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엄마가 밥그릇에 밥을 두 번 눌러 담았다. 고봉밥이었다. 밥알이 그릇 테두리를 넘어 살짝 흘러내릴 정도였다.
"더 먹어. 얼마나 굶었니, 이십 년을."
이십 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숫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열여섯에 사라져서 서른여섯이 되어 돌아왔다. 계산은 맞는데 몸이 그 계산을 믿지 못했다. 거울을 봐도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얼굴에 붙어 있지 않았다. 어른이 된 얼굴이긴 한데, 그 사이 스무 번의 겨울을 넘겼다는 실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먹고 있어요."
먹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문제는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식탁 위에는 반찬이 다섯 가지나 올라와 있었다. 계란말이, 멸치볶음, 콩나물무침, 김치, 된장국. 평범한 아침상이었다. 이십 년 전에도 이런 식탁이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더 선명했다. 계란말이의 노란빛, 콩나물의 아삭한 소리, 된장국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 이런 걸 느껴본 게 얼마 만인지.
아빠는 신문을 펼쳐놓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종이 신문이라니. 이십 년 전에도 있던 물건이 그대로 있다는 게 오히려 신기했다. 스마트폰은 손바닥만 한 게 손목시계보다 얇아졌는데, 정작 아빠 머리 위는 그대로였다. 아니, 정확히는 더 넓어졌다.
"신기하지. 폰은 접혔다 펴지는데, 이건 안 자라." 아빠가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닌데 웃으니까 나도 따라 웃었다. 괜찮다. 이런 대화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참, 너 그 세계에서는 뭐 먹고 살았니?" 아빠가 신문을 접으며 물었다. "설마 안 먹고 산 건 아니지?"
"먹었어요. 그냥…… 여기랑 좀 달랐어요."
"어떻게 다른데?"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거기서는 배를 채우는 게 밥이 아니라 몬스터의 살과 피였다고, 그 안에 든 마력이라는 걸 흡수해야 몸이 돌아갔다고 말하면 아빠는 신문을 떨어뜨릴 거다. 나는 대충 웃으며 넘겼다.
"그냥 좀…… 특이한 음식이 많았어요."
"특이한 음식이라."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더 캐묻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문제는 밥그릇을 다 비우고도 배가 고프다는 거였다.
정확히는 배가 고픈 게 아니었다. 위장은 가득 찼는데, 뭔가 다른 부분이 텅 비어 있었다. 몸 안쪽 어딘가, 이름을 붙이기 애매한 자리가 계속 허기를 신호로 보냈다. 마치 배터리가 방전되어 가는 기계의 경고음 같았다.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나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눌렀다.
엄마가 국그릇을 내밀었다. "된장국 더 줄까?"
"괜찮아요."
안 괜찮았다. 하지만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엄마, 저는 밥이 아니라 마력이 부족한 거예요, 라고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이 갔다. 아마 정신과부터 예약할 거다. 아니면 굿을 알아볼지도 모른다. 우리 동네에 아직 무당집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십 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다른 세계에서 보냈다. 처음 몇 년은 살아남는 데만 썼고, 남은 시간은 그 세계의 법칙에 적응하는 데 썼다. 그곳에서는 배고픔이라는 게 지구와 다르게 작동했다. 몸을 움직이는 연료가 칼로리가 아니라 마력이었다. 몬스터의 살과 피에는 그게 농축되어 있었고, 그걸 먹어야 몸이 돌아갔다. 처음엔 그 사실을 몰라서 며칠을 굶다가 쓰러진 적도 있었다. 그때 죽는 줄 알았다. 지구에서라면 굶어도 며칠은 버티는데, 그쪽 세계는 마력이 바닥나면 시야가 먼저 흐려지고, 그다음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안 남았다.
돌아왔더니 이 몸이 그대로였다. 지구 음식은 위를 채워도 그 다른 부분을 채우지 못했다. 계란말이 열 개를 먹어도, 삼겹살 세 근을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저녁에 그걸 실험해봤다가 화장실에서 한 시간을 앓았다. 배는 빵빵한데 몸은 갈증에 시달렸다. 물을 마셔도 해결이 안 되는 갈증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밥그릇을 들어 마지막 한 술을 뜨는데, 손에 힘이 잘못 들어갔다.
딱.
밥그릇 테두리에 실금이 갔다. 나는 얼른 그릇을 내려놓고 손등으로 슬쩍 가렸다. 심장이 한 번 덜컹했다. 겨우 밥그릇 하나에 실금을 냈다는 게 별일 아닌 것 같으면서도, 그게 별일이라는 걸 나만 알고 있었다.
"그릇이 좀 낡았나 보다. 새로 사야겠네." 엄마가 그릇을 가져가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다행이다. 도자기 그릇에 실금을 낼 정도로 힘이 세다는 걸 설명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 몸은 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인간 기준으로는 여전히 과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게 정상인지 아닌지,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거실 쪽을 봤다. 텔레비전이 아침 뉴스를 틀고 있었다. 앵커가 사무적인 톤으로 뭔가를 읽고 있었다.
