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그날 밤, 나는 방에서 지도를 켰다. 정확히는 뉴스에서 나온 위치 정보와 인공위성 지도를 겹쳐봤다. 좌표는 어느 야산 자락, 폐쇄된 채석장 근처였다.
화면을 확대해봤다. 위성 사진 속 채석장은 오래전에 버려진 듯 잡초가 무성했고, 그 옆으로 이어진 산길은 지도상에서도 흐릿하게만 표시돼 있었다. 등산객도 잘 안 다니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쁘지 않다.
정부는 반경 이 킬로미터를 통제 구역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군경 합동 초소, 상시 순찰, 그리고 감시 드론. 뉴스 화면에 잡힌 드론만 세 대가 넘었다. 앵커는 심각한 얼굴로 "미확인 지질 현상"이라는 표현을 썼고, 자막에는 "출입 통제 및 접근 금지"라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떠 있었다.
괜찮다. 드론쯦 문제 될 게 없다.
라고 쓰려다 지웠다. 오탈자였다. 드론쯤.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도 좀 위험한 자신감이었지만, 근거는 있었다. 저 세계에서 이십 년을 살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감지 능력을 가진 자보다 감지당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자가 더 오래 산다는 거였다. 화려한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먼저 죽는 걸 몇 번이나 봤다. 다들 자기가 강하다고 믿었고, 강한 놈들은 항상 먼저 눈에 띄었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손바닥을 펴서 눈을 감았다. 몸속에서 뭔가를 끌어올리는 감각. 마력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아직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있었다.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피가 도는 걸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비슷했다.
손끝에서 공기가 살짝 접히는 느낌이 들었다.
공간을 다루는 스킬. 저쪽 세계에서는 '접선(接線)'이라고 불렀다. 시야가 닿는 거리 안에서, 짧게, 순간적으로 위치를 옮기는 기술이었다. 텔레포트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그냥 한 발자국을 아주 빠르게, 눈에 안 보이게 내딛는 것에 가까웠다. 저쪽에서는 이걸로 화살을 피하고, 검을 흘리고, 가끔은 그냥 술자리에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흔한 스킬이었다. 흔했다는 게 중요했다. 눈에 띄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문제는 이걸 지구에서 쓴 적이 아직 없다는 거였다.
세계가 다르면 마력의 밀도도 다르다고 배웠다. 저쪽에서는 공기 자체에 마력이 녹아 있어서 숨만 쉬어도 조금씩 채워졌다. 여기는 아니었다. 여기서 마력을 채우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고, 그 방법이 바로 지금 내 배 속을 텅 비게 만드는 원흉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자연스럽게 허기가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시했다.
나는 방 안에서 시험해봤다. 침대 끝에서 책상 앞까지, 약 두 걸음 거리. 손끝에 감각을 모으고, 그 자리를 지웠다.
픽.
짧은 파열음 같은 소리와 동시에 나는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성공이었다. 다행이다. 이 세계에서도 통한다.
다만 부작용이 있었다. 허기가 즉시 두 배로 뛰었다. 배 속 그 텅 빈 자리가 갑자기 훨씬 커진 느낌. 나는 책상을 짚고 잠깐 숨을 몰아쉬었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이 정도 거리에 이 정도 반응이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쓸 수 있을지 계산이 안 됐다.
스킬을 쓸수록 마력을 더 많이 태운다. 당연한 이치인데, 몸으로 확인하니 새삼 절실했다. 저쪽 세계에서는 마력이 다 떨어지면 그냥 주저앉아 쉬면 됐다. 여기서는 주저앉으면 배가 고파서 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다른 종류의 위험이었다.
몇 번 더 연습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지금 이 방에서 마력을 더 태워봤자 좋을 게 없었다. 내일 밤 쓸 걸 오늘 밤에 다 써버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다음 날 밤, 나는 부모님이 잠든 걸 확인하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후드티에 검은 바지, 운동화. 특별할 게 없는 차림이었다. 특별한 건 그 안에 든 사람이었다.
현관문을 닫을 때 손끝에 힘을 뺐다. 소리가 나면 안 됐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도 최대한 죽였다. 이런 것까지 스킬로 해결할 수는 없으니 순전히 기본기로 버텼다. 이십 년 동안 배운 게 스킬만은 아니었다.
버스 두 번, 택시 한 번을 갈아타고 통제구역 외곽 도로까지 갔다. 택시 기사는 이 시간에 왜 그쪽으로 가느냐고 물었고, 나는 친구 집에 가는 거라고 대충 대답했다. 기사는 더 캐묻지 않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정이야 뭐, 하는 표정이었다. 다행이다. 저쪽도 뉴스를 안 챙겨봤나보다.
