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탄약 계산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채로 통로를 빠져나오는데, 무성이 슬쩍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관리소 뒤편에 소규모 탐험자용 조달 창구가 따로 있습니다. 정식 상점보다 탄약값이 조금 쌉니다."
그 정보 하나가 그날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처럼 느껴졌다. 정식 상점 가격표를 보고 절망한 게 불과 십 분 전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희망이 다시 차오르는 게 스스로도 웃겼다. 인간이란 참 간사한 동물이다.
"진짜요? 왜 그런 걸 지금 말해줘요, 진작 말해주지."
"물어보시길 기다렸습니다."
이 남자는 꼭 이런 식이다. 먼저 나서서 챙겨주는 척은 안 하면서, 결국은 필요한 걸 다 알려준다. 나는 속으로 욕을 한 바퀴 돌리면서도 발걸음은 이미 관리소 뒤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창구는 관리소 건물 뒤편, 컨테이너 두 개를 이어붙인 작은 부스였는데,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철문 위에 "탐험자 물자 교환소"라는 손글씨 표지판이 삐뚜름하게 걸려 있었다. 안내문에는 코인을 현금으로도 환전할 수 있고 반대로 현금을 코인으로 충전할 수도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다만 환율이 형편없어서, 3천 원이 겨우 코인 1개였다. 탄약 15발이 10코인, 즉 3만 원이라는 뜻이었다.
창구 안쪽에서 나온 직원이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대뜸 말했다.
"신참이시네."
"어떻게 아세요?"
"표정에 다 쓰여 있어요. 여기 환율 처음 보고 다들 그 얼굴 해요."
나는 대꾸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었다. 계산기를 몇 번 두드려봤다. 몬스터 한 마리 잡을 때마다 코인 몇 개씩 벌어봐야 총알값도 못 건지는 구조였다. 슬라임 한 마리에 5코인, 늑대 한 마리에 5코인. 탄약 한 발 쏘는 데 대략 0.67코인이 날아가는 셈이니, 명중률이 100퍼센트라 해도 밑지는 장사였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상태창을 몇 번이나 다시 열어봤다.
코인 25, 탄약 10발, 통장 잔액 3천 원.
숫자만 보면 완전히 밑빠진 독이었다. 벌어들이는 속도보다 새어나가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고, 이 계산대로라면 나는 곧 총 없이 몬스터 앞에 맨몸으로 서 있어야 할 처지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속엔 절망보다 흥분이 더 컸다.
총으로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 명중률이 남들보다 유난히 좋다는 무성의 말, 그리고 첫 승리의 그 짧고 강렬한 쾌감까지.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의 그 감각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이걸 놓칠 수는 없었다.
씨발, 총알값이 없어서 사기캐를 접어야 한다니. 이런 게 진짜 인과율 억까지.
다음 날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나는 절친 두 놈, 재훈이랑 도영이한테 이 이야기를 슬쩍 흘렸다.
"진짜냐, 총을 산다고?" 재훈이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미친, 그거 완전 사기캐잖아." 도영이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끼어들었다. "근데 왜 표정이 안 좋아?"
"탄약값이 감당이 안 돼서."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코인이 진짜 안 모여."
"얼마나 드는데?"
"탄약 15발에 3만 원."
"헐, 그럼 한 시간에 얼마 써?"
"몰라, 계산하기 싫어."
재훈이가 팔짱을 끼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야, 근데 그 정도면 진짜 대박 스킬 아니냐? 총 쓰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면서."
"드문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요즘 헷갈려."
도영이는 별생각 없이 웃으며 다른 얘기로 넘어갔지만, 그 대화가 다른 반 애들 귀에까지 흘러갔다는 걸 나는 그날 오후에야 알게 됐다. 복도에서 마주친 낯선 얼굴 하나가 나를 유심히 훑어보고 지나갔는데, 처음엔 그냥 신경이 쓰였을 뿐이었다. 눈이 마주쳤다가 어색하게 피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오히려 눈이 마주쳤는데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시선의 무게가 뭘 의미하는지는 아직 몰랐다.
그 후 며칠간 나는 매일 던전 1층을 반복해서 돌았다. 슬라임과 늑대를 상대로 코인을 조금씩 벌었고, 조달 창구에서 탄약을 아껴가며 재구매했다. 첫날은 코인 25에서 시작해 32로, 다음 날은 32에서 41로, 그다음 날은 41에서 55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숫자가 늘어났다.
명중률은 정말로 남들보다 이상하게 좋았다. 조준선을 대충 그은 것 같은데도 탄이 정확히 몸통에 박혔고, 급하게 쏜 두 번째 탄도 이상하리만치 궤적이 흔들리지 않았다. 무성은 그걸 두고 "건스미스 계열 특유의 판정 보정"이라 불렀지만, 정확한 원리는 그도 몰랐다.
"그게 정확히 뭔데요?"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그런 계열이 원래 극소수고, 판정이 좋다는 것만 알려져 있습니다."
시원찮은 대답이었지만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조준선을 정렬하고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어딘가 자연스럽게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마치 몸속에 나보다 더 능숙한 누군가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코인이 쌓여 탄약 30발짜리 상자를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수준이 됐고, 나는 슬슬 더 깊은 층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관리소 게시판에는 2층 통로 클리어 시 지급되는 보상금이 어지간한 알바 한 달치보다 크다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2층 통로 최초 클리어 보상 — 현금 지급 가능, 상세 문의는 관리소 창구로]
목표가 뚜렷해졌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돈을 버는 것. 딱 그거면 됐다. 다른 건 욕심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이상한 일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던전 로비에서 나를 흘깃거리는 시선이 늘었고, 어느 날은 게시판 앞에 서 있는데 낯선 남자 탐험자 하나가 아무 말 없이 내 케이스에 든 글록을 뚫어지게 쳐다본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어깨가 넓고 팔뚝에 문신이 있는, 딱 봐도 이 바닥에서 오래 뛴 사람 같은 인상이었다. 나는 애써 모른 척 지나쳤지만, 등 뒤에서 그 시선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날에는 대기줄에서 앞에 선 여자 두 명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그 총 쓰는 애 맞지?"
"어, 명중률 미쳤다던데."
"직접 봤어?"
"아니 소문으로만."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지만,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었다. 소문이라는 게 이렇게 빨리 퍼진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관리소 로비에 붙은 안내판에 새로운 공고문이 붙었다.
[탐험자 커뮤니티 게시판: 최근 특이 스킬 보유자에 대한 정보 공유 요청이 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문구를 무심히 읽고 지나쳤다. 원래도 이런 공고는 자주 붙었으니까. 그런데 무성의 얼굴이 그날따라 유난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떠올렸다. 평소 같으면 무표정하게 지나칠 사람이 그 공고문 앞에서 멈춰 서서 몇 초간 시선을 떼지 못했다는 것도.
"왜 그래요?"
"아닙니다. 가시죠."
대답은 짧았고, 발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 나는 별생각 없이 뒤따라 걸었다.
누군가 내 스킬의 정체를 캐내려 한다는 걸, 나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