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귀농한 이세계 지주

1화

카톡 알림이 왔다. 화면을 켜기도 전에 예감이 들었다. 알림음의 높낮이까지 외울 지경이 됐으니 이젠 예감이랄 것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다른 우수한 지원자분과 함께하게 되어 아쉽게도..." 편의점 알바 면접이었다. 시급 만 원짜리 야간조였다. 그마저도 떨어졌다. 나는 지하철 계단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화면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 발이 보였다. 운동화, 구두, 슬리퍼. 다들 어딘가로 가는 발걸음이었다.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이력서 스킬란에 적힌 문구가 눈에 밟혔다. '영지경영 / 등급 외(비활성)'. 면접관이 그 칸을 보고 살짝 웃었던 게 기억났다. 웃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그 칸이 비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스킬이 없는 사람보다 스킬이 있는데 못 쓰는 사람이 더 우스운 모양이었다. 1년 전, 대학을 졸업하던 해 겨울이었다. 국가지정 스킬관리센터 3층, 형광등이 유독 하얗던 감정실에서 나는 손바닥을 감정판 위에 얹었다. 판이 차가웠다. 유리도 아니고 금속도 아닌, 뭔가 미묘하게 살아있는 듯한 질감이었다. 감정사는 삼십 대 후반쯤 되는 여자였고,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사원증 사진 속 얼굴이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판정 결과가 뜨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영지경영이라니, 이거 처음 보는 스킬인데요." 목소리에 흥미가 묻어 있었다. 그녀는 화면을 두드리며 뭔가를 검색했다. "잠깐만요, DB에 등록된 사례가 없어서." 나는 그때 조금 기대했다. 남들과 다른 스킬이라니, 혹시 희귀 등급 아닐까. '이러다 각성자 뉴스에 나오는 거 아냐.' 김칫국을 마셨다. 심지어 그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하나 사 먹었다. 축하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감정사는 곧 화면을 몇 번 스크롤하더니 표정을 지웠다. 흥미로워하던 눈빛이 사무적으로 가라앉는 걸 나는 정면에서 지켜봤다. "음, 활성화 조건 미충족이네요. 등급 산정이 안 돼서 그냥 F로 처리하겠습니다." 사무적인 말투였다. 그녀는 이미 다음 감정 대상자를 향해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활성화 조건이 뭔데요?" 내가 물었다. "그건 저희도 몰라요. 스킬 자체가 조건부라서, 조건이 충족돼야 등급이 뜨거든요. 근데 이 스킬은 워낙 케이스가 없어서 조건표에도 안 올라와 있네요." 그녀는 어깨를 살짝 들어 보였다. 미안하다는 뜻인지, 그냥 흥미 없다는 뜻인지 구분이 안 됐다. 옆에서 대기하던 다른 감정사가 슬쩍 넘겨보고는 픽 웃었다. 그 웃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소리 없이, 코로만 웃는 웃음. 마치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는데 예의상 참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스킬은 있는데 없는 사람'이 되었다. 취업 시장에서 스킬 등급은 학점보다, 토익 점수보다 먼저 보는 항목이었다. 이력서 양식 자체가 그렇게 짜여 있었다. 이름, 나이, 그다음 칸이 스킬 등급이었다. 자기소개서보다 먼저 오는 칸이었다. F등급, 그것도 활성화조차 안 되는 등급은 이력서 첫 줄에서 사람을 걸러내는 필터였다. 나는 1년 동안 그 필터에 걸려 서른 몇 군데에서 떨어졌다. 세다가 그만뒀다. 대기업 공채는 서류에서 걸러졌다. 중소기업은 면접까지 갔다가 등급 얘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스킬 등급이 필요 없다는 프랜차이즈 알바조차, 정작 붙는 사람들 등급을 보면 다들 최소 D는 됐다. 나는 D도 못 되는 F, 그것도 '비활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F였다. 한 번은 면접관이 대놓고 물었다. "영지경영이 뭔가요? 처음 듣는 스킬인데." 나는 대답을 준비해뒀지만, 그 순간 목이 막혔다. 뭐라고 답해야 그럴싸하게 들릴지 몰랐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면접은 이미 끝난 분위기였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여덟시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십오 분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겨울바람이 코트 사이로 스며들었다. 거실에는 아버지 김성호가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었고, 어머니 박정숙은 주방에서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여동생 김도희는 방문을 닫아둔 채였다. 문 아래로 스탠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조용히 신발을 벗었다. 신발장 앞에 아버지 구두, 어머니 슬리퍼, 도희의 운동화가 나란히 있었다. 내 신발 놓을 자리만 유독 좁아 보였다. 착각이겠지만. 아무도 인사를 받지 않았다. 익숙했다. "오늘도 떨어졌니." 어머니가 등을 돌린 채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 확인이었다. 그릇 정리하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대답 대신 냉장고를 열었다. 물병이 비어 있었다. 냉장고 안엔 반찬통 몇 개와 계란, 그리고 누구 것인지 모를 요구르트가 줄지어 있었다. 나는 그냥 냉장고 문을 닫았다. "편의점도 안 뽑아준다는 게, 그게 말이 되니." 아버지가 리모컨을 내려놓으며 이쪽을 보았다.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TV 화면에는 취업률 통계가 나오는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하필이면. '말이 안 되긴 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삼켰다. 입 밖에 내면 더 길어질 대화였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항상 그런 식으로 끝났다. 내가 삼키면 짧게 끝나고, 내가 삼키지 않으면 삼십 분은 넘어갔다. "방에서 나오지 마, 밥 먹었으면 됐지." 도희가 문 너머에서 던진 말이었다. 열일곱, 아직 스킬 감정도 받지 않은 나이였다. 그런데도 오빠보다는 낫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게 근거 없는 확신이 아니라는 게 서글펐다. 