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화면이 번쩍인 뒤 눈앞에 떠오른 건 처음 보는 인터페이스였다. 검은 바탕에 초록색 글자로 [조달소]라는 타이틀이 박혀 있었고, 그 아래로 권총 아이콘 하나와 탄약 상자 아이콘이 나란히 떠 있었으며, 옆에는 코인이라는 재화 수량이 표시되어 있었다. 화면 구석에는 [정보], [환전], [퀘스트]라는 작은 탭들이 더 있었는데, 클릭할 때마다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튀어나왔다. 내 코인은 정확히 0이었다.
0. 숫자 0. 이보다 절망적인 숫자가 있을까 싶었다. 통장 잔고도 0에 가까운 마당에 게임 속 재화까지 0이라니, 인과율이 나를 상대로 억까를 시전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화면 하단에 작은 글씨로 [튜토리얼 보상: 코인 30 지급]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떨며 확인 버튼을 눌렀다. 삑, 하는 전자음과 함께 코인이 0에서 30으로 바뀌는 걸 본 순간, 심장이 아주 잠깐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로또 5등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굶어 죽기 직전에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를 주운 기분이었다.
권총 아이콘을 눌러보니 [글록17 - 30코인]이라는 표시가 떴다. 정확히 내가 가진 코인 전부였다. 옆으로 넘겨보니 다른 총들도 있었는데 가격이 죽죽 올라가서 눈이 아플 정도였고, 지금 내 형편으로는 그림의 떡이었다. 여기서 사면 무일푼이 되는 거였지만, 이미 통장도 텅텅 비운 마당에 코인 30개쯤 못 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인생, 총이라도 한 자루 있어야 뭐라도 해볼 거 아닌가. 나는 눈을 감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번쩍, 하는 빛이 손바닥 위로 떨어지더니 그 자리에 정말로 글록17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진짜였다. 플라스틱 프레임의 질감, 슬라이드의 서늘한 금속성, 손에 잡히는 무게감까지, 유튜브로 백 번은 본 그 총이 지금 내 손 안에 있었다. 손끝으로 슬라이드 세레이션을 문질러보니 미세한 홈들이 살갗을 긁는 게 느껴졌고, 총구 쪽으로 코를 가져다 대니 화약 냄새인지 기름 냄새인지 모를 낯선 향이 옅게 배어 있었다.
미친. 미친, 진짜 미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총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방 안 거울 앞에 서서 총을 겨눠보기까지 했는데, 거울 속 내 얼굴이 마치 조상신이 버린 사람처럼 헤벌쭉 웃고 있어서 스스로도 소름이 돋았다. 건스미스가 총을 만드는 스킬이 아니라 총을 소환하는, 아니 정확히는 상점에서 사서 소환하는 스킬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만드는 게 아니라 사는 거라니, 이건 대체 스킬인지 쇼핑몰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탄약이 없었다. 총알 없는 총은 그냥 비싼 몽둥이였다. 탄약 아이콘을 눌러보니 [9mm 탄약 15발 - 10코인]이라 떠 있었는데, 내 코인은 이미 0이었다. 총 하나 사고 알거지가 된 것이다. 아, 씨발, 이게 뭐냐.
나는 상태창을 껐다 켰다 하며 다른 방법이 없나 뒤졌다. 혹시 총을 되팔면 코인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판매 버튼을 눌러봤지만, [판매 시 구매가의 30%만 환급됩니다]라는 경고문이 떠서 손을 뗐다. 그렇게 하면 결국 남는 건 9코인, 탄약 한 발도 못 사는 액수였다. 퀘스트 탭도 눌러봤지만 텅 비어 있었고, 던전 입장 탭은 자물쇠 아이콘과 함께 "조건 미충족"이라는 문구만 떴다. 결국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안내: 코인은 던전 내 몬스터 처치 또는 퀘스트 클리어 시 획득 가능합니다]라는 짤막한 시스템 문구뿐이었다. 총은 있는데 총알이 없는 상황, 이게 바로 내 인생 요약이었다.
그날 밤, 나는 방바닥에 앉아 글록17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몇 시간이나 만지작거렸다. 슬라이드를 당겨보고, 탄창을 빼보고, 그립 감을 확인하며 이 총이 실제로 내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방아쇠를 당겨봤지만 물론 빈 총이라 절그럭거리는 소리만 났고, 그 소리마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옆방에서 부모님이 듣지 않았을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손끝에 남은 금속의 서늘함이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계속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손등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총을 내려놨다가 다시 집어보기도 하면서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억지로 몸에 새겨넣으려 애썼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써먹느냐였다. 던전 탐험자 커뮤니티 게시판을 뒤져봐도 건스미스 스킬에 대한 정보는 단 한 줄도 없었다.
[글쓴이: 검왕지망생] "검사 각성했는데 스킬트리 이렇게 짜면 됨"
[글쓴이: 불꽃마법사42] "마법사 초반 마나 관리 꿀팁"
[글쓴이: 힐러구합니다] "파티에 힐러 있어야 하는 이유"
[글쓴이: 정찰조장] "정찰병 은신 활용법 정리"
검사, 마법사, 힐러, 정찰병 관련 글만 넘쳐났고 나 같은 케이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됐다. 검색창에 "건스미스"를 쳐봤지만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떴다. 나는 인터넷 세상에서마저 소외된 불운의 소유자였다. 백과사전 한 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로 특이한 처지에 놓인 것 같은데, 정작 참고할 자료는 백지 상태였다.
혼자 끌어안고 있기엔 벅찬 비밀이었다. 총을 사고팔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게 진짜라는 사실. 친구 놈들 단톡방을 열었다가 다시 닫기를 세 번쯤 반복했다. 뭐라고 쳐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야 나 게임 스킬로 진짜 총 뽑았다"라고 쓰면 다들 미친놈이라고 할 게 뻔했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넘기기엔 이 흥분과 불안 사이에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결국 메시지 창을 닫고 총을 다시 이불 속에 숨겼다.
방문 밖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준아, 밥 먹어라."
나는 글록17을 이불 속에 급히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네, 갈게요!"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는 걸 나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방문을 열기 전, 이불이 조금이라도 부풀어 보이는 건 아닌지 세 번이나 확인했다. 총 한 자루가 이불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밥상 앞에 앉으니 된장국 냄새가 코를 찔렀고, 평소라면 반가웠을 그 냄새가 오늘은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숟가락을 뜨는 내내 머릿속엔 오직 그 총 생각뿐이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오늘 등록하고 왔다며. 뭐 나왔어?"
나는 순간 숟가락을 멈췄다. 국그릇 표면에 어린 내 얼굴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비밀을 지금 여기서 터뜨려야 할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