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퇴사 통보를 하던 날, 팀장님은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김 주임, 진짜 갈 거야?"
"네."
"거기 위험하다던데."
"조심할 겁니다."
팀장님은 한숨을 쉬었다. 십 년을 같이 일한 사람의 한숨이었다. 그 한숨 안에 뭐가 들었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답답함, 서운함, 그리고 조금의 부러움.
"자네처럼 성실한 사람이 왜 이런 데 흔들리나."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설비팀에서 십 년, 보일러 배관을 만지며 살았다. 겨울마다 얼어붙는 파이프를 녹이고, 여름마다 과열되는 밸브를 점검했다. 성실함이 내 유일한 자산이었다. 그런데 던전이 생긴 뒤로 그 성실함이 뭘 위한 건지 모르게 됐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느 때와 똑같았다. 구름 몇 점, 흐린 햇빛. 던전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해서 하늘 색깔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 눈빛이 변했다. 뉴스에서는 매일 새로운 등급, 새로운 사망자 수를 발표했고, 그 숫자들 사이에서 나는 내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책상 위 물건들을 상자에 담았다. 십 년 넘게 쌓인 서류, 낡은 계산기, 누렇게 바랜 안전모. 별거 없었다. 그게 조금 서글펐다.
"몸 조심해라, 태호야."
마지막엔 팀장님도 이름을 불렀다. 그게 다였다. 팀장님은 더 말을 잇지 않고 내 등을 한 번 밀었다. 나가라는 뜻인지, 잘 가라는 뜻인지 헷갈렸다.
카페 창가 자리에 준호와 도현이 먼저 와 있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니 에어컨 바람이 얼굴을 훑었다. 준호는 여전히 덩치가 컸고, 여전히 티셔츠가 늘어져 있었다. 도현은 안경을 고쳐 쓰며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태호야, 늦었네."
준호가 손을 흔든다.
"차 밀렸어."
"차가 아니라 니 몸이 밀린 거 아니냐."
도현이 웃지도 않고 말했다. 이 새끼는 웃음도 아꼈다. 대학 다닐 때부터 그랬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서, 진짜로 웃긴 건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맞은편 의자를 끌어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으며 짧게 울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십 년 넘게 각자 살았다. 준호는 게임 회사에서 팀장을 하다 스트레스로 나왔고, 도현은 대학 행정실에서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다 나왔다. 나는 설비팀. 셋 다 던전이라는 단어에 다른 이유로 끌렸다. 준호는 회사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다른 뭔가를 찾았고, 도현은 민원인 목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나는, 뭐였을까. 아마 성실함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등록은 다 했어?"
내가 물었다.
"탐사자 등록증 나왔어."
준호가 휴대폰을 흔들었다. 화면에 뜬 등록증 사진 속 준호 얼굴은 평소보다 더 부어 있었다.
"이거 사진 왜 이렇게 찍었냐."
"새벽에 찍었잖아. 그날 일 있었다고."
"파티 구성만 하면 되는데."
도현이 노트북을 덮으며 끼어들었다. 그는 원래 이런 일에 진행 속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민원실에서 배운 습관이라고 했다.
탐사자 앱을 열었다. 아이콘을 누르니 화면이 로딩되는 짧은 시간 동안 세 사람 다 말이 없었다. 이상한 정적이었다. 파티 생성 버튼을 누르니 화면이 바뀌었다.
[파티를 생성합니다. 리더를 지정해주세요.]
셋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나는 안 해."
도현이 먼저 선을 그었다.
"책임지는 거 딱 질색이야."
"나도."
내가 손을 들었다.
"난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편해."
준호가 우리를 번갈아 봤다. 눈빛에 배신감이 서렸다.
"야, 그럼 누가 하냐."
"니가 해."
둘이 동시에 말했다. 준호 얼굴이 굳는다.
"이거 완전 짜고 치는 거잖아."
"짜고 친 거 맞아."
도현이 태연하게 답했다.
"애초에 니가 제일 먼저 등록증 받았잖아. 책임감 있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 있어. 먼저 시작한 사람이 책임지는 거지."
말도 안 되는 논리였는데, 준호는 순간 반박할 말을 못 찾았다. 나는 웃음이 나올 뻔한 걸 참았다.
결국 준호가 리더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화면을 톡, 찍었다.
[알림: 파티 리더가 지정되었습니다 - 박준호]
그 아래 작은 글씨가 떴다. 처음 보는 형식이었다.
[경고: 현재 파티의 예상 위험도가 권장 등급을 초과합니다.]
준호가 휴대폰을 뒤집었다가 다시 돌려봤다. 눈이 화면에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뭐냐."
"뭐가."
내가 물었다.
"경고 문구 떴는데."
화면을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파티 생성 완료 메시지뿐이었다. 하얀 배경에 초록색 체크 표시, 그게 전부였다.
"아무것도 없는데?"
도현도 자기 휴대폰으로 확인했다. 마찬가지였다. 그는 화면을 두 번 넘겨보고, 새로고침까지 해봤다.
"나도 없어. 뭘 봤다는 거야."
준호만 이상한 얼굴이었다. 손끝으로 화면을 몇 번이나 눌러댔다. 마치 그 경고문이 다시 나타나길 바라는 것처럼.
"진짜 봤는데."
"착각했겠지. 너 요즘 잠도 못 자잖아."
나는 웃으며 넘겼다. 그때는 그게 그냥 오타 아니면 눈이 침 마른 소리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며칠 밤을 설치면 헛것도 보이는 법이니까. 준호는 요 며칠 새벽까지 등록 서류를 준비한다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했었다.
준호는 한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넣었다. 표정이 개운하지 않았다. 눈썹 사이에 주름이 남아 있었다.
"기분 나쁘네."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속으로 생각했다. 왜 나머지 둘한테는 안 보이고 준호한테만 보였을까. 그건 그냥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리더로 지정된 사람에게만 보이는 정보였을까. 그렇다면 그게 뭘 뜻하는 걸까.
확신할 수 없었다.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앱 어디를 눌러봐도 그 경고문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도현은 그냥 시스템 오류라며 넘겼고, 준호도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듯했다.
그날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카페를 나서면서도 그 문장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예상 위험도가 권장 등급을 초과한다는 말.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그때는 몰랐다. 알았다면 좀 다르게 준비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