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김민재의 얼굴이 굳어졌다는 것은, 본좌의 경험상 결코 좋은 조짐이 아니었다.
그는 청명회 지부의 통신관으로서, 평소에는 헤벌쭉 웃으며 본좌에게 컵라면 국물이나 나눠주던 자였다. 그런 자가 얼굴을 굳히고 통신 단말—이 요망한 소리 상자*—을 붙잡은 채 본좌를 향해 손짓했다는 것은, 필경 세상의 균형이 어그러졌다는 뜻이었다.
*소리 상자: 원래는 존재치 않던 물건이나, 본좌가 임의로 통신 기기를 낮잡아 이르는 말
"도현아, 지금 위에서 찾는다. 빨리 가봐."
"위라 함은 어디를 이르는 것이더냐."
"강 사무관님. 표정이 심각하시더라."
본좌는 그 말을 듣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강서연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세상 이치로 따지자면 하늘이 두 쪽 나기 전 조짐과 같은 것이었다.
십여 분 후, 청명회 지부의 회의실이라 불리는 좁은 방—실은 예전엔 탕비실이었던 곳—에 강서연 사무관이 나타났다. 그녀는 청명회 현장 요원을 총괄하는 실무 책임자로, 본좌의 직속 상관이자, 동시에 본좌의 학업까지 관리하는 잔소리꾼이었다.
방 안에는 아직 개수대와 정수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회의를 한다기보다는 물을 마시러 온 듯한 기묘한 정취가 흘렀다. 본좌는 그 정수기 옆에 놓인 종이컵 더미를 흘긋 바라보며, 이곳이야말로 현대의 다과청*이라 명명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했다.
*다과청: 원래는 차와 과자를 준비하던 관청의 부속 공간을 이르는 말이나, 여기서는 탕비실을 이르는 표현
"이도현, 앉아."
짧은 명령이었다. 본좌는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강서연 앞에서는 위엄을 세워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본좌는 지난 열여덟 해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경찰청 의뢰 건, 봤지?"
"김 통신관을 통해 대략은 전해 들었느니라."
"대략이 아니라 정확히 들어. 이번 건, 그냥 던전 점검이 아니야."
강서연이 태블릿—이 요망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서판*—을 내밀었다. 화면엔 던전 좌표와 함께 붉은 경고 표시가 떠 있었다.
*서판: 원래는 글을 쓰는 판을 뜻하나 여기선 태블릿을 낮잡아 표현
"이 던전, 원래 등급 D였어. 근데 지금 이 시각 괴기 수치가 A급 던전 수준이야. 그것도 낮인데."
본좌는 눈살을 찌푸렸다.
"낮에 그리 강성한 괴기가 뿜어진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무릉도원 속 요물들은 필경 밤의 정기를 취하는 것들이거늘."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헌터 협회는 규모가 너무 커서 이런 소규모 이상 현상엔 발이 늦어. 근데 경찰청은 실종자가 유명인이라 급하게 움직였고, 우리한테 넘어온 거지."
"어찌 우리에게 넘어온단 말인가. 헌터 협회의 통행패 든 자들이 어디 한둘이 아니거늘."
강서연이 잠시 말을 끌었다. 그녀의 손끝이 태블릿 화면 위에서 잠시 멈추었는데, 그 짧은 정지가 본좌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협회 쪽 애들 세 팀이 이미 다녀왔어. 그중 둘은 그냥 못 찾겠다고 나왔고, 하나는—"
"하나는?"
"돌아오긴 했는데, 셋 중 한 명이 아직 의식이 안 돌아왔어."
본좌는 침묵했다. 이는 단순한 실적 미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이 평화로워지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괴이들 틈바구니에서, 헌터랑 자칭하는 자들조차 감당 못 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참으로 흉험한 조짐이로다. 무림의 어느 문파가 이토록 은밀히 세력을 키웠단 말인가.'
본좌는 속으로 그리 헤아리며 팔짱을 꼈다. 겉으로는 태산처럼 무게를 잡았으나, 속으로는 이미 그 던전 안에 무슨 괴수가 도사리고 있을지 온갖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알림: 신규 등급 미확인 개체 관련 특수 임무가 배정되었습니다.]
[알림: 임무 완수 시 대량의 선행 공덕*이 지급됩니다.]
[알림: 임무 난이도가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선행 공덕: 이 세계 시스템이 부여하는 포인트를 본좌가 임의로 번역한 명칭
본좌는 그 알림을 보며 잠시 속으로 계산을 했다. 공덕이 쌓이면 곳간이 채워지고, 곳간이 채워지면 오늘 저녁 짬뽕 곱빼기를 시킬 수 있으리라. 게다가 난이도가 상향되었다 하니, 아마 곳간에 들어올 공덕의 양도 더 두터워지지 않겠는가. 참으로 세속적인 계산이었으나, 본좌 역시 배는 고픈 법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본좌가 직접 나서야 한단 말인가."
