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던전 포식 귀환자

3화

공터로 이어지는 통로 끝에서 발광 이끼가 유독 짙게 자라 있었다. 벽을 타고 올라간 이끼가 마치 실핏줄처럼 뻗어 있었고, 그 틈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형광등보다는 반딧불이에 가까웠다. 은은하고, 흔들리고, 어딘가 서글픈 빛. 그 덕분에 안쪽이 어느 정도 보였다. 녹색 피부에 마른 체격, 어른 허리 정도 높이. 귀는 길고 뾰족했고 이빨은 아래턱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셋이었다. 하나는 뭔가를 뜯어먹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조잡한 몽둥이를 든 채 서로 낮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먹이를 두고 싸우는 모양새였다. 뭘 먹고 있는지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고블린이었다. 저쪽 세계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는 저것들 세 마리한테 죽을 뻔했다. 열여섯 살, 아무것도 모른 채 던전 같은 곳으로 끌려 들어갔던 그날. 그때는 몽둥이 하나에도 다리가 풀렸다. 오줌을 지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다. 지금 와서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때는 그랬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 몸을 낮추고 통로 벽에 붙어 거리를 가늠했다. 열 걸음. 저것들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코가 예민한 종족이라던데, 오늘은 운이 좋았는지 저쪽에서 나는 냄새가 더 강했던 모양이다. 괜찮다. 규칙은 간단하다. 먼저 발견되기 전에 끝낸다.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굳이 셀 필요도 없었지만 몸을 움직이기 전에 항상 하던 습관이었다. 저쪽 세계에서 배운 건 기술만이 아니었다. 리듬도 함께 배웠다. 다리에 힘을 모았다. 접선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이 몸의 순수한 다리 힘만으로도 열 걸음은 한 호흡이면 충분했다. 신발 밑창이 흙을 밀어내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발끝으로만 디뎠다. 쾅. 첫 번째 고블린의 머리가 흙벽에 부딕혔다. 아니, 부딪혔다. 발음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손이 먼저 나갔고, 몸이 그 뒤를 따랐다. 벽에 처박힌 고블린의 몸이 한 번 꿈틀거리다 그대로 늘어졌다. 소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흙벽이 소리를 흡수하는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두 번째 고블린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눈이 붉게 번뜩였다. 나는 그 몽둥이를 맨손으로 잡아챘다. 나무가 손안에서 으스러졌다. 부서진 나무 조각이 손바닥을 긁고 지나갔지만 아픔은 없었다. 이 정도 상처는 몸이 알아서 처리한다. 고블린의 눈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스쳤다. 저것들도 눈치는 있다. 상대가 잘못 걸렸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너무 늦었다. 세 번째 고블린은 도망치려 했다. 몽둥이를 버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살고 싶다는 본능만큼은 인간이나 고블린이나 똑같다. 나는 그 등을 향해 접선을 썼다. 픽. 한순간에 거리가 사라졌다. 세 마리 모두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숨 세 번 정도였다. 통로는 다시 조용해졌고, 발광 이끼의 빛만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벽에 튄 초록빛 액체가 이끼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섰다.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빨리 뛰었지만, 그건 흥분이라기보단 습관이었다. 몸이 아직도 저쪽 세계의 리듬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손끝에 초록빛 피가 묻어 있었다.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비리다기보다는 익숙한 종류의 향이었다. 저쪽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맡았던 냄새. 피 냄새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인간의 피는 쇠 냄새가 나고, 고블린의 피는 좀 더 풀냄새에 가깝다. 이런 걸 구분할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가끔은 낯설다. 나는 무릎을 꿇고 첫 번째 고블린의 사체 앞에 앉았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저쪽 세계에서 배운 규칙이 있다. 몬스터의 마력은 살과 피에 남아 있지만, 죽은 직후부터 시간이 갈수록 그 밀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신선할 때 먹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 급하게 많은 양을 흡수하면 몸이 그걸 감당하지 못해 역류한다. 한 마리씩, 천천히. 급하게 먹다가 게워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배웠다. 몸에 새긴 규칙이라 잊을 일도 없었다. 나는 사체의 가슴 부위를 손으로 짚었다. 마력이 가장 짙게 남아있는 자리였다. 살갗 아래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죽었는데도 마력은 아직 그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몸은 죽었는데 그 안의 힘만 살아 남아 있다는 게. 