언제인지도 기억 안 난다. 특기는 없음, 특징도 없음, 그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다. 남들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무난하게, 평범하게. 등하교할 때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보다가 정거장 놓치는 그런 인간, 편의점 삼각김밥 먹으면서 하루를 때우는 그런 인간, 그게 내가 되고 싶은 인간상이다. 멋있어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특별해 보이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딱 배경 1처럼 살고 싶다는 거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다. 내 죽마고우가 평범하지 않다는 거다. "도훈아, 오늘도 늦었네." 뒤통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서하늬가 서 있었다. 서하늬. 키 157.2cm, 체중 56kg. 포니테일에 스포츠형 체형, 얼핏 보면 그냥 활발한 여자애다. 근데 이 애가 문제다. 어릴 때부터 나랑 붙어 다닌 죽마고우인데, 어딘가 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하냐고 물으면 딱 짚어서 말하기가 애매한데, 그냥 촉이 그렇다. 십수 년을 봐온 촉이니까 믿어봐라. 가끔 눈빛이 순간적으로 사람 아닌 것처럼 변할 때가 있고, 가끔 존재하지 않는 걸 보는 사람처럼 허공에 시선을 두기도 한다. 근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평소엔 그냥 잔소리 심한 옆집 누나 같은 존재다. "안 늦었어. 정확히 9시 59분이야." "수업 9시야, 인간아." 아, 맞다. 왜 항상 이 타이밍에 생각나는 걸까. 시계를 보는 순간이랑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사이에 텀이 있다는 게 문제다. 촤악! 뒷문으로 뛰어들어가는데 교수님이랑 눈이 딱 마주쳤다. 망했다. 평범한 대학생은 지각 안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평범한 대학생도 지각은 한다. 근데 지각하고서 교수님이랑 저렇게 강렬하게 눈이 마주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교수님 눈빛이 딱 '자네 이름 적어놨다'는 그 눈빛이었다. [전도서 1:9, 이미 있던 일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 것이라] 그러니까 지각도 계속 반복된다는 거지, 성경도 알고 있었네. 전도자님 혹시 대학생이셨습니까, 아니면 그냥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을 이렇게 우아하게 하신 겁니까. "그러니까 내가 뭐라 그랬어, 미리 알람 세 개 맞추라고." 강의 끝나고 하늬가 팔짱을 끼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세 개 맞췄어. 근데 세 개 다 못 들었어." "그게 문제라고, 이 인간아." "난 못 들은 건데 왜 나한테 화를 내." "들으라고 있는 게 알람이잖아, 이 답답아." 말싸움으로는 절대 하늬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깨달았다. 근데 왜 매번 새로 시도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인간은 학습을 못 하는 동물인가보다. 하늬는 나를 어릴 때부터 봐온 애다. 초등학교 때부터 옆집 살았고, 부모님들끼리도 친했고, 뭐 흔한 설정이다. 같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져서 무릎 깨진 것도, 같이 학원 째고 만화방 갔다가 걸린 것도, 다 하늬랑 함께한 기억이다. 근데 하늬 걔는 항상 나한테 유별나게 신경을 쓴다. 보통 친구 사이라면 이 정도까지 관여 안 하는데, 얘는 좀 다르다. 꼭 나를 지켜야 하는 임무라도 받은 사람처럼, 어디 가는지 뭘 먹는지 시시콜콜 다 확인하려 든다. "나 이제 어드바이저 자처할게." 갑자기 뭔 소리인가. "뭔 어드바이저." "너 평범한 대학생 되고 싶다며. 내가 도와줄게. 전속 어드바이저." "난 그런 거 신청한 적 없는데." "신청 안 해도 돼, 내가 임명한 거니까." 임명? 누구 맘대로 임명이야, 라고 따지려다가 그냥 관뒀다. 어차피 말싸움으로는 못 이기니까.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다. 근데 곱씹어보면 고마운 일이긴 했다. 혼자서는 평범해지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이게 웃긴 말인 거 아는데, 진짜다. 평범함이라는 게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은근히 관리가 필요한 상태더라. "그래서 오늘 미션이 뭔데." "박유안이랑 친해지기." 박유안. 같은 학과 애인데, 입학식 끝나고 한 달 반쯤 지나서야 제대로 말 섞은 애다. 중간 체형, 훈훈한 얼굴, 성격 밝고 친근해서 여기저기서 인기가 많다. 캠퍼스 걸어가면 다들 인사하는 그런 부류. 나랑은 정반대 존재인데, 이상하게 나한테도 편하게 다가온다. "걔랑 친해지면 뭐가 좋은데." "평범한 대학생은 친구가 있어야 하잖아." "나 너 있잖아." "난 인정 안 해, 나는 어드바이저지 친구가 아니야." 이건 또 무슨 논리인가. 