도희는 반에서 상위권이었고, 담임이 이미 스킬 감정 결과에 따라 대학 진로를 짜주겠다고 했단 얘기를 들었다. 걔한테는 F가 나올 리 없었다. 확률적으로도, 분위기적으로도. 식탁에 넷이 앉는 일은 없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정확히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내 등급이 뜬 그 겨울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의 얼룩을 세는 게 요즘의 유일한 취미였다. 서른두 개째였다. 하나는 곰팡이, 하나는 물이 샜던 자국, 나머지는 원인을 모르는 것들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얼룩이 제일 많았다. 그것도 어쩐지 내 처지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 생각을 하다가 그냥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노크라기보다는 통보였다. 세 번, 규칙적으로, 마치 미리 정해둔 리듬이 있는 것처럼. "짐 싸라." 나는 몸을 일으켰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버지 표정은 진지했다. 진지하다 못해 담담했다. 오래 준비한 말투였다.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이미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되뇌었을 문장 같았다. "1년이면 충분히 기다렸다. 스물넷이면 이제 알아서 살 나이야." 아버지가 흰 봉투를 침대 위에 던졌다. 봉투는 두껍지 않았다. "백만 원 넣었다. 그거로 어디든 가서 시작해." "어디로요." 겨우 나온 말이었다. 목소리가 떨렸는지는 모르겠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건 네가 알아서 정해야지."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나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얇은 종이 안에 지폐 몇 장이 들어있다는 게 손끝으로 느껴졌다. 백만 원. 이 나라에서 백만 원으로 뭘 시작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몰랐다. 월세 보증금도 안 되는 돈이었다. 거실로 나가니 어머니는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채였다. 코트를 걸치고 가방을 메고 있었다. 어머니는 배웅도 없었다. 현관 앞에 서서 신발을 신는 내내, 나는 어머니가 뭐라도 한마디 해주길 기다렸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냥 먼저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도희는 방문을 살짝 열고 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닫았다. 문틈으로 스탠드 불빛이 다시 새어 나왔다. 뭐라고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없었다. 나는 캐리어 하나에 옷가지와 노트북, 충전기를 쑤셔 넣었다. 캐리어는 대학 입학할 때 산 것이었다. 바퀴 하나가 이미 삐걱거렸다. 옷은 계절 상관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넣었다. 어차피 어디로 갈지 정해지지 않았으니 계절을 따질 이유도 없었다. 서른두 개의 천장 얼룩과도 이별이었다.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그 얼룩들을 세는 게 취미라니, 이 집에서의 1년이 얼마나 무료했는지 그것 하나로 다 설명이 됐다. 방을 나서기 전, 나는 잠깐 멈춰 서서 방 안을 둘러봤다. 책상, 침대, 옷장. 스물넷이 되도록 그대로였던 방. 벽에 붙여둔 대학 시절 사진 몇 장, 언젠가 받은 상장 하나. 다 그대로 두고 나가기로 했다. 짐이 늘어나는 게 싫었다. 현관을 나서기 전, 우편함을 열었다. 습관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학교 갔다 오면 항상 우편함부터 확인했다. 딱히 나한테 온 우편물이 있던 것도 아닌데. 광고 전단지 사이에 낡은 등기우편 하나가 끼어 있었다. 겉봉이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오래 방치됐다는 뜻이었다. 발신인 칸에 적힌 이름이 눈에 익었다. '강원도 OO군 산림조합, 김만수 명의 부동산 관련 안내.' 김만수. 할아버지였다. 3년 전에 돌아가신 그 이름이 오늘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겉봉을 뒤집어 보았다. 발신일자가 한 달도 더 전이었다. 우리 집 우편함이 관리가 안 되는 편이라, 이런 게 며칠씩 방치되는 일은 흔했다. 그래도 한 달이라니. 그동안 아무도 우편함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확인했는데도 죽은 사람 이름이라 그냥 무시했거나. 봉투를 뜯어볼까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코트 안쪽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지금 당장 열어볼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갈 곳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나가는 길이었다. 뭐라도 하나 손에 쥐고 있다는 게, 그게 죽은 할아버지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이라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캐리어 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었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나는 같은 자리에서 서른 몇 번을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그 자리에서마저 밀려났다. 백만 원과 캐리어 하나, 그리고 죽은 사람의 이름이 적힌 편지 한 장. 이게 스물네 살 여름의 전부였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나는 그 편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겉봉에 적힌 글씨가 흐릿했다. 손으로 쓴 게 아니라 인쇄된 글씨였는데도 왜인지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산림조합. 부동산 관련 안내. 죽은 사람한테 온 우편물이 왜 아직도 발송되고 있는 건지, 그것부터가 이상했다.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편지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머니 속 그 종이 한 장이 자꾸 신경 쓰였다. 마치 뭔가가 나를 그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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