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문자에 답이 없다는 게 별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삼십 분째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었다.
동생은 원래 답장이 느린 애가 아니었다. 견학 간다고 아침에 나설 때도 "형, 아쿠아리움 기념품 뭐 사다 줄까" 하면서 셀카를 찍어 보내던 애였다. 그런 애가 삼십 분을 묵묵부답이면, 나는 그게 얼마짜리 침묵인지부터 재는 버릇이 있었다. 손님이 물건을 들고 와서 값을 흥정할 때, 대답이 늦어질수록 그 물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대답이 늦어질수록 뭔가 잘못됐다는 뜻이었다.
점장이 잠깐 화장실 다녀오라며 카운터를 맡겼을 때, 나는 몰래 뉴스 앱을 켰다. 손끝이 화면 위에서 미끄러졌다. 실시간 속보 창에 뜬 첫 줄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속보] 서울 아쿠아리움, 정체불명 게이트 발생… 시민 대피 중
손이 떨렸다. 화면 속 글자가 흔들려서 두 번을 다시 읽어야 했다. 나는 점장이 화장실에서 나오기도 전에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가게를 뛰어나갔다.
"도윤아, 어디 가노!"
등 뒤로 점장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마포에서 아쿠아리움까지, 지하철로 삼십 분. 그 삼십 분이 그날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표정이 이상했다. 다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웅성거렸고, 몇몇은 서울시 재난안전문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금일 15시경 서울 아쿠아리움 인근 게이트 발생, 4등급 이상 해물 확인, 인근 주민께서는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4등급. 나는 그 숫자가 무슨 뜻인지 이 열차 안에서 나 혼자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게이트 등급표는 일반인에게는 그냥 재난 문자에 박힌 숫자일 뿐이지만, 나는 예전에 감정 일을 하면서 그 등급표를 몇 번이나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1등급은 인명피해 없음, 2등급은 경상자 발생 가능, 3등급은 중상자 발생 확률 삼십 퍼센트 이상, 그리고 4등급부터는 사망자가 나올 확률이 절반을 넘는다는 뜻이었다. 절반.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산다는 뜻이었다.
옆자리 아주머니가 나를 흘깃 보더니 "학생, 어디 가는데 그래 안색이" 하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구멍이 뜨겁게 조여들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나는 코를 찌르는 비린 냄새를 맡았다. 바다 냄새가 아니었다. 뭔가가 찢겨나간 냄새였다. 그 냄새를 나는 알고 있었다. 예전에 항구 창고에서 상한 어물을 감정하러 갔을 때 맡았던 냄새와 비슷했는데, 그때보다 훨씬 짙고 훨씬 날것이었다.
아쿠아리움 앞 광장은 이미 통제선으로 막혀 있었다. 방독면을 쓴 대응인력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뒤로 밀어냈고, 몇 대의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광장 바닥에는 누군가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콘이 녹아 흐르고 있었는데, 그 하찮은 것이 이상하게도 눈에 오래 박혔다. 나는 통제선 앞에서 소리쳤다.
"제 동생이 안에 있어요! 초등학교 견학으로!"
"안 됩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대응인력이 나를 밀쳐냈다. 그 손길에는 다급함도, 배려도 없었다. 그냥 절차였다. 나는 그 손길에서 이 사람이 오늘 몇 명째 나를 밀어내는 건지 궁금해졌고, 그런 계산을 하는 내가 우스웠다.
그때 건물 유리 벽면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사람 키의 세 배는 될 법한 몸통, 물고기와 갑각류가 뒤섞인 듯한 형태, 등껍질처럼 갈라진 표피 위로 검푸른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몸을 뒤틀 때마다 유리 벽에 금이 갔다.
나는 게이트 생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저 크기, 저 표피의 갈라진 결, 저 액체의 색깔만 봐도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건 도감에 실려서 등급이 매겨질 만한 놈이 아니라는 것. 등급표는 이미 알려진 개체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저렇게 생긴 걸 본 사람이 있다면 지금 살아서 신고했을 리가 없었다.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사람들의 비명이 한 박자씩 커졌다.
