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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박기석의 부상 소식은 회사 전체에 빠르게 퍼졌다. 그는 전신 깁스는 아니었지만 이마에 여러 바늘을 꿰맸고, 손목 골절 진단까지 받아 한동안 자숙에 들어갔다. 복도에서는 벌써 이런저런 말들이 돌았다. "신입이 그렇게 만들었대." "에이, 설마." "진짜라니까. 소문이 그래." 김도윤은 그런 대화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서둘렀다. '괜히 눈에 띄지 말자.' 그 사이, 노혜정은 김도윤을 조용한 회의실로 불렀다. 회의실 문을 닫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윤 씨, 이거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녀는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두꺼운 서류철이었다. 총무과 내부 문서였다. 지난 삼 년간 있었던 성희롱 신고 내역이 정리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흐지부지 종결 처리되어 있었다. 김도윤은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날짜, 이름, 그리고 '조사 중 종결', '증거 불충분' 같은 짧은 문구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게 다 묻힌 거예요?" "네. 사장님이 다 눌러버렸어요. 박기석 부장님 형님이니까요." 김도윤의 눈이 서류를 훑었다.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 직원이었다. 이름 옆에 적힌 부서, 그리고 그 아래 짧게 적힌 사유들. 같은 패턴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이게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었구나.' "혜정 씨는 왜 이걸 저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노혜정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얼굴을 반쯤만 비추고 있었다. "저도 예전에 당한 적 있어요. 그때는 그냥 참았죠. 지금 생각하면... 후회돼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이번에는 다르게 하고 싶어요." 김도윤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도울게요." 노혜정의 눈에 잠깐 물기가 어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고마워요. 혼자서는 못 할 것 같았거든요." 두 사람은 그날부터 조심스럽게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피해 직원들의 증언, 인사 기록, 그리고 박기석의 폭언이 담긴 메신저 캡처까지. 몇몇 직원들은 처음엔 손사래를 쳤다. "저는 관련 없어요." "괜히 엮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노혜정이 조용히, 끈질기게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나면 하나둘 마음을 바꿔주었다. 김도윤은 그 옆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날짜를 맞추고 파일을 만들었다. 밤늦게까지 회의실에 남아 서류를 들여다보는 날이 이어졌다. 일주일이 지나자 노동청에 정식으로 진정서가 접수되었다. 접수 확인 문자를 받은 노혜정의 손이 살짝 떨렸다. "드디어 냈네요." "이제 시작이죠." 소식이 퍼지자 사장 박기범이 급히 사무실에 나타났다. 구두 소리가 복도에서부터 크게 울렸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누가 이런 걸 접수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무실 전체가 숨을 죽인 듯 조용해졌다. 박기범의 시선이 노혜정에게 멈췄다. "노혜정 씨, 당신이지?" "...사실을 알린 것뿐입니다." 노혜정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끊기지 않았다. 박기범은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이런 짓을. 오늘부로 총무과에서 지방 지사로 발령이야." "그건 보복 인사입니다!" 김도윤이 나섰다. 그의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 크게 울렸다. "넌 뭔데 끼어들어." 박기범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리고 너, 신입이라며. 신분증도 제대로 없다는 소문이 있던데." 순간 사무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주변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도윤에게 쏠렸다. '어떻게 알았지.' 김도윤은 침을 삼켰다. 손끝이 미세하게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진정해. 여기서 화내면 안 돼.' 박기범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훑었다. 위아래로 훑는 그 시선이 오래도록 그의 몸에 머물렀다. "나중에 인사과에서 다시 확인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사무실의 정적을 더 짙게 만들었다. 노혜정은 그날 오후 정식 발령 통지서를 받았다. 봉투를 뜯는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네요." 그녀의 웃음은 씁쓸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김도윤이 단호하게 말했다. "노동청 조사는 이미 시작됐어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과는 나올 거예요." 노혜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까지 제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박기석 부장님도 곧 복귀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복귀요?" "자숙 기간이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 성격이... 곱게 안 넘어갈 거예요." 김도윤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사람이 복귀하면, 분명 나부터 노리려 하겠지.' 노혜정은 통지서를 조심스레 접어 서류철 안에 다시 넣었다. "지사로 가더라도, 도윤 씨는 여기서 조심해요. 저 사람들, 뭐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혜정 씨도요." 두 사람은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밤, 병원에 있던 박태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김도윤의 심장이 살짝 빨라졌다. "도윤아, 나 이제 좀 괜찮아졌어. 근데... 회사에서 계속 이상한 소문이 돌더라." "무슨 소문?" "네가 부장님 다치게 했다고. 그리고 신입 여직원이 사실은 가짜 신분이라는 얘기도." 전화기 너머로 병실 특유의 조용한 기계음이 배경으로 섞여 들렸다. 김도윤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벌써 이렇게 퍼졌구나.' "태수야, 그거 다 헛소문이야.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조심해. 부장님 성격 알잖아." 전화를 끊고 나서도 김도윤은 한동안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조심해! 저 사람, 위험한 냄새가 나!] 머릿속에서 홍설아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설아 씨도 느끼는구나.' 김도윤은 창밖 어둠을 바라보았다. 노혜정의 발령, 박기석의 복귀, 사장의 의심스러운 눈빛. 모든 것이 한꺼번에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으로 지난 일주일의 일들이 하나씩 스쳐 지나갔다. 서류를 함께 정리하던 밤, 노동청 접수 문자, 사장의 벌게진 얼굴, 그리고 신분증을 언급하던 그 눈빛까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다들 위험해질 거야.'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어둠 속에서 오래도록 눈을 감지 못했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비추다 꺼졌다. 박기석이 다시 회사에 나타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이, 결코 틀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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