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 세계에서 총잡이 합니다

1화

내 이름은 강하준, 강원도 태백시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이자 밀리터리 오타쿠다. 초등학교 때부터 밀덕 유튜브를 파고 살았고, 방 벽에는 M4A1 분해도와 글록 시리즈 포스터가 나란히 붙어 있었으며, 용돈이 생기면 십중팔구 에어소프트건 부품이나 밀리터리 서바이벌 잡지를 사는 데 썼다. 총기 명칭이면 웬만한 건 구경, 탄종, 발사 방식까지 줄줄 외웠고, 친구들이 아이돌 이름을 외울 시간에 나는 리시버와 볼트캐리어그룹의 구조를 외웠다. 그런 내가 태백에 게이트가 열리고 던전이 생겼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느낀 감정은 순수한 흥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검사가 되어 검을 휘두르는 삶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총을 쏘고 싶었다. 진짜, 리얼하게, 총성을 울리면서. 게임 속 반동 이펙트가 아니라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진짜 충격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던전 탐험자 등록증을 받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총을 잡을 수 있는 스킬을 각성하는 것. 문제는 등록비였다. 태백던전 관리소는 신규 탐험자에게 최소 자금 50만 원을 요구했는데, 이게 순수히 등록 절차와 안전보험, 초기 물품 대여에 들어가는 돈이라고 했다. 내 통장에는 정확히 50만 3천 원이 있었다. 이건 3년치 세뱃돈과 알바로 모은 돈, 그리고 어머니가 몰래 찔러준 비상금까지 다 합친 액수였다.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손끝이 떨렸다. 이건 그냥 돈이 아니라 내 열일곱 인생 전부였으니까. 어머니는 처음엔 반대했다. "위험한 거 안 하면 안 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방문을 닫고 상태창 확인법이 나온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하지만 나는 이미 던전이 생긴 순간부터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한 뒤였다. 요즘 세상에 정직하게 벌어서는 답이 없다는 걸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었고, 던전 클리어 보상금이 어지간한 대학 등록금보다 크다는 소문이 태백 시내를 떠돌고 있었다. 편의점 알바로 시급 9860원을 받으며 서른 살까지 살아봤자 서울 원룸 전세도 못 구한다는 계산이 나오자, 나는 미련 없이 통장을 들고 집을 나섰다. 등록소에 도착한 건 오전 9시 정각이었다. 낡은 컨테이너 건물을 개조한 관리소 안은 형광등 두 개가 깜빡거렸고, 벽에는 색이 다 빠진 안전 포스터가 삐뚜름하게 붙어 있었으며, 접수대 뒤에서 무표정한 직원이 서류를 내밀었다. "등록비 50만 원, 환불 불가입니다." 직원의 말투는 은행 창구보다 더 사무적이었다. 나는 통장에서 정확히 50만 원을 인출해 냈고, 남은 3천 원으로는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도 살 수 없었다. 전 재산을 걸었다는 표현이 이보다 더 정확할 수 없었다. 서류를 다 쓰고 나니 직원이 나를 좁은 복도 끝의 철문 쪽으로 안내했다. 복도는 좁고 어두워서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각성실입니다. 들어가서 중앙의 빛에 손을 대세요. 스킬은 무작위 배정이며, 재배정은 불가능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무작위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원래부터 뽑기 운이 거지같은 인간이었으니까. 초등학교 운동회 제비뽑기에서 언제나 꽝을 뽑았고, 편의점 랜덤 뽑기에서 백 번을 뽑아도 최하등급만 나왔으며, 가위바위보는 살면서 이긴 기억이 손에 꼽았다. 중학교 수학여행 조 편성 추첨에서도 나 혼자 담임 선생님과 같은 조가 됐고, 새해 온라인 이벤트 응모에서도 십만 명 중 유일하게 낙첨 문자를 두 번 받은 전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두고 "불운의 상징"이라 불렀는데 그게 그냥 농담이 아니라는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라고, 검이든 마법이든 뭐든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각성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에는 손바닥만 한 빛의 구체가 떠 있었다. 방 안은 이상하게 조용했고, 공기마저 뭔가 팽창한 듯 무겁게 느껴졌다. 심장이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뛰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손을 뻗어 그 빛에 닿았다.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번쩍였다. 시야 전체가 하얀 섬광으로 가득 찼다가, 그 잔상 위로 머릿속에 낯선 문장이 스치듯 지나갔다. [각성 완료] [스킬: 건스미스 Lv.1] 건스미스. 건, 스미스. 총, 대장장이. 그러니까 총을 만드는 스킬이라는 소리였다. 검사도 아니고 마법사도 아니고, 대장장이.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눈앞의 글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혹시 오타인가,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글자는 그대로였다. 이게 뭔 소리야, 씨발. 관리소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결과지를 확인하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입꼬리가 애매하게 비틀린, 웃음도 아니고 걱정도 아닌 그런 표정이었다. "흠, 생산계열이시네요. 요즘은 잘 안 나오는 스킬인데." 그 말투에서 동정심이랄지 위로랄지 애매한 감정이 배어 나오는 걸 느꼈다. 마치 시한부 판정을 에둘러 전달하는 의사 같은 어조였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조졌다. "저기, 이게 전투에는 좀…" 직원이 말을 잇다가 멈추더니 서류철을 뒤적였다. "생산계열 각성자는 던전 진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몬스터랑 싸울 수단이 없으시니까요." 아무렇지 않게 던진 그 한마디가 명치를 정확히 후려쳤다. 50만 원이라는 숫자가 눈앞에서 재로 변하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생산계열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고, 총을 만드는 스킬이 던전에서 몬스터랑 싸우는 데 무슨 쓸모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재료도 없고 공방도 없는데 대체 뭘 어떻게 만든다는 건지, 상태창을 열어봐도 텅 빈 제작 목록만 떠 있을 뿐 아무 설명도 없었다. 창을 몇 번이나 껐다 켰다 해도 상황은 똑같았다. 50만 원을 통째로 날렸다는 자각이 뒤늦게 명치를 후려쳤다. 손가락 끝이 떨렸고, 목구멍이 바싹 말랐다.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가, 편의점 알바로 이 돈을 다시 모으려면 몇 년이 걸릴지 계산하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상태창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눌러보며 뭐라도 건질 게 없나 헤집었다. 제작, 재료, 도감, 그리고 구석에 흐릿하게 떠 있는 탭 하나. 이름도 제대로 안 보이는, 회색으로 반쯤 꺼진 그 버튼. 다른 탭들과 달리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숨겨놓은 것처럼, 다른 항목들 사이에 슬쩍 끼워 넣은 느낌이었다. 왜 이 버튼만 색이 죽어 있는 걸까, 이건 또 무슨 함정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손끝을 가져갔다. 나도 모르게 손끝이 닿는 순간, 화면 전체가 갑자기 다른 색으로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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