"경기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미확인 균열에 대해 정부는 오늘 오전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해당 지역은 사흘 전 지반 이상 신고 이후 확인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이를 신종 던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숟가락을 쥔 손이 멈췄다.
던전.
그 단어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데 몸속 그 텅 빈 자리가 반응했다. 배 속 깊은 곳에서 뭔가 움찔거리는 느낌. 마력 갈증이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벌떡 일어섰다. 온몸의 감각이 그쪽으로 확 쏠리는 게 느껴졌다. 마치 이십 년 동안 훈련된 반응 하나가 몸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다가, 신호를 받자마자 발동한 것 같았다.
"저기 뭐래?" 아빠가 신문을 내리며 텔레비전 쪽을 봤다.
"던전이 발견됐대요." 나는 최대한 무심하게 대답했다.
"던전이 뭔데?"
좋은 질문이다. 부모님은 아직 던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다. 이 세계에 균열이 열린 지 이제 겨우 며칠, 관련 뉴스가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구는 아직 이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익숙했다. 이십 년 동안 그 안에서 살았으니까.
"몬스터가 나오는 공간이에요. 저쪽 세계에서는 흔했어요."
엄마가 국자를 든 채 멈췄다. "몬스터? 진짜로?"
"네."
"영화에서 보는 그런 거야? 이빨 크고 침 흘리는?"
"비슷해요. 종류가 많아요."
"위험한 거 아니야?"
"위험하죠."
엄마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아들이 이세계에서 이십 년을 살다 왔다는 사실을 이렇게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몬스터 얘기까지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우리 집은 확실히 좀 이상한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정상적인 반응은 아닐 것이다. 보통 부모라면 아들이 사라졌던 이십 년의 이야기를 듣고 몇 날 며칠을 울어야 정상인데, 우리 부모님은 사흘째 밥상 앞에서 담담하게 몬스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마 처음 며칠 몰아서 울고 나서, 이제는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았다.
뉴스 화면이 바뀌었다. 드론이 찍은 항공 영상이었다. 흙더미 사이로 검은 균열 하나가 벌어져 있었다. 크기는 대략 폭 십 미터, 깊이는 화면으로는 짐작이 안 갔다. 주변에는 폴리스라인과 군용 텐트, 그리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도 보였는데, 저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방사능이나 화학물질이라면 몰라도, 던전에서 나오는 것들은 방호복으로 막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화면 아래 자막이 떴다. "정부, 민간인 접근 통제 및 국제 조사단 파견 검토 중."
앵커가 이어서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균열 내부에서 생명체 반응이 감지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어……"
국제 조사단이라는 말에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 나라는 자기 땅에 뭐가 있는지도 남한테 검증받아야 한다. 이십 년 전에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은 그림이었다. 조사단이 오는 동안 저 안에서 뭐가 자라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걸 안다. 저 캄캄한 균열 안쪽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가 숨을 쉬고 있을 거라는 걸.
아빠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중얼거렸다. "요즘 세상 참 무섭다. 예전엔 뉴스에 이런 거 안 나왔는데."
"이제 시작이에요." 나는 말했다.
"뭐가 시작인데?"
"이런 게 계속 나올 거예요. 여기저기서."
아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확신에 가득 찬 그 눈빛에 뭔가를 읽으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건 예측이 아니라 겪어본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엄마가 물었다.
"방에 좀."
"밥 다 안 먹었잖아."
"배불러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등을 문에 대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허기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처음엔 배 속 어딘가가 시린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손끝까지 떨림이 번졌다. 손바닥을 펴서 보니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미세하게 저렸다. 이십 년 동안 이런 신호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지겹도록 배웠다. 이 신호를 무시했다가 정말로 쓰러진 적이 두 번, 죽음 근처까지 갔던 적이 한 번 있었다. 지구에 온 지 사흘째, 이 몸은 이제 정말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평범한 동네 풍경이었다. 아파트, 놀이터, 마트 배달 오토바이. 아이들 몇 명이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소리가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이십 년 동안 그리워했던 풍경인데, 지금은 그 안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몬스터의 울음소리도 없고, 피 냄새도 없고, 발밑이 무너질 위험도 없는 이 평화로운 풍경이, 어째서인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뉴스에서 본 균열의 좌표를 다시 떠올렸다. 경기 남부. 집에서 차로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화면 속 균열의 크기, 주변 지형, 파견된 인력의 규모까지 머릿속에 하나씩 다시 그려봤다. 이십 년 동안 이런 정보를 읽고 판단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어느 던전이 위험한지, 어느 정도 등급인지,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를 가늠하는 감각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 감각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게, 반갑기보다는 서글펐다.
괜찮다. 아직은 참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손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진폭이 커졌다. 나는 손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댔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이 상태로 하루, 이틀만 더 지나면 어떻게 될지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창밖 어딘가, 경기 남부 방향으로 시선이 자꾸 향했다.
몸 안의 텅 빈 자리가 그쪽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우성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