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귀농한 이세계 지주

2화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서 우편물을 개봉했다. 봉투는 두꺼운 편이었고, 겉면에 법무사무소 이름이 상단에 박혀 있었다. 커피는 아직 반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종이를 뜯는 손이 조금 서둘렀던 것 같다. 딱딱한 문체가 시작됐다. '귀하는 고 김만수 씨의 상속인 자격으로, 강원도 OO군 소재 임야 및 대지, 건축물 일체를 상속받게 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부동산 소재지, 지목, 면적, 등기 이전 절차. 실무적인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요약하면 하나였다. 할아버지가 산과 밭과 낡은 집을 나에게 남겼다는 것. 두 번째 장에는 표까지 그려져 있었다. 지목은 임야와 대지로 나뉘어 있었고, 면적은 숫자로만 보면 꽤 넓었다. 세금 얘기도 짧게 적혀 있었다.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상속받은 게 아니라 청구서를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카페 테이블에 종이를 펼쳐놓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옆자리 사람이 노트북으로 면접 준비를 하는지 예상 질문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몇 달 전까지는 저러고 있었지. 지금은 아니다. 할아버지 김만수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매년 여름 강원도 산골에서 나를 재워주던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나를 그다지 반기지 않던 시절, 유일하게 무조건 반겨준 사람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할아버지는 버스터미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트럭 조수석에 나를 태우고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무 이름, 새 이름, 여기 살던 사람들 이야기. 나는 그 목소리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3년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취업 준비로 정신없어서 장례식장에도 겨우 얼굴만 비쳤다. 조문객 명단에 이름을 적고 절을 두 번 하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돌아왔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최악이었다. 할머니 이순자는 그 후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신다고 들었다. 기억을 많이 잃으셨다는 얘기도 들었다. 부모님이 그쪽 집안과 왕래를 거의 끊은 지 오래였다. 이유는 몰랐다. 물어본 적도 없었다. 어릴 때는 그냥 어른들 사정이겠거니 했고, 커서는 굳이 캐물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 와서 캐묻자니, 캐물을 대상이 마땅치 않았다. 아버지는 전화를 잘 받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쪽 얘기만 나오면 말을 돌렸다. 법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가고 바로 받았다. "등기 이전은 이미 마무리됐고요, 도현 씨 이름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다만 건물이 오래돼서 상태는 좀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나는 몇 가지를 더 물었다. 세금은 언제까지 내야 하는지, 건물 철거 계획이 있는지, 매매를 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법무사는 마치 준비된 답변지를 읽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지막에 "혹시 현장을 직접 보실 계획이면, 길이 좀 험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선택지가 없었다. 서울에는 갈 곳이 없었고, 강원도에는 적어도 지붕이 있었다. 통장 잔고는 백만 원 남짓이었고, 그마저도 다음 달이면 월세로 다 나갈 돈이었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이 답을 알고 있었다. 그날로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버스는 세 시간을 달렸다. 창밖 풍경이 건물에서 논밭으로, 논밭에서 산으로 바뀌었다. 처음 한 시간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봤고, 그다음 한 시간은 잠을 청했지만 자지 못했고, 마지막 한 시간은 그냥 창밖만 봤다. 산이 점점 짙어졌다. 종점에서 다시 완행버스로 갈아탔다. 배차 간격이 두 시간이었다. 매표소 직원이 시간표를 보여주며 "다음 차는 두 시간 뒤예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를 샀다. 백만 원짜리 봉투를 여는 첫 지출이었다. 편의점 유리문을 열고 나오면서, 이게 앞으로 내 예산 감각의 기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각김밥 하나에 얼마, 라면 한 봉지에 얼마. 서울에서는 하루 커피값도 안 되는 돈이었는데, 여기서는 다르게 느껴졌다. 완행버스는 굽이진 산길을 삼십 분쯤 올랐다. 창문이 덜컹거릴 때마다 가방 속 서류봉투가 무릎에서 미끄러졌다. 정류장이라고 해봐야 팻말 하나가 전부인 곳에서 내렸다. 버스가 떠나는 소리가 멀어지고 나니, 사방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매미 소리만 요란했다. 거기서부터는 걸어야 했다. 법무사가 알려준 주소를 지도 앱에 찍었지만 신호가 자꾸 끊겼다. 산 능선을 하나 넘고 나니 앱이 아예 먹통이 됐다. 화면에는 "위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떠 있었다. 