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쿠구구궁-
천장이 갈라졌다.
이도현은 책상 밑으로 몸을 던졌다.
먼지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콜록. 콜록.
목구멍이 타는 것처럼 아팠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꺼풀 사이로 흙먼지가 파고들었다.
서울 강남, 대일빌딩 17층.
십 분 전까지만 해도 야근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모니터 불빛만 켜진 사무실.
다들 퇴근했고 이도현의 자리만 남아 있었다.
키보드 소리만 텅 빈 공간을 채웠다.
박태수 부장이 커피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소리쳤던 것도 기억났다.
쿵.
종이컵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커피가 튀었다.
서류 위로 갈색 얼룩이 번졌다.
"이번 주말도 없어. 알지?"
목소리가 사무실 전체를 울렸다.
"네."
그때는 그냥 고개를 숙였다.
얼룩진 서류를 다시 정리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정신도 없었다.
콰앙!
벽이 무너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책상 다리에 뭔가 부딪혔다.
쨍-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망토가 펄럭였다.
빨간 안감이 번쩍였다.
바람이 사무실 안을 휩쓸었다.
종이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검은 모자를 쓴 남자였다.
중년, 마른 체형, 눈빛이 이상하게 고요했다.
발이 바닥에 닿아 있지 않았다.
공중에 뜬 채로, 그냥 그 자리에 떠 있었다.
'저게 뭐야.'
이도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렸다.
빠르게, 더 빠르게.
남자가 손을 들었다.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 천천히 접었다.
허공에 칼 세 자루가 떠올랐다.
쇠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칼들이 스스로 움직였다.
주변 사람들을 향해 날아갔다.
휙- 휙- 휙-
세 번의 바람 소리.
비명이 사방에서 터졌다.
동료들이 쓰러졌다.
누군가 책상을 붙잡고 버텼다.
소용없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철분 냄새와 비슷했다.
비릿하고, 진하고, 역겨웠다.
이도현은 책상 밑에서 몸을 웅크렸다.
숨을 죽였다.
심장 소리가 자기 귀에도 들릴 만큼 컸다.
박태수가 이도현의 어깨를 밀쳤다.
손바닥이 아니라 팔꿈치였다.
퍽.
이도현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비켜! 내가 먼저야!"
그대로 등을 돌려 도망쳤다.
구두 소리가 급하게 멀어졌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도현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손바닥이 유리 조각에 긁혔다.
따가운 감각이 순식간에 번졌다.
그런데도 그게 지금 가장 급한 문제는 아니었다.
쿵.
천장 일부가 그의 다리 위로 떨어졌다.
뼈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우드득.
다리가 아니라 몸 전체가 눌리는 것 같았다.
'씨발.'
숨이 턱 막혔다.
목구멍이 좁아졌다.
시야가 흐려졌다.
사방이 붉은색과 회색으로 뒤섞였다.
피가 입안 가득 고였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다.
턱을 바닥에 붙인 채로 눈만 굴렸다.
멀리서 발소리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여기서 죽는 건가.'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조여왔다.
손끝이 저렸다.
발가락 감각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작고 흰 무언가가 그의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두 손바닥만 한 크기.
솜털로 덮인 몸.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 곰인지 구분이 안 되는 얼굴.
동그란 눈이 이도현을 향해 있었다.
"큐응?!"
그것이 소리를 냈다.
날카로운 소리였다.
동시에 어딘가 다급한 소리였다.
손에서 뭔가 반짝이는 물건이 떨어졌다.
분홍색 리본이 달린 작은 브로치였다.
먼지 낀 바닥 위에서 유난히 반짝였다.
분홍빛 광채가 흙먼지 사이를 뚫고 새어 나왔다.
【마법소녀 후보자를 탐색 중입니다.】
【적합한 소녀를 찾을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객님.】
이도현의 눈앞에 그 문구가 떠올랐다.
글자체마저 반듯하고 사무적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웃을 힘도 없는데 웃음이 나왔다.
목구멍에서 피 섞인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게 다야?'
죽어가는 순간에 저런 걸 보게 되다니.
남자가 죽어가는데 마법소녀를 찾는다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흰 생물이 그의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콧등이 닿을 만큼 가까이.
"큐, 큐응...!"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멀리서 남자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칼 한 자루가 방향을 틀었다.
그를 향해 곧장 날아왔다.
날카로운 은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남은 힘이 없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다리는 이미 눌려서 감각이 없었고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끝만 파르르 떨렸다.
브로치가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분홍빛 리본이 미세하게 떨렸다.
생각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손을 뻗었다.
"큐우웅?! 안 돼! 그건 남자는 못—"
흰 생물이 비명처럼 외쳤다.
몸을 던져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도현의 손끝이 브로치를 붙잡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박혔다.
순간, 세상이 하얗게 지워졌다.
소리도, 냄새도, 통증도 사라졌다.
오직 손안의 감촉만 남았다.
칼이 그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보였다.
칼끝의 빛이 눈동자에 그대로 비쳤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죽더라도, 이걸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손안의 것을 놓을 수 없었다.
손안의 브로치가 뜨거워졌다.
피부가 델 것처럼 뜨거워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쿵. 쿵. 쿵.
귀 안쪽에서 심장 소리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
위이이잉-
빛이 폭발했다.
무너진 사무실 전체가 흰 빛으로 뒤덮였다.
칼끝이 그의 정수리에 닿기 직전,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감각이 스쳤다.
흰 생물의 비명 소리가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남자는 못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의식이 끊기기 직전, 이도현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고작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