저쪽 세계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지금은 이런 걸 곱씹을 여유가 생겼다는 게, 어떤 의미로는 다행이었다. 그 살을 뜯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감각은 맛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웠다. 맛보다 먼저 오는 건 채워짐이었다. 배 속의 텅 빈 자리가, 사흘 동안 아무것도 못 채웠던 그 자리가, 순식간에 뜨거운 것으로 메워졌다. 마치 오랫동안 꺼져 있던 보일러가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구석구석까지 뜨거운 기운이 퍼졌다. 괜찮다. 아니, 좋다. 정말 좋다. 손이 멈추지 않았다. 두 번째 한 입, 세 번째 한 입. 몸속에서 뭔가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심장 박동이 또렷해지고, 시야의 초점이 날카로워졌다. 손끝의 떨림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사흘 동안 물만 마시고 버텼던 그 감각이,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인간이었던 시절의 식탁이 떠올랐다. 흰쌀밥에 김치, 된장국. 그런 것들이 주던 만족감과 이 순간의 만족감이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사람이 고블린 살을 뜯어먹으면서 집밥 생각을 하다니. 이러다 정말 미쳐가는 건가 싶었지만, 배가 채워지는 감각 앞에서는 그런 자조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 마리를 다 비우고 나서야 나는 손을 멈췄다. 숨을 골랐다. 이 정도면 됐다. 두 번째, 세 번째 사체는 그대로 남겨뒀다. 지금 배 속에 들어온 양만으로도 사흘치는 충분할 것 같았다. 남은 두 마리를 챙길 수도 있었지만, 몸이 감당 못 할 양을 억지로 밀어넣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저쪽 세계에서 배운 것 중 가장 확실한 교훈이 그거였다. 과식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도 그 규칙이 다르게 적용될 거라 믿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이게 마력이 도는 감각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순간, 확실히 깨달은 게 있었다. 이 세계에도 마력이 있다. 아니, 정확히는 던전 안에만 있다. 지구의 공기에는 없던 그 성분이, 이 균열 너머 공간에는 존재했다. 균열이 열리면서 그 세계의 법칙 일부가 여기로 새어 나온 거다. 뉴스에서 던전이니 균열이니 하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정부가 만든 이상한 관광 상품인 줄 알았다. 실제로 안에 들어와 보니, 이건 관광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배가 고프면 여기로 오면 된다. 간단한 결론이었다. 사흘에 한 번씩 이 근처를 어슬렁거리면서 고블린 몇 마리를 처리하면,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사 먹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문제는 이 던전이 정부의 감시 아래 있다는 것뿐이었다. 던전 입구마다 감시 카메라가 있고, 출입 등록 절차가 있고, 헌터 협회 소속이 아니면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었다. 나 같은 신분으로, 정식 등록도 안 된 상태로 이런 곳을 들락거리다가 걸리면 어떤 식으로 문제가 될지는 뻔했다. 벌금, 조사, 최악의 경우 격리. 지금 상황에서 그런 절차를 감당할 여유는 없었다. 서류 한 장 떼는 것도 버거운 처지에 헌터 등록증이라니, 웃음도 안 나오는 소리였다. 그래도 지금은 당장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배는 채웠으니, 다음은 안전하게 나가는 방법을 생각할 차례였다. 나는 몸을 돌려 통로를 더 살펴보기로 했다. 세 마리로 끝날 리 없었다. 이런 규모의 균열에 고블린 세 마리만 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저쪽 세계에서도 던전이라는 공간은 항상 개체 수가 몰려 있었다. 하나를 발견하면 근처에 반드시 더 있다고 봐야 했다. 감지 스킬을 다시 켜자, 아래쪽에서 더 넓은 공간의 기척이 잡혔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최소 다섯, 어쩌면 그 이상. 그중 하나는 앞선 고블린들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움직임의 파장 자체가 달랐다. 고블린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급, 혹은 그보다 상위종일 가능성이 있었다. 괜찮다.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다.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지만, 손바닥에 아직 남아 있는 초록빛 얼룩을 내려다보며 살짝 웃음이 나왔다.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도, 결국 저쪽 세계에서 몇 번이나 죽을 뻔하며 얻은 감각일 뿐이었다. 이 감각이 틀리면 그대로 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점점 아래로, 더 어두운 쪽으로 이어졌다. 발광 이끼의 빛도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완전한 어둠 속으로 들어서야 할 것 같았다. 그 어둠 속에서, 뭔가가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르릉. 땅이 미세하게 울렸다. 발밑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어떤 것보다도 무거운 존재가, 저 어둠 속 어딘가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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