나는 통제선 뒤에서, 대응인력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옆쪽 비상구 계단으로 숨어들었다. 계단 손잡이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손끝을 타고 팔뚝까지 올라오는 동안, 나는 딱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계단을 세 층 내려가자, 아쿠아리움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은 물에 잠겨 있었고, 깨진 수조에서 넘쳐흐른 바닷물과 핏물이 섞여 있었다. 발등까지 차오른 물이 걸을 때마다 찰박거렸고,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시체 두 구가 벤치 옆에 쓰러져 있었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반대편 통로 쪽으로 몰려 있었다.
그 무리 한가운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센터파트로 넘긴 검은 머리, 왼쪽 귓불에 걸린 금 귀걸이.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는데, 그 팔에는 핏방울 하나 튄 게 없었다. 그는 손에 든 것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표정에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살려달라고 매달렸지만, 그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는 순간, 그게 계산이라는 걸 알았다. 손님이 부른 값과 내가 받아들일 값 사이의 선을 재는, 그런 눈빛이었다. 예전에 나도 저런 눈으로 물건을 봤다. 이 물건은 얼마까지 부를 수 있고, 이 손님은 어디까지 깎을 수 있는지, 그 선을 눈으로 훑는 눈빛. 다만 그가 재고 있는 건 값이 아니라 목숨의 개수였다.
"저쪽 통로는 폐쇄됩니다."
그가 말했다. 낮고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나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감정이 완전히 지워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 안에 다 있으면 열아홉이 죽습니다. 통로를 좁히면 열둘이 삽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를 쳐다보는 사이, 그는 뒤쪽에 있던 철제 셔터의 레버를 당겼다. 셔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쇠와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로비 전체에 울렸다.
그 셔터 아래에, 아이 하나가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 손을 놓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노란 원피스에 물이 튀어 얼룩이 져 있었고, 아이는 셔터가 내려오는 걸 보면서도 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안 돼요! 애가 있어요!"
한 여자가 소리치며 뛰어들려 했지만, 남자가 팔로 그녀를 막았다. 그 팔은 흔들리지 않았다.
"셔터를 멈추면 뒤쪽 통로가 유입구가 됩니다. 개체가 이쪽으로 넘어옵니다."
"애가 있잖아요!"
"한 명과 스물세 명. 셈은 끝났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에도 그는 숫자를 세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재고를 확인하고 마감 장부에 손해액을 적어 넣는 사람의 얼굴. 나는 저런 얼굴을 안다. 나도 저런 얼굴로 사람에게 값을 매긴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물건에 값을 매기는 것과 목숨에 값을 매기는 것 사이에는, 내가 넘어본 적 없는 선이 있었다.
셔터가 완전히 내려왔다. 그 뒤로 이어진 소리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짓눌리는 소리, 그리고 그 위로 겹치는 짧은 비명 하나. 그 비명은 길지 않았다. 놀랍도록 짧았다.
나는 계단에 몸을 붙인 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무릎이 후들거려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셈이 끝났다는 말을, 그는 마치 재고 정리를 마친 사람처럼 내뱉었다. 그 목소리에서 나는 죄책감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티끌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에 미안함이 없는 것처럼, 그 셈에는 슬픔이 한 톨도 없었다.
그때 그의 눈이 나를 향해 돌아왔다.
내가 숨어 있던 계단 난간 틈으로, 그가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눈에는 놀람도 분노도 없었다. 그냥 새로운 변수 하나가 추가됐다는 무표정한 확인뿐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사람이 아니라 장부에 새로 적힐 숫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기, 나오십시오."
그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위협도, 자비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냥 다음 셈을 시작하려는 목소리였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구멍이 완전히 막혀서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뭔가가 물을 튀기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철벅, 철벅. 무겁고 느린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게 그 거대한 몸통이 통로를 넘어왔다는 뜻이라는 걸 직감했다.
숨이 턱 막혔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위로는 통제선, 아래로는 그 남자와 해물.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셈이 돌아갔다. 위로 올라가면 통제선에 막혀서 다시 밀려날 것이고, 아래로 내려가면 그 남자의 눈앞에 서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시간을 벌 수 있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뭔가 축축하고 차가운 것이 내 발목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