근데 반박하려니 딱히 반박거리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 하늬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평범함의 필수 조건 중에 '무리 없이 어울리는 인간관계'가 있다면, 나는 낙제점이었다. 친구 관계라는 게 인스타 팔로워 수처럼 숫자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속 성적표엔 항상 빨간 줄이 가 있었다. "야, 도훈아!" 저 멀리서 유안이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밝은 목소리, 밝은 표정, 밝은 모든 것. 나랑 정반대의 인간이다. 태양이랑 형광등 사이의 거리쯤 되는 느낌이다. "어, 유안아." "오늘 수업 어땠어? 나 완전 졌잖아, 지각." "나도." 둘이 지각한 게 뭐 자랑이라고 낄낄거렸다. 근데 이게 또 묘하게 즐거웠다. 평범한 대학생끼리 나누는 평범한 대화, 이런 게 내가 원하던 그림이었다. 지각 얘기, 수업 얘기, 오늘 점심 뭐 먹을지 얘기. 딱 이 정도 수준의 대화가 그렇게 소중한 건지 예전엔 몰랐다. "근데 옆에 이분은?" 유안이가 하늬를 보며 물었다. "어, 얘는 서하늬. 어릴 때부터 친구야." "오, 그래? 반가워요!" 하늬가 갑자기 손을 확 뻗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전 도훈이 인생 컨설턴트예요!" 뭔 인생 컨설턴트야. 저건 좀 자제해달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매번 저 소개를 한다. 유안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컨설턴트래, 재밌는 친구네." "보수는 없어요, 순수 자원봉사예요." "와, 대단하다." 다행히 유안이는 그냥 재밌는 애로 넘겨줬다. 하늬가 자기소개를 저런 식으로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니, 애초에 저런 식으로 소개하는 거 자체가 문제인 거 같은데 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촥! 하늬가 내 발을 슬쩍 밟았다. "아파." "조심해서 말해, 인생 컨설턴트 정체 들키면 곤란하다고." 뭔 정체가 들켜, 그냥 오지랖 넓은 친구인 게 뭔 정체라고. 그때는 나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발등이 얼얼한 걸 보니 하늬가 밟을 때는 늘 진심으로 밟는다는 사실만 새삼 깨달았다. 강의동에서 나와 캠퍼스를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평범한 대학생 되기, 이거 생각보다 할 만한데? 지각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잔소리쟁이 죽마고우도 있고. 이게 딱 대학 신입생 국룰 아니냐. 드라마에서 보던 그림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 뭐 문제 있나. 근데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걸 봤다. 캠퍼스 화단 옆에, 뭔가 반짝이는 게 떨어져 있었다. 돌인지 유리인지 모를 작고 투명한 조각이었다. 딱히 신경 쓸 물건도 아니었는데, 왠지 눈이 자꾸 그쪽으로 갔다. 길바닥에 떨어진 조각 하나에 눈이 붙잡히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그보다 더 이상한 건 그걸 무시하고 지나가기가 힘들었다는 거다. 꼭 자석에 끌리듯이, 발걸음이 저절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뭐 봐?" 하늬가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니, 저기 뭐 떨어져 있어서." "그냥 유리조각이잖아." 그 말이 맞을 거다. 캠퍼스에 유리조각 하나 떨어져 있는 게 뭐 대수인가. 누가 음료수병 깨뜨렸나 보다, 딱 그 정도 생각이면 충분한 상황이었다. 근데 나는 왜 그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을까. 그때는 그냥 습관처럼,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손끝에 닿은 조각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한여름도 아닌데 유독 서늘한 느낌이었고, 그 서늘함이 손가락을 타고 팔뚝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근데 그런 느낌도 딱 3초 정도 신경 쓰다가 그냥 넘겼다. 원래 사람이 이상한 걸 봐도 오래 신경 안 쓰는 게 정상이잖아. [시편 139:16, 나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뭐 대단한 운명적 조우라도 되는 것처럼 성경 구절이 붙는데, 그냥 유리조각 주웠다고 성경 좀 갖다 붙이지 마라. 이러다 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고를 때도 구절 튀어나올까봐 무섭다. 그날은 그렇게 끝났다. 평범한 하루, 평범한 지각, 평범한 친구, 평범한 잔소리. 저녁에 집에 와서 주머니 속 조각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뭐 이딴 걸 왜 주웠나 하고 잠깐 웃었다. 그러고는 그냥 침대에 던져놓고 잠들었다. 근데 다음날부터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내 눈에,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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