거기서부터는 걸었다. 산길로 들어서자 가로등이 사라졌고, 대신 멀리서 순찰차 사이렌이 간간이 들려왔다. 발밑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때마다 나는 숨을 멈추고 몇 초씩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시 걸었다.
나는 나무 사이에 몸을 붙이고 상황을 살폈다. 통제선 안쪽으로 초소 두 개, 그 사이를 오가는 드론 한 대가 보였다. 드론은 규칙적인 궤도로 하늘을 훑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초소 앞에는 야전등이 켜져 있었고, 그 주변으로 근무자들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둘, 셋. 소총을 든 것처럼 보였다. 실제 몬스터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저런 걸로 뭘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감지 스킬을 켰다. 이건 접선보다 소모가 적었다. 눈을 감으면 주변의 '기척'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사람 셋, 드론 하나, 그리고 저 아래 산등성이 너머에서 느껴지는 다른 무언가.
그 다른 무언가가 문제였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저쪽 세계에서 몬스터 무리가 뭉쳐 있을 때 나던 느낌과 똑같았다. 끈적하고, 낮게 깔리고, 살아있는 것 특유의 온기와는 다른 온기.
던전 안쪽에 뭔가 있다는 뜻이다.
좋다. 정확히 원하던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던전에 들어가는 건 삽질이다. 뭐라도 있어야 배를 채울 수 있으니까.
나는 초소의 순찰 간격을 셋까지 셌다. 하나, 둘, 셋. 근무자 둘이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짧은 틈을 노렸다. 라이터 불빛이 어둠 속에서 작게 튀는 게 보였다. 저 담배 한 대가 이 사람들 목숨을 구하는 셈일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 있는 걸 몰라야 오늘 밤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픽.
나는 통제선 안쪽에 서 있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걸리지 않았다. 그다음, 다시 접선. 드론의 사각지대를 골라, 야산 아래 균열의 입구까지 세 번을 더 옮겨갔다. 옮길 때마다 배 속이 조금씩 더 크게 울렸다. 참을 만했다. 아직은.
입구 앞에 섰다. 뉴스 화면보다 훨씬 컸다. 검은 균열은 마치 땅이 입을 벌린 것 같았다. 가장자리에는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고 있었는데, 그 빛이 파랗다기보다는 자주색에 가까웠다.
익숙한 색이었다. 그 세계의 하늘도 저런 색이었다.
이십 년 동안 매일 올려다본 색이다. 지구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반가움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그냥 낯이 익다는 정도로 해두자.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순간 배 속 텅 빈 자리가 요동쳤다. 마치 오래 굶은 개가 고기 냄새를 맡은 것처럼.
괜찮다. 이제 곧 채울 수 있다.
나는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초소의 불빛이 저 멀리 깜빡이고 있었다. 아직은 아무도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드론은 여전히 자기 궤도를 착실하게 돌고 있었고, 근무자들은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지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국가 예산으로 산 드론보다 사람 눈이 더 정확할 때가 있는데, 이 나라 정부는 아직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입구로 발을 내디뎠다.
지면이 사라지고, 대신 아래로 이어지는 경사가 나타났다. 흙벽에는 은은한 발광 이끼가 붙어 있어서 앞이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공기는 서늘했고, 습기와 함께 뭔가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발밑은 미끄러웠다.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질 정도였다. 나는 벽을 짚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걸음을 옮길수록 그 냄새가 짙어졌다. 처음엔 흙냄새인가 했는데, 조금씩 다른 게 섞여 들어왔다. 비리고, 축축하고, 살짝 썩은 것 같은. 저쪽 세계 초입 던전에서 자주 나던 냄새였다. 몬스터 서식지 특유의 체취라고, 어느 헌터 선배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그 던전에서 못 나왔다. 냄새를 알아본 대가로 목숨을 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감지 스킬로 잡힌 그 기척이, 이제 냄새로도 확인됐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벽에 등을 붙였다. 통로 저 안쪽, 좁은 공터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낮은 목소리들이 들렸다. 사람의 언어는 아니었다. 걸걸하고 짧게 끊어지는, 짐승에 가까운 소리.
끄륵. 끄르륵.
숨소리를 최대한 낮췄다. 심장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벽에 붙인 등에 서늘한 냉기가 스며들었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몸속 허기가 완전히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