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남자, 마법소녀 되다

4화

칼날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도현은 숨을 삼켰다. 일곱 자루, 여덟 자루, 셀 수 없을 만큼 늘어난 검이 동시에 겨눠졌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칼날마다 하얗게 번쩍였다. 그 빛이 눈알을 찔러왔다. '저걸 다 피할 수 있을까.' 손끝이 떨렸다. 조금 전 마력을 쓴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다. 팔이 저릿하고, 뒷목이 뻣뻣했다. 관절 마디마디가 뜨겁게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몽이가 어깨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큐, 큐응... 이건 좀 심각한데." 목소리 끝이 가늘게 갈라졌다. 이도현은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몽이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심각한 거다. 하동원이 손을 들었다. 느긋한 손짓이었다. 서두르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마치 파리를 잡기 전에 손등을 매만지는 것처럼,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칼날들이 일제히 발사됐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이도현은 몸을 돌려 계단 통로로 뛰어들었다. 좁은 콘크리트 벽 사이. 먼지와 습기가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에서 부서진 타일 조각들이 밟혀 으스러졌다. 서걱- 서걱- 서걱- 칼들이 벽을 긋고 지나갔다. 돌가루가 얼굴로 튀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이도현은 계단을 두 칸씩 뛰어내려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이렇게 계속 도망만 칠 수는 없어.' 머릿속으로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등 뒤에서 또 한 자루가 쫓아왔다. 벽을 스치는 소리가 아까보다 가까웠다. 【알림.】 【마력 잔량 61%.】 【마력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신체 능력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숫자가 눈앞에서 깜빡였다. 이도현은 그 숫자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많이 남지도 않았는데.' 61에서 50. 남은 여유는 겨우 11이었다. 그 사이 숫자에 목숨이 걸려 있다는 게 우스울 정도로 명확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벽이 갈라져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며 생긴 균열이었다.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어깨가 벽에 긁혔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살갗이 콘크리트 모서리에 긁혀 화끈했다. 간신히 틈을 통과하자 작은 공간이 나왔다. 무너진 설비실인 듯했다. 녹슨 파이프와 부서진 배관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바닥에는 시커먼 물이 고여 있었고, 그 위로 기름 섞인 냄새가 떠다녔다. 이도현은 숨을 몰아쉬며 벽에 등을 붙였다. 등을 대자 차가운 습기가 옷을 뚫고 스며들었다. 그 냉기가 오히려 정신을 붙잡아주는 것 같았다. "여기, 잠깐은 숨을 수 있겠지?" 몽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못 숨어. 저 사람 능력은 벽을 뚫는 게 아니라 칼을 던지는 거야. 근데 저 정도 초능력자면 감각으로 위치를 찾아낼 거야." "감각으로?" "응. 심장 소리, 숨소리, 그런 거. 하동원 같은 급은 그 정도쯤 다 잡아내." 이도현은 자기 심장 소리가 이 좁은 벽 너머까지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벽 저편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앙! 칼 한 자루가 벽을 뚫고 들어왔다. 바로 옆 파이프를 관통했다. 증기가 쉭- 하고 새어 나왔다. 뜨거운 김이 코앞까지 뿌옇게 퍼졌다. 이도현은 몸을 옆으로 굴렸다. 뜨거운 증기가 뺨을 스쳤다. 피부가 순간 얼얼하게 익는 느낌이었다. '찾았구나.' 또 한 자루가 반대편 벽을 뚫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세 개, 네 개. 연이어 뚫고 들어오는 칼날들이 사방에서 벽을 무너뜨렸다. 파이프에서 새어 나온 증기와 돌가루가 뒤섞여 시야를 가렸다.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숨을 곳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대로면 갈 곳이 없어.' 이도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이 떨렸다. 숨을 곳도, 도망갈 곳도 없었다. 몽이가 다시 몸을 움츠렸다. "큐응... 이거 진짜 좁아지고 있어. 도현아, 정신 차려. 여기서 멈추면 안 돼."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그 안에 겁먹은 떨림이 그대로 섞여 있었다. 몽이도 무서운 거다. 〈이럴 때 도망만 치면 재미없잖아.〉 메스가키의 목소리가 다시 속에서 웃었다. 낮고 나른한, 사람을 놀리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지금 웃을 때야?' 〈웃을 때가 아니면 언제 웃어. 죽고 나서? 그건 좀 늦지 않아?〉 이도현은 그 목소리를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신경을 긁었다. 죽고 나면 늦다는 그 말이, 지금 상황을 너무 정확히 짚고 있어서였다. 칼 한 자루가 정면에서 날아왔다. 이도현은 몸을 비틀어 겨우 피했다. 어깨를 스치며 옷깃이 잘려나갔다. 피부에 얇은 상처가 그려졌다. 따끔한 통증이 번졌다. 피가 배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아직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 얇은 상처 하나가 몸 전체의 긴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죽는 건가.' 생각이 그렇게 흐르는 순간, 갑자기 머릿속으로 낯선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몽이가 텔레파시 연결을 시도합니다.】 머릿속이 순간 웅- 하고 울렸다. 마치 귀 안쪽에 작은 종이 매달려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너 지금, 이걸로 말하는 거야?' 몽이의 목소리가 이도현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들어봐. 나 원래는 이런 것까지 도와주면 안 되는데,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그냥 말할게. 계약 위반한 대가는 나중에 네가 다 치러야 해. 지금은 그것보다 살아야지." 이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라는 말이 걸렸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도현의 입이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저 사람 능력은 시야에 잡힌 대상만 정확히 노려. 시야를 가리면 정확도가 떨어져." '시야를 가려? 어떻게?' 몽이가 다급하게 덧붙였다. "네 마력으로 빛을 터뜨릴 수 있어. 방금 칼 막을 때 쓴 거, 그거 좀 더 세게 쓰면 돼." '그거 하다가 마력 다 떨어지면?' "그럼 그 전에 끝내야지. 선택권 없어, 지금." 이도현은 손끝을 내려다봤다. 손톱 끝에서 옅은 빛이 맴돌았다. 빛은 미약했다. 손톱 하나만큼의 크기로, 흔들리듯 깜빡였다. '해보는 수밖에.' 【알림.】 【마력 잔량 58%.】 숫자가 조금 더 떨어졌다. 도망치는 동안에도,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도 그 숫자는 계속 갉아먹히고 있었다. 칼 두 자루가 동시에 날아왔다. 날카로운 은빛 선이 시야 양쪽에서 좁혀 들어왔다. 하나는 목을 향해, 하나는 옆구리를 향해. 이도현은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바닥 안쪽에서 뭔가 팽창하는 느낌이 들었다. 뜨거운 압력이 손끝에서부터 팔목까지 밀려 올라왔다. 몸속 어딘가에 있는 걸 억지로 끌어당기는 감각, 그 감각이 목구멍까지 치받쳤다. '제발.' 빛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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