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이 세계에서 총잡이 합니다

3화

"뭐 나왔어?"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숟가락을 든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밥그릇 위로 물음표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밥알을 세는 사람처럼 그릇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결국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오늘 밤이 아니면 내일 아침, 언젠가는 들킬 일이었다. "엄마, 이상한 거 나왔는데... 그냥 보여드릴게요." 방으로 뛰어가는 동안 머릿속에서 온갖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가 놀라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하면 어떡하지. 아니, 애초에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정상인처럼 보일 수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 글록17을 꺼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거실로 돌아와 총을 식탁 위, 어머니 눈앞에 내려놓은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머니의 안면 근육이 그대로 굳었다. 눈이 커지고, 손에 든 수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식탁 위 정적을 갈랐다. 쨍그랑, 하는 그 소리가 마치 경보음처럼 크게 울렸다. "그거... 진짜 총이야?"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평소 씩씩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처음 듣는, 낯선 떨림이었다. "진짜예요. 만져보세요." 나는 탄창을 빼둔 상태로 총을 건넸다. 슬라이드를 당겨서 약실도 비어 있다는 걸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총을 받아 들지도 못하고 두 손을 허공에 든 채 뒷걸음질만 쳤다. 마치 그 물건이 살아 움직여서 자기를 물기라도 할까 봐 겁내는 사람처럼. "이런 걸 학생이 왜 가지고 있어. 위험한 거잖아." "제 스킬이에요. 건스미스라고, 총을 살 수 있는 스킬이래요." 설명을 하는 내 목소리도 여전히 어딘가 얼떨떨했다. 나조차도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확신이 없었으니까. 던전이라니. 각성이라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단어들은 뉴스 속보에서나 보던,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는, 정확히는 우리 집 식탁 위에는 검은 강철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손끝으로 슬라이드를 살짝 눌러본 뒤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진짜라는 확신을 얻었다. 상태창도, 던전도, 총도, 전부 진짜였다. 장난이 아니었다. 착각도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총을 소환하는 능력을 가진 던전 탐험자가 된 것이다.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할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냥 그 사실 자체가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어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총을 바라보다가 결국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로 뭘 하려는 거야." "살아야죠. 돈도 벌고요."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속으로는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하지만 지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는 절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말했다. "조심해. 제발, 다치지 말고." 그게 허락인지 포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반대는 아니었다. 나는 그 한숨 속에 담긴 수백 가지 걱정을 다 헤아릴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총을 다시 이불 속에 넣어두고,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태백던전 관리소로 향했다. 정식 탐험자 등록을 마치기 위한 안전교육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풍경들, 편의점, 학원 건물, 늘 지나다니던 사거리.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이 거리가 오늘은 낯설게 느껴졌다. 나만 다른 세계로 넘어가버린 기분이었다. 관리소 접수대 앞에 서 있던 직원의 명찰에는 "무성"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표정이라곤 하나도 없이 담담하게 나를 맞이했다. 저 사람은 하루에 몇 명이나 이런 얼떨떨한 얼굴들을 상대하는 걸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건스미스 스킬 등록자시군요." 무성이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손동작이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드문 케이스라 저도 자료가 별로 없습니다만, 초보자 스타터셋 지급은 동일하게 진행됩니다." 그가 내민 작은 상자 안에는 글록17과 9mm 탄약 15발, 그리고 안전 매뉴얼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는 순간, 어제 이불 속에서 소환했던 것과 똑같은 모델이 또 하나 놓여 있는 걸 보고 나는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미 하나 소환해봤는데요." 내가 조심스레 말하자 무성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대답했다. "조달소 시스템을 벌써 발견하셨습니까. 보통 신규 탐험자들은 각성 직후 상태창 조작법도 잘 몰라서 며칠씩 헤매던데, 빠르시네요." 그 말에 은근한 감탄이 섞여 있었는데, 나는 그게 칭찬인지 그냥 사실 서술인지 헷갈렸다. 무성의 얼굴은 여전히 종이 인형처럼 무표정했으니까. 안전교육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무성은 벽에 붙은 커다란 도표를 가리키며 몬스터 등급표를 설명했다. 초심자용 던전 구역인 1층 통로에서는 슬라임형 몬스터와 하급 늑대형 몬스터만 나온다고 했다. 코인은 몬스터를 처치하거나 퀘스트를 완료하면 자동으로 축적된다고 했다. 그리고 위험 시 즉시 후퇴하라는 경고가 세 번, 네 번, 다섯 번 반복됐다. 마치 그 문장 하나를 외우게 하려는 사람처럼. "슬라임은 그냥 젤리 덩어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리 저항이 약간 있지만 총알 몇 방이면 처치 가능합니다." 무성이 슬라임 사진을 짚으며 말했다. 사진 속 슬라임은 정말로 마트에서 파는 젤리처럼 반투명하고 흐물흐물했다. 저게 몬스터라니, 뭔가 김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늑대형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무리 지어 움직이고, 속도가 빠릅니다." 이번엔 표정이 살짝 진지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볼펜을 쥔 손이 아직도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질문 있으시면 하세요." 무성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 물었다. "탄약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살짝 흔들렸다. 아주 잠깐, 눈썹 끝이 미묘하게 올라갔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건...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건스미스 계열 탐험자 자체가 워낙 드물어서요." 이 대답이 나중에 얼마나 무섭게 다가올지, 그때는 짐작조차 못 했다. 그저 흔한 답변 회피처럼 느껴졌을 뿐, 그 안에 도사린 공포를 알아챌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교육이 끝나고 나오는 길, 로비 게시판 앞에 삼삼오오 모인 다른 초보 탐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검을 멘 남자애, 스태프를 든 여자애, 방패를 짊어진 덩치 큰 놈까지, 다들 자기 스킬을 자랑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 이번에 검사 계열 떴는데, 진짜 개사기래. 초반부터 스킬 두 개 뜨는 게 흔한 케이스가 아니라던데." 검을 멘 남자애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말투에 은근한 자부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난 마법사 계열인데, 화염구 하나 배웠어. 이거 나중에 광역기로 진화한다더라." 스태프를 든 여자애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그중 하나가 내 허리에 매달린 권총 케이스를 흘깃 보더니 옆 사람과 낮게 속닥거렸다.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거 총이야? 진짜 총?" "몰라, 근데 좀 신기한 스킬인가 봐." "아니 근데 왜 저렇게 촌스럽게 생겼어, 무슨 영화 소품 같은데." 킥킥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관리소 밖으로 걸어 나왔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상관없었다. 아무리 우습게 봐도, 내 허리에는 진짜 총이 걸려 있었다. 정문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오늘 오후, 나는 처음으로 태백던전 1층에 발을 들여놓을 예정이었다. 슬라임이 나온다는 그 젤리 같은 몬스터를, 상상 속에서만 그려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 첫 발걸음이, 앞으로 내가 겪게 될 온갖 재난의 서막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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