캐리어 바퀴가 흙길에 걸려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결국 감으로 걸었다. 흙길이 좁아지고, 나무가 짙어지고, 매미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어릴 때 다니던 길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애매했다. 분명히 와본 적 있는 길인데, 확신은 없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 때 낡은 기와지붕 하나가 나무 사이로 보였다. 고택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지붕 곳곳에 기와가 깨져 있었다. 처마 밑에는 오래된 벌집이 매달려 있었는데, 다행히 빈 것처럼 보였다. 대문은 나무로 짜인 문틀에 녹슨 철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밀자 경첩이 소리를 냈다. 끼익. 끼이익. 문이 완전히 열리기까지 몇 번을 더 밀어야 했다. 손바닥에 쇳가루가 묻었다. 나는 바지에 손을 닦으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은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걸을 때마다 풀이 다리를 스쳤고, 어디선가 풀벌레가 튀어 올랐다. 장독대 몇 개가 쓰러져 있었고, 마당 한편에 개집이 하나 있었는데 텅 비어 있었다. 개집 앞에는 낡은 밥그릇이 뒤집혀 있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있었을지 짐작도 안 갔다. 안채로 들어서는 문살은 반쯤 부서져 있었다. 세월이 손을 댄 흔적이 곳곳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완전히 폐허는 아니었다. 누군가 최근까지도 손을 본 것처럼 마루는 깨끗했다. 나는 그 사실을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가 여기까지 와서 마루를 닦았을 리는 없고, 아마 관리인이나 이웃 누군가가 손을 봐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없지만, 없는 편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으니까. 방문을 열자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이불이며 세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쓰던 방이라는 걸 한눈에 알았다. 벽에 걸린 낡은 액자 속에서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웃고 있었다. 액자 옆에는 색이 바랜 달력이 그대로 걸려 있었는데, 3년 전 날짜에 멈춰 있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목이 조금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다. 지나간 일이다. 나는 캐리어를 내려놓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백만 원, 낡은 집, 그리고 잡초투성이 산 하나. 이게 내가 물려받은 전부였다. 한숨이 나올 법도 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적어도 여기서는 아무도 나를 등급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이력서 한 줄, 학점 한 줄, 나이 한 줄로 사람을 나누는 게 당연했는데, 여기 마당의 잡초는 내가 몇 학점을 받았는지 관심이 없었다. 해가 지자 산속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전기는 끊긴 지 오래인 듯 스위치를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나는 다행히 챙겨온 손전등으로 방 안을 살폈다. 벽장 안에는 낡은 이불 몇 채와 오래된 옷가지가 쌓여 있었다. 부엌 찬장에서 라면 몇 봉지를 발견했다.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상관없었다. 오래 살 생각도 아니었으니까. 가스는 다행히 작은 부탄가스통으로 대체할 수 있는 구식 버너가 남아 있었다. 불이 붙는지 몇 번 시도했는데, 세 번째에 겨우 파란 불꽃이 올라왔다. 라면을 끓여 먹고 이불을 펴고 누웠다. 이불에서는 오래된 나프탈렌 냄새가 났다. 몸은 피곤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서울 소음과는 다른 종류의 정적이 방을 채웠다. 자동차 소리도, 옆집 텔레비전 소리도 없었다. 대신 벌레 우는 소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 사이로 낮게, 규칙적으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섞였다. 사각. 사각사각. 마당 쪽이었다. 짐승이겠지, 산이니까. 너구리나 고양이겠지.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사각거림이 아니라 발소리로 바뀌었다. 짐승이라면 저렇게 일정한 박자로 걷지 않는다. 뭔가가, 두 발로, 마당을 걷고 있었다. 손전등을 껐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숨을 죽이고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걸음 사이의 간격이 사람의 걸음과 비슷했다. 그러다 멈췄다. 완전한 정적이 이어졌다. 나는 그 정적이 더 무서웠다. 나는 이불을 걷고 창호지 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달빛 아래 마당 한가운데, 텅 비어 있던 개집 앞에 뭔가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 형체는 아니었다. 그것보다 훨씬, 훨씬 이상한 무언가였다. 숨소리가 저절로 짧아졌다. 손전등을 다시 켤 용기도, 그대로 문을 닫아버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것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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