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남자, 마법소녀 되다

3화

칼 다섯 자루가 각기 다른 각도로 날아들었다. 이도현의 몸이 저절로 낮아졌다. 생각이 따라가지 못했다. 근육이 먼저 움직이고, 머리는 그 뒤를 쫓아가는 느낌이었다. 서걱- 서걱- 칼 두 자루가 바로 곁을 스쳐 지나갔다. 바람이 뺨을 갈랐다. 뜨거운 통증이 뒤따라왔다. 피가 한 줄기, 턱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아프잖아.' 의외였다. 몸은 소녀였고 성격은 낯설었지만, 통증만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살갗이 갈라지는 느낌, 뜨끈한 액체가 피부를 타고 흐르는 감각. 그 모든 것이 지독하게 익숙했다. 몽이가 어깨 위에서 소리쳤다. "뒤! 뒤에도 있어!" 이도현은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무너진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등이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소리가 날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콰앙! 칼이 책상을 반으로 쪼갰다.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중 하나가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숨을 곳도 없잖아.' 주변은 무너진 잔해로 가득했다. 부서진 파티션, 쓰러진 서버랙, 깨진 유리창. 곰팡내 대신 화약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어딘가에서 전선이 스파크를 일으키는 소리가 지지직 울렸다. 이도현은 몸을 낮춘 채 재빨리 눈을 굴렸다. 하동원은 여전히 창가에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그저 손을 들어 칼을 조종할 뿐이었다.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마치 사냥이 아니라 산책을 하는 사람 같았다. 【알림.】 【현재 계약자의 마력 잔량은 87%입니다.】 【마력 소모 시 회복 속도가 느려집니다. 신중한 사용을 권장합니다, 고객님.】 '마력? 그런 게 나한테 있다는 거야?' 이도현은 손끝에 힘을 실어봤다. 뭔가가 반응하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무언가가 손끝에서 부풀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마치 물속에서 손을 저었을 때의 저항감 같았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다. 스위치도 없고, 설명서도 없었다. 그냥 있다는 것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시험해볼 여유가 없어.' 또 다른 자아가 속에서 낄낄거렸다. 〈시험은 나중에. 일단 저 아저씨 얼굴 좀 더 구겨보자.〉 그 목소리는 이도현의 것이 아니었다. 가볍고, 장난스럽고, 위험을 즐기는 듯한 어투였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이상하게도 완전히 배척되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자신 안에 있던 무언가가 풀려난 느낌이었다. '너는 대체 뭐야.' 〈나중에 얘기해. 지금은 살아야지, 응?〉 대답 대신 웃음소리만 돌아왔다. 칼 한 자루가 파티션을 부수며 다가왔다. 서걱- 이도현은 몸을 굴려 피했다. 어깨에 얕은 상처가 남았다. 옷 위로 피가 번지는 게 느껴졌다. 젖은 천이 살갗에 달라붙는 감각이 불쾌했다. '계속 도망만 칠 수는 없어.' 하지만 정면으로 맞서기엔 너무 무모했다. 상대는 여러 개의 칼을 동시에 다루는 초능력자였다. 자신은 이제 막 얻은 힘의 사용법조차 몰랐다. 칼 한 자루도 제대로 못 막는데, 여덟, 아홉 자루를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몽이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저쪽, 계단 통로로 가! 좁은 곳으로 들어가면 칼이 한 번에 다 못 들어와!" "그럼 저 아저씨는?" 이도현이 낮게 되물었다. 몽이가 잠시 멈칫했다. "...일단 너부터 살아야지." 이도현은 몸을 낮춘 채 잔해 사이를 미끄러졌다. 계단 통로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신음이 들렸다. "...도와줘. 누구 없어?" 박태수의 목소리였다. 무너진 서버랙 밑에 다리가 끼어 있었다. 서버랙의 무게에 짓눌린 다리가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도현의 안에서 두 가지 감정이 부딪혔다. 하나는, 조금 전 자신을 밀치고 도망친 사람을 향한 분노. 등을 밀며 자기만 살겠다고 뛰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했다. 하나는, 그래도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오래된 습관. 몸이 소녀로 바뀌어도, 그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놔둬. 어차피 우리 앞가림도 안 되는데.〉 메스가키의 목소리가 코웃음쳤다. 〈저 아저씨, 아까 너 밀치고 튄 거 잊었어? 은혜 갚을 시간 아니야.〉 '하지만.' 이도현이 망설이는 사이, 칼 한 자루가 방향을 틀었다. 박태수가 있는 방향이었다. 칼끝이 그의 목덜미를 정확히 겨눴다. "안 돼!"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생각과 몸이 처음으로 완전히 일치했다. 망설임 따위는 그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이도현은 몸을 날렸다. 바닥을 박차고, 무너진 책상 파편을 밟고, 다시 도약했다. 손을 뻗어 칼의 궤도를 막으려 했다. 【경고.】 【숙련되지 않은 마력 사용은 신체에 부담을 줍니다.】 【무리한 개입 시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고객님.】 경고음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손끝에서 빛이 터졌다. 퍽! 칼이 튕겨 나가며 벽에 박혔다.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가 뒤따랐다. 이도현의 팔이 저릿하게 떨렸다. 뭔가가 소모된 느낌이었다. 마치 몸속에서 뜨거운 물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것 같은 허탈감이었다. 무릎이 후들거려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겨우 버텼다. 박태수는 여전히 다리가 끼인 채, 눈을 크게 뜨고 이도현을 바라봤다.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너, 방금 뭐야?" "몰라도 돼, 아저씨." 이도현의 입이 저절로 냉소를 지었다. 목소리마저 낯설게 들렸다. 하지만 속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 박태수의 손이 서버랙 아래에서 허우적거렸다. 빼내려 해도 빠지지 않는 다리를 붙잡고 그가 다시 소리쳤다. "제발, 이거만 좀 치워줘! 나 죽는다고!" 이도현은 서버랙에 손을 대봤다. 무겁다. 당장 들어 올릴 힘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도 없었다. 하동원의 웃음소리가 잔해 너머에서 들렸다. "흥미롭군. 숨기려면 더 잘 숨어야지." 그의 손끝이 다시 움직였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동작이, 마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것처럼 여유로웠다. 칼들이 다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쨍- 쨍- 쨍- 쇠붙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이번엔 더 많은 수였다. 일곱, 여덟, 아니 그보다 더. 깨진 유리창 틀 사이로 들어오는 흐린 빛이 칼날마다 반사되어, 마치 별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도현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손끝은 아직도 저릿했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한 번 더 막을 힘이 남아 있을까.' 몽이가 다급하게 어깨 위에서 날개를 펄럭였다. "이번엔 진짜 도망쳐야 해! 저건 못 막아!" 하늘을 가득 채운 칼날이 일제히 이도현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속까지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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