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사장님, 무기는 제가 봅니다

4화

가게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린 게 오후 세 시쯤이었다. 바깥은 늦가을답게 스산했고, 가게 안은 낡은 온풍기 소리만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뚫고 들어온 남자는 케이스 하나를 옆구리에 낀 채 카운터로 곧장 걸어왔다.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걸음에 여유가 넘쳤다. 저런 걸음걸이는 자기 구역에서만 나온다. 자기가 위험한 존재라는 걸 스스로 알고, 그걸 굳이 감추지 않는 사람들 특유의 태였다. "천단창이라 카는 물건 아는교?" 남자가 케이스를 카운터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케이스는 검은색 하드케이스였는데, 모서리 마감이 시중에서 파는 저가형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부 조달 물품에 흔히 쓰이는 방식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케이스 잠금을 풀어봐도 되겠느냐고 눈으로 물었고, 그는 턱짓으로 허락했다. 케이스가 열리는 순간, 나는 숨이 막혔다. 창날은 검은빛을 띤 금속으로, 표면에는 미세한 결정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게이트 사태 이후 등장한 신소재, 해물의 갑각을 정제해서 벼려낸 것이었다. 해물 갑각 정제는 아무 데서나 되는 일이 아니다. 원료 확보 자체가 정부 통제 대상이었고, 정제 과정에서 폐기율이 구십 퍼센트를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나머지 십 퍼센트를 벼려서 이 정도 크기의 창날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하면, 어지간한 중견 리사이클숍 한 달 매출을 훌쩍 넘긴다. 자루는 대나무가 아니라 탄소섬유를 겹겹이 감은 형태였고, 손잡이 끝에는 소유주의 것으로 보이는 각인이 있었다. 각인은 알파벳과 숫자가 섞인 코드였다. 나는 그 코드 체계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육 개월 전, 정부에서 시범 제작해 특수 대응인력에게만 지급했던 시제품, '천단창'이었다. 시장에 절대 나올 수 없는 물건이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이걸 만든 곳도, 유통 경로도 나는 알고 있었다.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 다섯 자루만 만들었고, 그중 세 자루는 지금 실전 배치되어 있으며, 나머지 두 자루의 행방은 공식적으로 '분실'로 처리되어 있었다. 분실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완곡어법이었다. 도난이거나, 뒷거래거나, 아니면 배치된 인력이 통째로 실종된 경우거나. 이 창은 그 분실된 두 자루 중 하나였다. 가게 안이 조용했다. 온풍기 소리와, 남자의 숨소리, 그리고 내 심장이 뛰는 소리만 있었다. "이거… 어디서 구하셨어요?" 나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남자는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건 몰라도 되고. 값이나 매겨봐라. 니 눈은 진짜라고 소문 들었다." 소문. 내 눈에 대한 소문이 벌써 났다는 게 이상했지만, 나는 그걸 캐물을 정신이 없었다. 리사이클숍에서 반년째 감정 일을 해왔지만, 이 정도 물건을 손에 쥐어본 건 처음이었다. 보통은 낡은 검, 흠집 난 방패, 반쯤 부서진 총기 부품들이었다. 진짜, 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다가온 적도 없었다. 창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무게 배분과 균형점, 그리고 날의 정제도까지 순식간에 계산했다. 자루 길이 대비 무게 중심이 손잡이에서 삼십 센티미터 앞에 있었고, 날의 결정 밀도는 육안으로도 구분될 만큼 균일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시가로는 없는 물건이라 매길 수가 없어요. 다만 실전에서의 값어치라면… 지금 웬만한 해물 대응팀 한 개조 인건비보다 높을 겁니다."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사람 하나 잘 봤네." 그는 이름을 곽태원이라 소개했다. 화신상사 소속이라 했고,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화신상사는 리사이클숍 업계에서 소문으로만 떠도는 이름이었다. 정부 인증 없이 고급 무기를 유통하는 조직이라는 이야기, 그 조직에 손을 댄 사람들 중 몇몇이 조용히 사라졌다는 이야기. 나는 예전에 옆 골목 무기상 사장한테 그 이름을 딱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장은 목소리를 낮추며, 화신상사 쪽 사람이 근처에 오면 셔터를 내리라고 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장은 가게를 정리하고 이 동네를 떠났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우연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 상사에 니 같은 눈 가진 애가 필요하다. 월급? 여기서 받는 거 세 배는 쳐주지." 곽태원이 명함 대신 접힌 지폐 몇 장을 카운터 위에 슬쩍 밀어놓았다. 오만 원짜리 세 장이었다. 지폐 뭉치가 카운터에 닿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이건 그냥 인사비다. 생각해봐라, 도윤아." 내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이 사람은 나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하고 온 게 분명했다. 내 이름, 내가 이 가게에서 일하는 시간대, 아마 내 하루 동선까지도. 이런 조직이 개인 하나를 조사하는 데 드는 품을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값어치로 매겨졌는지 짐작이 갔다. 