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카페 창가 자리, 오세연은 이미 먼저 와 앉아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그녀의 어깨 위에 옅게 걸려 있었다.
마주 앉은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보다 훨씬 굳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반쯤 식은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그녀가 먼저 시켜둔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내가 오길 기다렸다가 같이 주문했을 텐데, 오늘은 그런 여유도 없어 보였다.
"무슨 얘기야."
"…그냥."
오세연은 커피잔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문 밖에서 짧게 터졌다가 이내 멀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끝이 잔 손잡이를 몇 번이나 오르내리는 걸 지켜봤다.
(뭔가 단단히 벼르고 나온 것 같은데.)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캐물을까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았다.
"요즘... 우리, 좀 이상하지 않아?"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건 나도 느끼고 있었어."
"...그렇구나."
오세연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뭔가 더 말하려다가 삼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어지는 걸 나는 놓치지 않고 봤다.
"현우랑은... 그냥 친구야."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먼저 그 이름을 꺼낸다는 건...)
찻잔을 쥔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내가 언제 다른 얘기 했어?"
"아니, 그게... 요즘 자주 붙어 다니니까 신경 쓰일까 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버린 맛이 입안에 퍼졌다.
쓴맛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소리가 잠시 뜸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 사이 오세연은 잔 속의 커피를 스푼으로 몇 번 저었다.
설탕도 넣지 않은 잔이었는데, 그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도윤아."
오세연이 다시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서 뭔가 다른 무게가 느껴졌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고등학교 축제 때."
"그래... 그때 네가 참 순수했는데."
그녀는 웃었지만, 그 웃음에는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눈가에 잠깐 스치는 그림자 같은 게 보였다.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야?"
"그런 건 아니고..."
그녀는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손끝으로 테이블 위의 물기를 닦아내는 시늉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뭔가를 캐물으면 관계가 더 어그러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유리창에 어른거렸다.
그 그림자들 사이로 오세연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평소라면 장난스럽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을 그녀였는데, 오늘은 그럴 기미조차 없었다.
대화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그녀는 가방끈을 두 번이나 고쳐 매만졌다.
헤어질 때, 오세연은 평소처럼 손을 흔들지 않았다.
그냥 짧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나는 그 뒷모습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서 있었다.
바람이 한 번 골목을 훑고 지나가며 낙엽 몇 장을 굴렸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서하은의 파티 제안, ∞웨폰 EX에 대한 협회 고문서 이야기, 오세연의 어정쩡한 사과 같은 말.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온 하루였다.
머릿속에서 세 가지 일이 서로 뒤섞여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마스터, 오늘 스트레스 지수가 평균보다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휴식을 권장합니다.]
"…알아."
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을 몇 번이나 다시 고쳐 덮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마저 오늘따라 유독 선명했다.
각성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무너지는 건물, 콘크리트 파편이 쏟아지던 소리,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새하얀 시야.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감각.
그 감각은 지금도 손끝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스킬 '∞웨폰 EX'가 각성했습니다.]
[경고: 각성 조건이 비정상적입니다. 정본 데이터와의 불일치가 감지되었습니다.]
그때 시스템이 남긴 이상한 경고 문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협회에 문의했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저 '희귀 케이스'라는 짧은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정본 데이터와의 불일치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나는 몸을 일으켜 단말기를 들여다봤다.
화면 속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니 확인이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날 그 경고 문구, 다시 보여줄 수 있어?"
[해당 로그는 협회 보안 등급으로 재분류되어 열람이 제한되었습니다.]
"뭐? 언제부터."
[삼일 전, 상급 관리자 권한으로 접근 제한이 설정되었습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조금 무거워진 것 같았다.
(삼일 전이면... 그 던전 사건 이후잖아.)
누군가가 내 각성 기록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협회 상급 관리자 수준의 누군가가.
평범한 헌터의 기록에 그런 수준의 접근 제한이 걸리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 상급 관리자가 누군지는 알 수 있어?"
[해당 정보 역시 열람 제한 대상입니다.]
"...철저하네."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단말기 화면 속 문구는 더 이상의 정보를 내놓지 않았다.
답답함과 불안함이 동시에 가슴 한켠에 자리 잡았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밤하늘에 달이 걸려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이었지만, 왠지 그 고요함 속에 뭔가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마저 평소와는 다른 결로 들렸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부르르-
손끝이 먼저 반응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 표시가 없는 낯선 번호였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쿵, 소리를 냈다.
[강도윤 헌터님, 협회 특수부에서 연락드립니다. 내일 오전 열 시, 본부 3층 면담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짧고 사무적인 메시지였다.
그 뒤로 서명은 없었다.
나는 그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특수부... 라는 게 대체 뭐지.)
협회 내부 조직 중에서도 이름조차 흔히 들어본 적 없는 부서였다.
일반 헌터가 그런 곳에서 직접 호출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것도 이렇게 늦은 밤, 발신자조차 밝히지 않은 채로.
창밖의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그저 은은한 야경이었을 텐데, 오늘은 그 빛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답장을 보내지 못한 채, 오래도록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의 정적이 유난히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스터, 심박수가 다시 상승하고 있습니다. 안정이 필요합니다.]
"…알아, 안다고."
나는 낮게 대답하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화면 위에 남아 있었다.
그 위로 달빛이 스산하게 얹혀 있었다.
내일 오전 열 시.
그 시간까지 남은 몇 시간이, 오늘 하루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답장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