"응. 근데 문제가 있어."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너 신분이 문제야. 고등학생이 던전 진입 통행패를 발급받으려면 정식 절차만 최소 두 달이야. 근데 지금 그럴 시간 없어."
본좌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혀를 찼다. 아무리 본좌가 천하를 호령하던 몸이라 한들, 이 세계의 관아는 나이라는 하찮은 잣대로 사람의 그릇을 재는 법이었다. 참으로 답답한 세태로다.
"본좌의 연배가 어찌 그리 대수란 말이더냐. 강호에는 열 살배기 아이가 검왕의 반열에 오른 예도 있었거늘."
"여기는 강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이야. 미성년자 보호법이라는 게 있어서 그래."
"보호라는 것이 도리어 본좌의 발목을 잡는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십 대 후반의 사내가 두꺼운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섰다. 정인호였다. 서울경찰청 소속의 베테랑 형사로, 청명회와 오랜 인연이 있는 자였다. 그의 얼굴엔 며칠 밤을 지새운 듯한 그늘이 짙게 배어 있었고, 손에 든 종이컵 커피에서는 미세한 떨림마저 느껴졌다.
"강 사무관, 얘가 그 학생이야?"
"네, 이도현이에요."
정인호가 봉투를 탁자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자, 이거 가져가. 위조는 위조지만, 검사 정도는 통과할 거야."
"위조라 함은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 아니더냐. 관아의 눈을 속이는 짓거리는 본좌의 신조와 어긋나거늘."
"신조 지킬 시간 없어. 실종자 신원 파악됐는데, 국회의원 아들이야. 지금 언론사들이 냄새 맡기 전에 끝내야 해."
본좌는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이 시대의 무엇에 해당하는지는 잘 모르나, 그 아들이 실종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사안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본좌는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통행패—신분증—가 들어 있었으되, 이름이 본좌의 것이 아니었다.
"이는... 스물세 살 최도현이라 적혀 있는데, 어찌 본좌의 이름과 다르단 말이냐."
"이름만 같게 만들었어. 그래야 나중에 실수로라도 안 헷갈리지."
"참으로 얼렁뚱땅한 위계질서로다."
"뭐래. 그냥 감사하다고 해."
본좌는 잠시 위엄을 세우려 했으나, 정인호의 눈빛이 워낙 매서워 결국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본좌의 뒤통수가 이유 없이 화끈거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 본좌의 위엄이 한 겹씩 깎여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고소해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인호는 그리 말을 마치고는 다시 서류를 뒤적이며 덧붙였다.
"이거 하나 더. 던전 진입 전에 협회 애들이 남긴 기록이야. 참고해."
그가 내민 것은 손바닥만 한 메모리—이 또한 요망한 물건이었다—였는데, 그 안에는 무언가의 영상이 담겨 있다 하였다. 본좌는 그것을 받아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조그마한 것 안에 어찌 그림이 담긴단 말이더냐. 참으로 신묘한 요술이로다.'
강서연이 팔짱을 끼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오늘 밤 던전 진입해. 학교는 내일 담임한테 내가 병원 진료라고 전화해둘게."
"학업과 사명을 동시에 감당하라는 뜻이더냐."
"둘 다 놓치지 마. 안 그러면 나 오현석 부장한테 잔소리 들어."
본좌는 그 말에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강서연의 잔소리보다 무서운 것은 이 세상에 없을 터인데, 그녀조차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오현석이라는 자가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이란 말이더냐."
"몰라도 돼. 알면 다쳐."
강서연의 그 짧은 대답이 도리어 본좌의 상상력을 더욱 부풀렸다. 필경 그 오현석이라는 자는 무림맹의 맹주쯤은 지위에 있는 자일 것이며, 그의 노기 한 번에 강서연조차 벌벌 떠는 것이 아니겠는가.
본좌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을 나섰다. 정수기 옆을 지나며 문득 물 한 잔을 따라 마셨는데, 그 차가움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비로소 오늘 밤의 임무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실감이 들었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청명회 지부의 낡은 창틀을 물들이고, 거리엔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오늘 밤, 낮에도 강성한 괴기를 뿜는다는 그 던전으로 향해야 하리라.
본좌는 조용히 검을 챙겼다—실은 접이식 목검이었으나, 그 안에 잠든 기운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목검을 허리춤에 매다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는데,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필경 오랜만에 진짜 강적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라고 본좌는 굳게 믿었다.
허나 그 믿음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