그 값어치가 좋은 의미일 리 없었다. "저는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요." 나는 지폐를 다시 그의 앞으로 밀었다. 목구멍이 조여드는 느낌이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는 니가 정하는 게 아이지." 곽태원의 웃음이 살짝 굳었다. 그 순간 나는 그가 회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한다는 걸 알았다. 협박이라는 이름의 다음 수였다. "이 바닥이 니가 아는 거보다 훨씬 크다." 그는 손가락으로 카운터를 두 번 두드렸다. 마치 뭔가를 셈하는 사람의 습관 같았다. "니 아버지 병원비, 동생 학원비, 그거 계속 감당할 수 있겠나?" 그 말이 정확히 어디를 찌르는지, 그도 나도 알고 있었다. 그가 내 사정까지 캐고 왔다는 사실에 온몸이 저릿하게 굳었다. 아버지 병원비는 매달 고정으로 나가는 금액이 있었고, 동생 학원비는 성적에 따라 오르내렸지만 평균적으로 계산하면 두 항목을 합쳐 내 월급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그 숫자를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이 남자는 그걸 알고 나를 흔들려는 거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답을 하면 그 숫자를 인정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그때 가게 뒷문에서 한상철 점장이 걸어 나왔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얼굴에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곽 사장, 여 우리 애 데려갈 생각이면 곱게 나가라." 곽태원이 점장을 돌아보며 픽 웃었다. "한 사장님, 오랜만이네. 아직도 이 조그만 가게에 안 만족하고?" "만족하고 안 하고는 니가 상관할 일 아이고." 점장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여태 점장이 이런 목소리로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점장이 카운터 아래에서 뭔가를 꺼냈다. 낡은 산탄엽총이었다. 총구를 곽태원에게 겨누지는 않았지만, 카운터 위에 툭 내려놓는 그 손짓만으로도 충분한 경고였다. 총 손잡이 부분의 나무 결이 오랜 세월 손에 쥐어진 흔적으로 반들반들했다. 이 총이 카운터 아래에 있었다는 걸, 나는 이 가게에서 몇 년을 일하면서도 몰랐다. "우리 애는 니 상사에 안 넘긴다. 그리고 그 창, 여기서 파는 거 아이면 가지고 나가라." 곽태원은 한동안 점장을 쳐다보다가, 결국 케이스를 다시 닫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케이스가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딸깍, 하고 크게 들렸다. "알았다, 알았어. 오늘은 그냥 인사만 하러 왔다 치자. 도윤아, 명함은 두고 간다." 그는 지폐 대신 명함 한 장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가게를 나갔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가게 안에는 곽태원이 남기고 간 냄새, 담배와 가죽이 섞인 냄새만 잠시 떠돌다가 사라졌다. 점장이 총을 다시 카운터 아래로 집어넣으며 나를 돌아봤다. "도윤아, 저런 인간이랑은 상 안 마주 앉는다. 알제?" "네, 압니다." 하지만 나는 명함을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점장이 못 본 것 같았다. 명함에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인쇄되어 있었고, 회사 로고는 없었다. 그 무명성이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왔다. "니, 요새 뭔 생각 하는지 다 안다." 점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쿠아리움 갔다 온 다음부터 눈빛이 바뀌었어. 무기 시장에 발 담글 생각 하지 마라. 그건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 위험한 물이다." 아쿠아리움.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점장이 어떻게 거기까지 알고 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이 가게 안에서 점장이 모르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여러 번 확인한 적이 있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왜 여기서 창 감정 일은 시키셨어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점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도 옛날에 그 물에 발 담근 적 있다. 그래서 안다, 그 물이 사람을 어떻게 삼키는지." 그 말 속에 담긴 무게가 손끝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점장에게도 나처럼, 지금은 묻지 않은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과거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방금 본 산탄엽총과, 곽태원의 이름을 듣자마자 굳어지던 점장의 얼굴이, 그 과거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주머니 속 명함이 손끝에 닿았다. 종이 한 장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가게 밖에서 종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이번엔 손님이 아니라, 바람이 문을 흔들고 지나간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저 명함을 버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주머니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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